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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이한승의 '바이오매니아'

막걸리, 잘 걸러 들어야 한다

이한승 (신라대 바이오식품소재학과)

다시 막걸리가 난리다. 물론 막걸리 인기가 이제 한 풀 꺾였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최근 막걸리 속의 항암물질(?) 발견 뉴스가 나오면서 다시 불이 붙었다. 방송인 손석희 씨도 그 뉴스가 나온 날 막걸리를 마셨단다. 이런 뉴스가 전통주를 아끼는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인 것은 분명하다. 자, 그렇다면 지금쯤 막걸리에 대해 정리를 해봐야 할 필요가 있는 듯싶다.

달고 시고 떫고 쏘는 맛의 막걸리


막걸리는 좋은 술이다. 그런데 '좋은 술'이라는 말은 형용모순 아닌가?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음주는 매우 많은 질병과 상관관계가 있다. IARC의 1급 발암물질(발암요인) 리스트에도 당당히 들어있다. 게다가 알코올이 대사되어 만들어지는 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도 2급(2B) 발암(가능)물질이다. 그러므로 술은 단언컨대 나쁘다. 어디에? 건강에.

와인과 프렌치 패러독스 같은 것을 들이대며 술이 건강에 좋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 이야기를 여기서 길게 하긴 어렵지만 프렌치 패러독스는 상당히 과장된 이야기다. 오히려 프렌치 패러독스는 식품을 마케팅 하는데 방송 매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좋은 예이다. 당연히 술도 좋은 점이 있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본다면 무게의 추는 나쁜 쪽으로 기운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나쁜 술을 사람들은 즐기고 있다. 술을 금해서 성공한 경우는 없다. 우리나라에도 영조시대에 금주법이 있었다지만 다양한 전통주 제조법은 면면히 흘러내려오고 있다. 20세기 초 미국의 금주령은 알 카포네라는 스타를 만들었고 금주령의 시대는 무법의 시대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알 카포네를 잡아넣은 네스 형사도 술 마시러 간다고 했던가...


사람들은 끊임없이 술을 마신다. 그렇다면 조금 덜 나쁜 술은 상대적으로 좋은 술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막걸리가 좋은 술이라는 이야기는 이 정도의 이야기다.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아서 좋고 (하지만 많이 마시면 그게 그거) 밥 안먹고 술부터 마시는 사람에겐 그나마 다른 영양분이 있으니 좋고 (하지만 밥 많이 먹고 마시면 살찌기 좋고) 확실하진 않지만 유산균이나 효모가 살아 있어 약간의 정장작용을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하지만 유산균의 양은 아무도 정확히 밝히지 않는다) 정도다.

막걸리는 독특한 술이다. 술은 주로 효모가 탄수화물을 알코올로 발효한 것이다. 하지만 발효에 사용한 효모를 제거하지 않고 그냥 먹는 술은 극히 일부 맥주를 제외하고 막걸리가 거의 유일하다. 최근 조금씩 익숙해진 자가 양조 맥주집의 맥주도 효모를 거르지 않고 먹는 경우가 있지만 이들을 제품으로 팔진 않는다. 효모가 첨가된 맥주도 일부 있지만 그 효모는 죽은 효모를 넣은 것이 많다. 이렇게 막걸리는 효모까지 먹다 보니 그 속에 영양성분이 많고, 비타민도 많고, 다른 성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번에 발견되었다는 (방향제 성분인) 파네졸이라는 물질도 주로 효모가 만드는 물질이다. 그렇다면 효모를 제거한 술에 많겠는가, 효모가 들어 있는 술에 많겠는가? 당연히 효모가 많은 술에 더 많지 않을까? 효모가 가라앉지 않도록 흔든 막걸리와 지게미를 거른 막걸리 속 파네졸 함량 차이가 5배 이상 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양은 150~500ppb 정도에 불과하다. ppm (백만분의 1)이 아니라 ppb(10억분의 1)라는 것에 유념하시라. 진짜 놀라야 하는 것은 이 정도의 미량 성분을 연구자들이 분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번 발표된 연구 결과의 의의도 막걸리에 파네졸이 많다는 내용보다는 술 속의 파네졸 검출 방법에 있다.)

물론 와인의 항암물질(?) 레스베라트롤에 맞서기 위해 막걸리에 파네졸이라는 세일즈 포인트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과학적 진실은 레스베라트롤이나 파네졸이나 항암 물질이라고 부르기엔 앞으로 갈 길이 구만리이며 그 양도 너무 적다는 것이다. 물론 찾아보면 막걸리 속엔 효모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기능성 물질도, 위해 물질도 그 속에 들어 있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것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이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이 다 조금씩 다를 텐데...


게다가 막걸리는 와인처럼 단순한 발효가 아니다. 성분이 다양한 것으로 보면 와인도 단순한 발효는 아니지만 와인은 기본적으로 단순당을 효모가 발효만 하는 과정(단발효)을 거쳐 만든다. 반면 막걸리는 곡류 속의 다당류를 곰팡이 효소를 이용해 당화시키고 효모로 발효까지 하는 복발효 과정이다. 그리고 이 당화와 발효를 한 방에 해치워야 하는 단행복발효주이다. 그만큼 복잡하다.

국내 최초로 하우스 맥주집을 열었던 한 후배는 정식 맥주 양조공학 석사 (브로이마스터) 학위을 따는데 (학원에서 속성으로 주는 것 말고) 독일에서 수년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막걸리는 그냥 아무나 만들어 파는 술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 전통이기 때문에 쉽고 친숙하게 느끼는 면이 있지만 잘 모르고 대충하는 면도 분명히 있다.


지난 2010년 1년 동안 발표된 와인 관련 논문은 무려 1000편에 이른다. 막걸리에 대한 논문은? 단군이래 지금까지 나온 논문을 다 털어봐야 150편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막걸리 업체가 700곳이 넘는다는데 전문적인 연구원이 1명이라도 있는 업체가 몇 군데나 될까? 이래 놓고 막걸리와 건강에 대해 논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는 아닐까? 아주 제한적인 시험관 실험이나 세포 수준의 실험들로 건강을 논하는 것은 마라톤 출전 선수가 100미터 전력질주하고 그 기록으로 마라톤 신기록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실 식품의 마케팅 포인트가 꼭 건강일 필요는 없다. 막걸리는 그 자체로 독특한 술이고 전통의 음료이다. 독일의 맥주, 프랑스의 와인, 일본의 사케와 같이 '한국의 막걸리'라는 칭호를 얻으려면 차라리 막걸리의 독특성, 우리 전통, 관련 문화 쪽을 풍부히 하는 편이 더 정직한 접근일지 모른다. 건강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직 먼 이야기이므로 막 걸러듣지 말고 잘 걸러듣는 것이 좋다.


필자 이한승 교수는

1969년 서울 출생. 1989년 연세대 식품공학과에 입학하여 계속 같은 과에서 공부하면서 학과가 식품생물공학과를 거쳐 생명공학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하였고 1998년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동경대학, (주)제노포커스, 미국 죠지아대학 등을 떠돌며 포닥으로 세계일주를 계획했으나 2007년 여름부터 부산의 신라대학교 바이오식품소재학과에 임용되어 재직중이다. 유전자 분석(BLAST) 때문에 남들보다 일찍 인터넷 세계에 입문하여 15년 가까이 홈페이지와 블로그(http://www.leehanseung.com)로 세상과 소통해 왔으며 극한미생물에 관심이 많아 극한미생물연구회를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