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철이다. 물론 예수는 크리스마스에 태어나지 않았다. 예수가 태어난 때는 기원전 몇 년 무렵의 4월 어느 날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개연성 높은 추정이다. 예수가 태어나던 때 베들레헴에서 보였다는 별이 실제 있었다고 믿는 기독교를 추종하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다. 베들레헴 별의 정체가 무엇인지 찾는 작업은 흥미로운 작업이다. 하지만 그 별을 구태여 탄생 신화와 연결시키지 않아도 예수라는 사람은 우리들에게 그 자체로도 이미 소중한 별이다. 예수는 긴 머리를 휘날리는 늘씬한 백인이 아니라 우리가 중동 지방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검고 둥그런 얼굴에 곱슬머리를 한 자그마한 청년이었을 개연성이 높다. 예수가 꿈꿨던 세상은 교회가 없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종교도 없고 권력도 없는 존 레넌이 꿈꿨던 그런 세상이었을 것이다. 예수의 생일도 모습도 꿈도 왜곡되었지만 혁명과 개혁에 몸을 던졌던 그의 삶과 죽음은 여전히 별처럼 빛나고 있다. 혁명가 예수는 죽어서 더 빛나는 별과 같은 존재다.
두 개의 별이 중력적으로 묶여서 서로가 서로의 주위를 돌면서 유지되는 시스템을 쌍성계라고 한다. 태양과 비슷한 질량의 두 별이 쌍성계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별들은 시간이 지나면 진화하고 종말을 맞이한다. 두 별 중 질량이 약간 더 큰 별은 별빛을 만들어내는 연료를 더 빨리 태우기 때문에 조금 더 빨리 진화를 한다. 죽음의 순간도 조금 더 일찍 맞이하게 된다. 태양 질량 정도의 별이라면 일생을 모두 살고 난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적색거성이 된다. 별의 표면 온도는 떨어지고 크기는 엄청나게 커진다. 태양이 적색거성이 되면 그 크기가 지구의 공전 궤도를 넘어설 것이다. 적색거성은 불안정해서 커졌다 작아졌다 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바깥 부분은 행성상성운이 되어 흩어지고 안쪽 부분은 작고 뜨거운 백색왜성으로 분리되면서 삶을 마감하게 된다.
대마젤란 성운 안에 있는 초신성 잔해 0509-67.5의 사진(출처 :로이터연합)
질량이 조금 더 컸던 별이 적색거성 단계를 지나서 백색왜성이 되어 있을 때 질량이 조금 더 작았던 다른 별은 여전히 자신의 일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물론 앞서 한 번의 종말을 맞이한 다른 별이 죽으면서 뿜어낸 가스와 먼지와 얽혀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이 별도 다른 별과 마찬가지로 적색거성이 될 것이다. 크기가 커지고 불안정해질 것이다. 이 단계에서 부풀어 오른 적색거성의 물질이 백색왜성으로 유입되기 시작한다. 물질이 계속 유입되면서 백색왜성의 질량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백색왜성의 질량이 일정한 값에 도달하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이 순간을 초신성 폭발이라고 부른다. 초신성이 탄생한 것이다. 초신성은 그 밝기가 최대치에 이르렀을 때는 자신이 속한 은하 전체의 밝기와 맞먹을 정도로 밝다. 태양 밝기의 천 억배 정도가 된다는 뜻이다. 며칠에서 한 달까지 그 밝기가 유지되기도 한다. 이런 초신성을 제Ia형 초신성이라고 한다. 한번 종말을 맞이했던 별이 다른 별의 도움을 받아서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것이다. 초신성이 폭발하는 동안은 엄청난 온도와 밀도를 갖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철보다 무거운 여러 금속 원소들이 만들어진다. 니켈, 구리, 망간, 텅스텐 등등 우리 주변에서 일상으로 사용하는 많은 것들은 사실 초신성 폭발에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만델라 대통령이 죽었다. 죽고 또 죽어가면서도 빛을 발하고 사람들 마음속에 수많은 평화와 희망의 원소를 만들어 놓았으니 그야말로 제Ia형 초신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에게 허물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민중들보다 먼저 죽고 그들의 메시지를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여서 자신을 폭발시키면서 그들의 초신성이 된 그의 삶을 어찌 폄하할 수 있겠는가. 예수의 모습이 꼭 만델라와 비슷했을 것 같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죽는 것도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생을 살면서 축적된 인생의 가치는 죽으면서 발휘되는 것 같다. 제Ia형 초신성처럼 삶의 여정을 먼저 걸어가고 민중들의 목소리를 모아서 모두를 위한 빛으로 폭발시키는 사람이야말로 영웅이라고 할 것이다. 그 빛이 밝아서가 아니라 밝은 빛을 내기 위한 과정이 더 빛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내던지는 죽음의 과정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 죽음의 과정에서 희망과 평화와 승리의 원소들을 잉태시키기 때문이다. 만델라와 예수를 생각하다보니 역시 사무치게 미운 감정이 함께 몰려오긴 하지만 그래도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났다. 그들도 제Ia형 초신성이었기 때문이다. 이 어둡고 암울한 세상을 다시 밝혀줄 또 다른 초신성이 터지기를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면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 철이다.
이명현|과학저술가·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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