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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뉴턴의 사과나무 ‘전설’

운동의 3법칙으로 근대 역학의 기초를 다진 영국의 자연철학자 뉴턴은 사과나무와 깊은 인연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혹은 좀 더 극적으로는, 떨어지는 사과에 맞고 나서) 우주의 모든 물체가 서로 끌어당긴다는 보편중력의 법칙을 깨달았다는 일화 덕분이다.

필자는 이 ‘뉴턴의 사과나무’와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다. 미래전략위원이라는 다소 부담스러운 자격으로 방문한 한 정부 연구소의 안뜰에서였다. 그 연구소에서 진행 중인 수많은 연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야외 실험장으로 가는 길에 안내하시는 분이 자랑스럽게 한 사과나무를 가리키며 이 나무가 바로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직접 가져온 ‘뉴턴의 사과나무’ 직계 후손이라고 설명해줬다. 그 연구소를 방문하는 과학 꿈나무들에게 뉴턴처럼 훌륭한 과학자가 되라는 의미에서 방문 코스에 꼭 이 사과나무를 포함시킨다는 말씀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그때 필자가 그저 예의바르게 “아하!”라고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쳤으면 좋았을 텐데, 그 순간 그만 “뉴턴의 사과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데요”라고 말해버렸다. 순간 분위기가 다소 어색해졌고, 누군가 서둘러 “그래도 뉴턴의 사과 이야기가 어린 학생들에게는 좋은 자극이 되겠죠”라고 얼버무린 덕분에 상황은 가벼운 웃음으로 가까스로 마무리되었다.

이렇게 난처한 상황에서 필자를 도와준 분께는 미안하지만, 그 연구소에 심은 ‘뉴턴의 사과나무’를 보고 학생들이 과연 어떤 자극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중적으로 널리 퍼진 ‘뉴턴의 사과’ 일화에 따르면, 케임브리지대학 재학 시절 뉴턴은 당시 창궐했던 페스트를 피해 고향 마을에 있으면서 사과나무 밑에서 우주에 작용하는 근본적인 힘에 대한 명상에 잠겨 있다가 문득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순식간에’ 지구와 사과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물체가 서로 질량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으로 끌어당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눈치 빠른 독자라면 케임브리지대학 소재의 사과나무는 이 표준적 일화에는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을 벌써 알아채셨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정말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로부터 어떤 함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기껏해야 뉴턴은 그야말로 엄청난 ‘천재’였다는 사실뿐이다. 인류가 사과나무를 키우기 시작한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을 터인데 오직 뉴턴만이 그처럼 위대한 법칙을 꿰뚫어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케임브리지대학 시절의 뉴턴과 그다지 나이 차이도 나지 않는 미래의 과학도들에게 뉴턴의 사과 이야기는 도리어 자신의 지적 능력에 대한 절망감만 심어주지 않을까?

뉴턴과 그의 사과나무 '전설' (출처 : 경향DB)


다행히도 학생들은 절망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뉴턴이 보편중력 법칙에 도달한 과정은 훨씬 더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뉴턴은 자신이 공부한 내용이나 생각한 내용을 늘 꼼꼼하게 기록해 두는 학자였는데, 뉴턴의 대학 시절 노트를 보면 사과나무나 보편중력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당시 뉴턴은 세상의 모든 물질 현상을 눈에 보이지 않는 입자의 운동과 충돌로만 설명하려던 데카르트주의자였다. 데카르트주의 관점에서 질량을 가진 물체가 중간에 아무런 매개 없이 서로 끌어당긴다는 생각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뉴턴은 여러 해에 걸친 오랜 노력을 통해 역학이론으로서 데카르트주의의 한계를 인지하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었고, 그 과정 중 자신의 운동법칙과 보편중력 개념에 도달할 수 있었다. 뉴턴의 업적은 분명 근대 역학 전체를 뒤바꾼 위대한 것이지만 결코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순식간에 얻어낸 것이 아니었다. 뉴턴처럼 천재적인 업적을 쌓은 과학자도 결코 초인적인 존재는 아니었던 것이다.

관련 학자들은 뉴턴이 아마도 보편중력의 발견을 두고 후크 등과 벌인 우선권 다툼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사과나무’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이 젊은 시절 이미 보편중력의 원리를 알고 있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본다. 이 추측의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뉴턴의 사과나무’ 이야기 같은 ‘전설’ 과학사는 과학 연구가 이루어지는 진정한 과정에 대해 잘못된 신화를 퍼뜨리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수행된 ‘진짜’ 과학사 연구의 가치가 이러한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이상욱 | 한양대 교수·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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