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승 (신라대 바이오식품소재학과 교수)
소위 파워 블로거들의 행태에 대한 뉴스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인터넷 뿐만이 아니라 TV의 9시 뉴스에도 나온다. 국세청은 세무조사까지 하겠다는 기세다. 맛집 블로거로 활동하는 친구를 둔 덕에 나도 일부 맛집 블로거들의 진상 짓거리에 대해 들은 바가 있다. 잘못된 행태는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뉴스를 보다 보니 갑자기 얼마전 재미있게 본 영화 한 편이 생각났다.
트루블루거쇼도 나오려나?
내게 올해 극장에서 본 영화 중 가장 많은 웃음을 준 영화는 <트루맛쇼>였다. 맛집관련 방송의 이면을 재치있게 고발한 이 다큐멘터리를 생각해보면 작금의 일부 파워 블로거들의 문제와 좀 닮아 보인다. 주류 언론과 인터넷 블로그라는 매체의 차이는 있지만 둘 다 홍보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디 맛집 뿐이겠는가? 병원, 한의원, 미용관련 업체, 신제품을 빙자한 홍보성 기사들, 게다가 각종 PPL(Product Placement, 간접광고)까지 가히 홍보의 시대다. IOC 총회가 열린 더반에서 김연아 선수가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입은 옷이 완판되고 착용했던 귀걸이 문의가 쇄도한다는 뉴스를 보다가 의문이 생겼다. 뉴스가 나가기 전에 실제로 문의를 한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 그리고 뉴스를 보고 문의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저 미소를 안보고 옷을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다니 신기할 따름...
과학자도 홍보를 한다. 지난 번 글에서 쓴 대로 모든 것이 점수화되어 평가되는 시대에 홍보는 필수적이다. 대학이든 연구기관이든 홍보가 될 만한 것이면 무엇이든 알려서 자기 학교와 부처의 이름을 빛내야 한다. 연구자 개인도 마찬가지다. 그냥 골방에서 자기 일 열심히 한다고 알아주는 시대가 아니다. 논문과 보고서뿐만 아니라 보도자료도 잘 써야 한다.
이런 홍보 문제를 가장 희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소위 “인명사전 등재”와 관련된 뉴스다. 요즘엔 실상이 많이 알려져서 상당히 줄었지만 아직도 가끔 누구누구가 세계 3대 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는 뉴스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모르는 사람들이야 세계 몇 대 인명사전이라고 하면 대단한가보다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건 자비출판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어느 정도 학력과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돈만 내면 이름을 올려 준다. 나중엔 자기 이름 올라간 책도 몇 권 보내준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구글님이 계신데 누가 그런 책을 뒤져서 사람을 찾을까? 자기 홍보용의 인명사전보다 구글에 이름 검색해서 처음 뜨는 것이 백 배는 더 영광스러운 것일 텐데도 돈을 내고 인명사전에 이름을 등재하는 이유는 홍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르퀴스 후즈 후에 등재된 세계적인 박씨는 1236명, 세계적인 최씨가 664명이다.)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스 후즈후'에서 찾느니 구글을 검색하시죠.
이런 연구자 개인 홍보는 그래도 그냥 씁쓸히 웃으며 넘길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연구 결과의(또는 연구 결과를 빙자한) 홍보다. 특히 이런 홍보성 기사들은 사회적 오독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연구 내용을 홍보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1) 논문이 나온 경우, 2) 학회에서 발표한 경우, 3) 기관의 행사 홍보의 경우, 4) 방송이나 신문기사의 경우 등등이다.
이 중에서 논문이 좋은 저널에 실려서 홍보를 하는 경우는 가끔 그 내용에 비해 파급효과가 뻥튀기 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나마 바람직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간혹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저널에 나온 논문이 언론을 타는 경우도 있지만 뭐 저널이 논문의 질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적어도 논문이 나온 경우는 다른 사람들이 그 내용을 보고 검증하거나 비판이 가능하다.
심사를 통해 내용을 검증받는 논문과 달리 학회의 구두 발표나 여러 기관의 심포지움에서 나온 결과를 보도하는 경우는 데이터의 신뢰도가 좀 떨어지기 때문에 과신은 금물이다. 이런 경우는 가서 직접 듣거나 초록 정도의 제한된 정보만으로 판단해야 하는데 그건 쉽지 않다. 보통 제대로 된 연구 결과라면 논문화되어 발표가 될 테니 조금 기다려보는 것이 좋다.
이런 기사는 당췌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가장 문제가 되는 건 TV 프로그램이나 신문의 홍보용 기사, 또는 사회적 관심 거리가 있을 때 나오는 뉴스들이다. 뭐만 터지면 김치가 치료 또는 예방 효능이 있다는 식의 기사가 나오는데 10년이 지나도 관련 논문이 실린 것을 보기 힘든 경우도 있다. 건강 관련 방송에 나온 새로운 치료법을 보고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15년쯤 뒤에 가능하다고 했다고도 한다. 안타깝게도 세간에 떠도는 과학 상식(?) 중에는 이런 홍보성 기사나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 많다.
인터넷 시대에 소위 집단 지성에 대한 담론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그런데 사실 과학이야말로 집단 지성의 원천이다. 수많은 연구실에서 묵묵히 이루어지는 논문과 논문으로 오류를 교정하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집단 지성의 과정이 과학의 과정이다. 하지만 거기에 홍보와 같은 목적이 개입하면 그 과정은 흐트러진다. 때론 사회적으로 오독되어 엉뚱한 비용을 쏟기도 한다.
우리 실험실에 그득히 쌓인 배지들(media)
영어로 미디어(media)란 대중 매체를 뜻하기도 하지만, 실험실에선 미생물을 키우는 배지들을 뜻하기도 한다. 실험실에서 미디어를 잘못 만들면 균이 제대로 자라지 않듯이 미디어가 단지 홍보 수단으로 전락하면 대중의 사고와 상식도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필자 이한승 교수는
1969년 서울 출생. 1989년 연세대 식품공학과에 입학하여 계속 같은 과에서 공부하면서 학과가 식품생물공학과를 거쳐 생명공학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하였고 1998년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동경대학, (주)제노포커스, 미국 죠지아대학 등을 떠돌며 포닥으로 세계일주를 계획했으나 2007년 여름부터 부산의 신라대학교 바이오식품소재학과에 임용되어 재직중이다. 유전자 분석(BLAST) 때문에 남들보다 일찍 인터넷 세계에 입문하여 15년 가까이 홈페이지와 블로그(http://www.leehanseung.com)로 세상과 소통해 왔으며 극한미생물에 관심이 많아 극한미생물연구회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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