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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뉴스와 과학의 공통점


전형적인 저녁 뉴스를 떠올려 보자. 가끔씩은 화창한 날씨에 나들이 나온 가족을 인터뷰하는 훈훈한 꼭지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화재, 교통사고, 범죄, 뇌물수수 등 음울한 사건뿐이다. 이런 뉴스를 매일 보노라면 당연히 요즘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걱정될 수 있다. 하지만 범죄 뉴스를 보고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가 늘 범죄를 저지른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일이 그토록 자주 일어난다면 더 이상 ‘뉴스’가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뉴스 보도의 속성상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사실은 보도되지 않는다. 그래서 뉴스는 현재 지하철 요금이 얼마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오직 정부가 지하철 요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만을 알려준다.

과학연구도 뉴스의 이런 특징을 보여준다. 동료 과학자로부터 훌륭한 연구라는 평가를 받고 저명학술지에 논문을 내기 위해서는 기존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그렇기에 현재 시점에서 누군가가 독립적으로 DNA가 이중나선 구조를 가졌다는 사실을 밝혀낸다고 해도 이 결과를 논문으로 출판할 수는 없다. 왓슨과 크릭이 이미 1953년에 발표했기 때문이다.

과학연구의 이런 특징은 분명 생산적이다. 기존 연구 결과에 대한 재해석보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의 축적에 집중하기에 다른 분야보다 학문적 진보를 성취하기에 유리하다. 또한 전 세계의 수많은 과학자들이 동일한 선행 연구를 참조하여 경쟁적으로 연구를 수행하기에 기존 연구에서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인과작용이 밝혀질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이런 과학연구의 관행은 예기치 않은 부작용도 가져온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인과작용이 발견된 때는, 다른 가능성도 있지만 그 인과작용의 크기가 이미 알려진 여러 인과작용에 비해 크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점을 이해하지 않고 새롭게 출판되는 과학연구에만 관심을 갖다 보면, 그 연구가 밝혀낸 인과작용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인과작용을 무시할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암 유전자’가 새롭게 발견됐다면 그 암에 끼치는 유전자의 영향이 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그 암에 더 큰 영향을 끼치는 다른 요인들이 기존 연구를 통해 모두 밝혀진 배경에서 추가적으로 이루어진 연구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만약 이 ‘암 유전자’에 대한 보도를 듣고 그 유전자가 있으면 거의 확실히 암에 걸린다고 믿는다면 큰 오해를 하는 것이다.

이런 오류는 자연과학보다 사회과학에서 보다 심각할 수 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신선한 빵 냄새를 맡을 때 그렇지 않을 때보다 다른 사람에게 더 친절하다. 이런 연구 결과는 믿기 힘들 정도로 신기하고 충격적이다. 하지만 이 효과는 여러 실험을 통해 반복적으로 검증되었기에 분명 실재한다. 그런데 일부 학자는 이런 연구 결과를 거론하면서 마침내 인간이 환경적 요인에 의해 감정적으로 휘둘리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다음 주장을 고려해 보자. “과거에 친절한 대접을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친절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이 주장은 거의 확실히 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을 검증하려는 시도는 논문감이 되지 못한다. 너무나 평범하고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빵 냄새만으로도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은 특이하고 신선해서 언론에도 소개될 가능성이 높다. 호소력 있는 과학연구가 뉴스로서로 가치가 높은 경우는 이처럼 연구 결과가 사회적 통념에 도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을 때이다.

하지만 이런 연구가 사회적 통념이 ‘거짓’임을 보여줄까? 그보다는 사회적 통념이 ‘온전한 참’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즉, 우리는 많은 상황에서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그 능력은 적절한 교육을 통해 향상될 수 있지만, 그 일이 쉽지도 않고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인지편향의 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카너먼의 지적이 떠오른다. 인간이 아플 수 있는 수많은 상황에 대한 엄청난 양의 의학연구가 있다는 사실이 인간 대부분이 대부분의 상황에서 건강하지 않음을 보여주지 않듯이, 우리의 인지과정이 항상 합리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이 우리가 대부분의 경우에 나름의 근거를 갖고 행동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과학연구는 항상 새로운 인과작용을 찾기에 정작 중요하고 주도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눈을 감을 위험이 있다. 이런 위험은 사회과학 연구가 인문학적 통찰에서 벗어나 더욱더 자연과학을 닮아갈 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인간 본성에 대한 ‘획기적인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떠드는 몇몇 과학자들의 선지자적 메시지를 조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상욱 | 한양대 교수·과학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