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에 SF 작가들과 함께 소백산 천문대에 간 적이 있다. 마침 눈이 내렸고 눈꽃이 만발한 상태였다. 바람도 제법 불어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그런데 누군가가 눈이 바람에 휘날리고 옅은 안개가 낀 천문대의 분위기가 아주 스산하다고 말하면서 혹시 괴담이 있는지 물었다. 이런저런 기억을 떠올려 봐도 괴담은 찾을 수 없었다. 천문대에서 근무하는 분에게 물어봐도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실망하는 그 작가를 위해 나는 기억 저편에 있던 추억을 하나 꺼내 이야기해 주었다. 괴담이라면 괴담일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였다.
겨울의 밤하늘은 무척 화려하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별 중 1등성은 15개 정도 된다. 그 중 7개를 겨울철 밤하늘에서 볼 수 있으니 화려하다는 말을 쓸 수밖에 없다. 별의 겉보기 밝기는 1등성, 2등성, 이런 식으로 표기를 한다. 1등성은 2등성보다 약 2.5배 밝다. 2등성은 3등성보다 2.5배 밝다. 등급의 숫자가 작을수록 더 밝은 별이다. 겨울철에 별자리를 찾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우연히 밝은 1등성을 찾았는데 그 주위를 둘러보니 별들이 큰 5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다면 분명히 마차부자리일 것이다. 그리고 그 밝은 별은 카펠라가 틀림없다. 카펠라의 오른쪽 아래를 자세히 보면 별 3개가 작은 이등변 삼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꼭짓점에 있는 별이 마차부자리 엡실론별이다. 현재 이 별의 겉보기 밝기는 약 2.9등급이다. 이 별이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마차부자리 엡실론별
출처 : NASA - 오늘의 천체사진(2010년 1월 8일 자)
http://antwrp.gsfc.nasa.gov/apod/ap100108.html
마차부자리 엡실론별은 밝기가 변하는 변광성이다. 27년을 주기로 밝기가 변한다. 제일 밝을 때는 2.9등급 정도 되는데 어두워지면 3.8등급까지 떨어진다. 밝기 차이가 거의 2.5배가 된다는 이야기다. 어두워진 상태는 640~730일 동안 지속된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가 이 별이 가장 어두워졌던 시기다. 현재는 밝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2036년에는 다시 밝기가 가장 어두운 상태가 될 것이다. 밝기가 주기적으로 변하는 이유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유력한 가설 중 하나는 마차부자리 엡실론별이 사실은 최소한 두 개 이상의 별로 이루어진 항성시스템이라는 것이다. 한 별이 다른 별과 서로 주위를 돌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두 별이 모두 보일 때는 가장 밝은 상태를 유지할 것이다. 그런데 한 별이 다른 별을 가리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 기간 전체 밝기는 어두워질 것이다. 이런 현상을 식현상이라고 한다. 마차부자리 엡실론별은 식변광성인 것이다.
대학원 시절의 일이다. 천체관측법 수업으로 마차부자리 엡실론별을 관측하고 있었다. 밤이 아주 깊어졌을 무렵 술이 얼큰하게 취한 담당 교수님이 천문대 문을 열고 불쑥 들어오셨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내가 관측하고 있는 별이 마차부자리 엡실론별이 아니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실랑이 끝에 나는 망원경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 다시 그 별로 향하도록 조정하는 작업을 반복해야만 했다. 하지만 교수님은 내가 다른 별을 찾았다고 계속 타박을 주었다. 나는 내가 제대로 관측을 하고 있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화가 난 교수님은 급기야 나를 때리려 했다. 나는 그런 교수님을 피해 관측실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좁은 관측실에서 서로 정면으로 다시 마주치기까지는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를 향해 내리치는 교수님의 손을 내 손으로 막았다. 교수님은 쌍욕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지 않고 내 인생에서 가장 험한 말을 내뱉었다. 우리는 한참을 더 유치한 욕지거리를 하면서 버텼다. 힘으로 나를 제압할 수 없었던 교수님은 욕을 하면서 관측실을 떠났다. 나는 씩씩거리면서도 동이 틀 때까지 관측을 계속했다.
그 사건 이후 교수님은 나에게 수업에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나는 학생의 권리를 내세우면서 끝까지 수업에 참가했고 관측을 했다. 내가 관측하는 동안 교수님은 다시는 관측실을 찾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는 학부생들 수업 시간에도 내 욕을 하고 다녔다. 악연은 계속되었다. 내 지도교수님이 부재중인 상황에서 그 교수님에게 배당된 국비유학시험 추천서에 ‘이 학생에 대해서 아는 바 없음’이라고 써서 2차 면접시험에서 내가 추천서 작성 미비로 낙방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한 선배는 그 교수님의 천체관측법 과목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2년 연속 F학점을 받고 3년째 재수강을 통해 간신히 졸업했다. 교수님을 죽이려고 칼을 들고 연구실 앞에서 기다린 적도 있다고 했다. 어느 곳에나 괴짜 교수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정도면 괴담이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마차부자리 엡실론별 괴담.
이명현 | 과학저술가·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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