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31 잘 보이네. M33도 잡아봐. M103도 찾아보자.” 한창 무르익은 가을의 밤하늘을 즐기고 있던 우리에게 날벼락이 내렸다. 군인들이 M16 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별을 관측하던 우리를 포위한 것이다. 군인들은 어둠을 타고 슬그머니 다가와서는 M16 총구를 몇몇 친구들의 가슴에 겨누면서 ‘꼼짝마’를 외쳤다. 아마추어 천문 동아리가 사적으로 열던 관측회에 군인들이 들이닥친 이유는 어처구니없었다. M31이니 M33이니 암호 같은 말을 주고받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출동 이유 중 하나였다. 군인들에겐 M16은 자동소총이고 M60은 기관총이니 M31이나 M33도 그렇게 받아들였을지 모르겠다. 대학생 형들이 끌려가 각서 비슷한 것을 쓰는 것으로 해프닝은 마감되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1979년 10월 어느 날의 일이었다.
프랑스의 천문학자였던 메시에는 구경 10㎝ 정도의 작은 망원경을 사용해 혜성을 찾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그런데 밤하늘에는 별은 아닌데 흐릿하게 빛나는 천체들이 있어서 종종 혜성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있었다. 오늘날 은하, 성운 또는 성단으로 알려진 천체들이었다. 메시에는 이런 천체들의 목록을 만들어 혜성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했다. 메시에 천체 목록은 1771년 발표되었다. 메시에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M’을 앞에 쓰고 그 뒤에 1번부터 번호를 붙여 천체들을 구분했다. M1부터 M103까지 103개의 천체가 그 목록에 올랐다. 그 후 여러 사람에 의해 천체들이 추가되면서 M110까지 메시에 천체 목록이 확장되었다. 메시에 천체 목록은 작은 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있는 천체여서 천문학자들뿐 아니라 아마추어 천문가들 사이에서도 단골 관측 메뉴가 되었다.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촬영한 안드로메다 은하(M31)의 자외선 영상 (출처: 경향DB)
군인들에게 체포되는 데 한몫을 했던 M31은 안드로메다은하다. 크고 유명한 은하일수록 독립적인 천체 목록에 그 이름을 올리다보니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천문학자들은 안드로메다은하를 주로 NGC224로 부른다. ‘NGC’는 또 다른 천체 목록의 이름이다. M33도 나선은하다. 우리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가 속해 있는 국부은하군에 속한 또 다른 은하다. M103은 젊은 별들이 모여 있는 산개성단이다. 어린 시절의 꿈 중 하나가 모든 메시에 천체를 내가 만든 망원경으로 직접 관측하는 것이었다. 아마추어 천문가의 특권 중 하나는 합법적(?)으로 외박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특권을 적극 활용해 초등학교 시절부터 외박을 밥먹듯이 했다. 숱한 밤을 지새우면서 메시에 천체를 찾아다녔지만 모든 메시에 천체를 관측하려던 아마추어 천문가 시절의 꿈을 아직 이루지는 못했다.
메시에가 목록을 만든 곳이 프랑스다보니 남반구에서는 볼 수 없는 메시에 천체들이 존재한다. 북반구의 저위도 지방이 메시에 천체를 모두 관측하기에는 제일 적합한 곳이다. 우리나라도 날씨가 좋지 않기는 하지만 위치상으로는 메시에 천체를 관측하기에 괜찮은 곳 중 하나다. 매년 봄철 어느 날이 되면 많은 아마추어 천문가들이 메시에 천체를 단 하룻밤 동안 모두 관측해보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한 도전을 한다. 하룻밤 동안 모든 메시에 천체를 관측하는 일종의 아마추어 천문가들의 게임이자 모험이라고 할 수 있다. ‘메시에 마라톤’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미 은퇴한 아마추어 천문가지만 메시에 마라톤에 대한 로망은 여전히 내 가슴속에 각인되어 있다. 아마추어 천문가들이 준비했던 올 봄의 메시에 마라톤 행사는 아쉽게도 날씨 때문에 취소되었다. 내년 봄을 기약해야겠다. 직접 참가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들의 열띤 레이스를 구경이라도 하고 싶다.
M16은 군대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되는 자동소총이지만 밤하늘에서는 독수리성운으로 불리는 아름다운 성운이다. 우주공간에 떠있는 허블우주망원경이 찍어서 보내온 독수리성운의 모습에서는 별이 막 탄생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지상에 있는 천체사진가들의 단골 모델이기도 하다. 그만큼 숭고하고 아름다운 천체다. M60은 무시무시한 살상무기지만 밤하늘에서는 처녀자리은하단에 속한 타원은하다. 이 은하에는 수천억개의 별들이 있고 그 주위를 또 수천억개의 행성들이 돌고 있을 것이다. 그 중에는 지구와 닮은 행성들도 있을 것이고 그 속에서 우리를 관측하고 있는 천문학자들도 있을 것이다. 밤하늘과 더 친해져 보는 것은 어떨까. 무시무시한 M16과 M60을 평화로운 M16과 M60으로 바꾸기 위해서라도. 내가 자주 가던 술집 중에 ‘메시에’라는 곳이 있다. 신촌에 있는 술집인데 주인이 아마추어 천문가여서 상호를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메시에를 ‘메시아’로 잘못 보고 찾아오는 기독교인들이 가끔 있기는 하지만 이 술집은 늘 별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메시에 마라톤은 내년을 기약해야 하니 오랜만에 술집 ‘메시에’라도 한번 들러봐야겠다.
이명현 | 과학저술가·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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