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에디슨이 닭을 품었다는 유명한 이야기처럼, 어린 시절의 호기심은 사람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10살 때 금속이 불에 타는지 궁금해서 철 수세미에 불을 붙여본 테오도르 그레이, 그는 커서 꽤 유명한 화학박사가 됐다. 과학교양지 <파퓰러 사이언스>에 'Gray Matter'라는 칼럼을 쓰고, 공학계산 소프트웨어 시스템 개발업체의 공동창업자로도 활동 중이다. 하얀 실험가운을 걸치고 제대로 된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직업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가 펴낸 책 <괴짜 과학(Mad Science)>는 시쳇말로 ‘골 때리는’ 화학실험들이 가득하다. 그의 모든 역사는 시골농장의 창고에서 이뤄졌다.
테오도르 그레이 지음, 배은경 옮김, 옥당, 1만5000원 (2010) 연쇠살인마 포스를 풍기는 원작 표지.
그는 직접 아이스크림을 만들고(소화기의 드라이아이스를 활용), 전기 없이 전구에 불을 밝히고(생석회에 열을 가하면 석회광 발산), 팝콘을 튀길 땐 소금을 직접 만들고(나트륨에 염소가스를 뿜으면 염화나트륨 기체 생성), 칵테일에서 나일론을 뽑아내고(헥사메틸렌다이아민과 염화세바코일을 섞으면 둘 사이에 얇은 막이 합성), 수소나 티타늄은 물론 연필까지 직접 만든다. (가내수공업이라 팔아서 떼돈 벌긴 어려워 보인다.)
요리강좌처럼 보이는데 웬 소화기?
동영상 링크 http://www.graysci.com/chapter-one/dry-ice-cream/
해골바가지가 그려진 실험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분야는 금속 연소 쪽인 듯하다.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자세한 사진인데, 마그네슘을 태워 만든 조명으로 사진을 찍을 땐 사진사가 달아났고, 드라이아이스로 만든 할로윈 등에 넣은 마그네슘 연소를 찍다가 촬영장비가 타버렸다. (마그네슘은 이산화탄소에 활발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금속공장 화재 시 이산화탄소가 든 소화기는 불난 데 부채질하는 꼴이란다.)
그나마 가장 무난하고 해볼 만한 것은 ‘눈꽃 박제’와 '물에 가라앉는 얼음'이다. 눈꽃 박제는 요즘같이 추운 날, 현미경 슬라이드와 커버글라스, 강력접착제를 실외에 내놓고 식힌다음, 눈 위에 강력접착제 한방울을 떨어뜨리고, 커버글라스를 가볍게 덮어서 냉동실에 1~2주 넣어두기만 하면 된다. 유일한 위험이라면 서툰 손가락이 접착제에 눌러붙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다.
화학자로서 화학지식만 활용한 것은 아니었다. 늑대인간용 은탄환을 만들면서는 역사적 문헌도 뒤졌다. 962도로 녹인 액화 은은 거푸집의 재료를 녹이기 쉬워서 탄환 자체를 깎아야 했을 거란다. 친환경 연료의 모순도 지적한다. 옥수수에 효소와 효모를 넣고 에탄올을 만들면서는, 옥수수를 경작하고 가공처리하는 데에는 결과물 이상의 석유가 소비된다는 이야기다.
화학에 잠시 관심을 가졌던 어른들에, 정보로 포장한 오락프로그램 <호기심 천국>과 <위기탈출 넘버원>을 사랑하는 초등학생들까지 볼 수 있는 책이다. (아이들이 갑자기 창고 있는 집으로 이사가기를 원한다면, 연필부인의 흑심을 파악하시라.) 불행히도 내 책은 파본이어서, 강철을 태우다 말고(P96 불타는 강철) 백린 태양 사진(P109)으로 넘어가버렸다. 그의 사이트(http://www.graysci.com)에도 사진과 동영상이 올라있다. 물론 영어다.
'물에 녹는 숫가락'도 보기엔 솔깃하다.
그레이의 책 제목을 보고 <매드 사이언스 북>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이 책은 화학뿐 아니라 다른 여러 과학 분야에서 이뤄졌던 엽기적 실험 111개를 다뤘다.
레토 슈나이더 지음, 뿌리와이파리, 이정모 옮김, 1만5000원 (2008)
단두대에서 잘린 목이 언제까지 살아 있을까, 사람이 며칠 동안 잠을 안 잘 수 있을까, 하루 24시간 생체시계는 변할 수 있을까, 곤충의 암수 머리를 바꿔붙이면 어떤 행동을 할까. 이 책은 1304년 디트리히 폰 프라이베르크가 커다란 유리공으로 무지개 생성원리를 증명한 실험부터 2003년의 개와 로봇의 친밀성 실험까지, 700년에 걸친 독특한 과학실험을 한데 모았다. 스위스의 과학저널리스트 레토 슈나이더가 미발표 실험자료들과 오래된 신문기사를 조사하고 실험참가자들을 직접 취재했다.
유산균 음료 광고에 나온 지 몇 년 뒤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으면서 국내 유산균업계의 광고 가격대비 만족도에 기여한 배리 마셜박사는 대학 당국과 아내의 허락도 없이 예순여섯 살 환자의 위에서 나온 10억마리 세균에 물을 섞어 마셨다. 일주일이 지나자 두통과 속쓰림이 시작됐고 위궤양의 원인이 스트레스가 아니라 세균이라는 그의 주장은 사실로 밝혀졌다. 그의 아내는 실험의 성공을 이렇게 축하했다. “실험 끝낼래, 결혼생활 끝낼래?”
프랑스 의사 기욤 뱅자맹 아르망 뒤센 드 불로뉴가 심한 안면근육 마비에 시달리고 있는 구두장이 노인의 얼굴을 전기로 자극하고 있다. 근육위축병 ‘뒤센형 근이영양증’의 이름은 전류로 희로애락의 표정을 만들어내는 ‘인간 안면 표현 메커니즘’(1852년)으로 유명해진 뒤센에게서 나왔다.
사람을 실험대상으로 삼는 연구는 배리 마셜 박사의 경우처럼 대개 연구자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터빈스 퍼스는 황열병이 사람에게서 직접 전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직접 환자의 토사물과 피, 오줌을 삼켰다. 아우구스트 비어와 조수 힐데브란트는 코카인 용액으로 척수마취의 시초를 열었지만 한동안 극심한 두통과 전신통증에 시달렸다. 침팬지를 입양해 자신의 아이와 함께 키우면서 환경과 행동의 연관성을 파악하려던 켈로그의 실험은 자신의 아이가 침팬지를 따라하는 예상치 못한 결말을 만난다.
사기에 가깝지만 전설이 되어버린 사례도 등장한다. 동물 고환으로 만든 회춘제의 약효나 영혼의 무게가 21g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있다. 짧은 영상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사람들이 그 영상속 명령을 따른다는 주장은 조작으로 밝혀졌으나, 2000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광고에 재활용됐다. 혈관봉합술에 대한 연구로 19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알렉시스 카렐의 ‘영생세포’는 흡사 줄기세포 논란을 연상시킨다. 생명체의 몸 밖에서 34살까지 살았다는 이 세포의 장수비결은 여전히 검증되지 않고 있다.
괴상하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낯선 질문, 보기 드문 방법, 별난 깨달음이 현대 과학을 이끌고 있는 원동력일 수도 있다. 집안에 모든 물건을 천장의 저울에 밧줄로 매달아놓고 시시콜콜한 몸무게 변화를 측정한 1600년대의 집착은 정량실험의학의 시작이 되었고, 미모사를 어두운 상자에 넣어두는 1700년대의 도전은 생체시계에 관한 시간생물학의 시초가 됐다. 시체에 사는 곤충에 따라 사망시점을 역추적하는 CSI 속 장면은 1899년 니차비토프스키의 사체 실험이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옮긴이에 따르면 독일어로 ‘미쳤다’는 단어에는 ‘멋지고 기똥차다’는 뜻도 포함된다고 한다. 실험에 ‘미친’ 과학자들의 좌충우돌이 과학은 어렵기만 하다는 선입견을 ‘기똥차게’ 깨뜨려준다. 읽는 재미를 찾는다면 <매드 사이언스 북>을, 직접 실험하고자 하는 욕망이 끓는다면 <괴짜 과학>을 손에 쥐는 것이 좋겠다.
임소정 기자(트위터 @sowhat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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