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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융합교육의 알파와 오메가

우리 사회의 융합 담론이 최근에는 교육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창조경제란 용어가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기 이전부터 융합 연구의 필요성은 산업 현장에서 이미 널리 인식되어 왔다. 기술 선진국의 성취를 빠르게 학습하고 이를 보다 효과적으로 재생산하는 방식으로 경제발전을 이룩해온 우리나라가 1990년대 초반부터 몇몇 분야에서 세계 기술을 선도하면서, 차세대 기술표준이나 호소력 있는 미래사회의 비전을 제시해야만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새롭고 좋은 혁신적 기술을 개발해야 할 뿐 아니라, 그 기술 안에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여러 ‘가치’들을 담아내고, 그러한 혁신이 미래사회에서 어떤 복합적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혁신적 기술 자체도 대부분 여러 학문적 성취가 적절하게 결합될 때 나오는 경우가 많다. 자연스럽게 융합 연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융합 연구의 필요성은 자연스럽게 대학에서의 융합 교육 강화로 이어졌다. 대학에서 전문화 위주로만 키워진 인재들이 연구 현장에서 갑자기 융합적 창의성을 발휘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최근 여러 대학들이 앞다퉈 과학기술 관련 융합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다양한 교육방법과 평가방식을 시험하고 있다.

재직자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건국대 신산업융합학과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이 과정에서 ‘융합’이 마치 모든 성공의 문을 여는 마법의 열쇠인 것처럼 과대포장되는 폐해도 나타났다. 융합을 잘하려면 르네상스 시대 만능 과학기술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모든 것을 두루두루 아는 이른바 다빈치형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실제 성공적인 융합 연구를 위해서는 융합에 참여하는 사람들 각자가 일단 자신의 분야에서 충분한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여기에 더해 융합 연구 성공의 보다 결정적 요인은 만물박사의 능력보다는 자신이 잘 모르는 다른 분야로부터 필요한 정보나 지혜를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열린 마음’과 ‘학제적 학습 능력’이다.

‘열린 마음’이란 개별 학문의 틀로만 세상을 바라보려는 전문가 특유의 고집을 버리고 자신에게 낯선 이론적 틀이나 사고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한 무리의 다른 전문가들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런 후 낯선 시각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열심히 찾아보아야 한다.

다른 전공의 단점을 찾는 일은 아주 쉽겠지만 생산적 융합 연구를 위해 그런 작업은 지극히 비생산적이다. 최종 목적이 다른 학문 분야의 장단점을 자신의 전문성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풀려는 문제에 다른 분야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탐색하려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대학의 융합 교육 강좌를 맡아오면서 수강생 중 자신의 전공 교수님들에게 다른 학문을 폄하하는 말을 듣고 온 학생들이 많다는 점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자신의 전공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지니는 것을 넘어서 다른 학문의 연구방법은 모든 면에서 열등하다고 생각해서는 성공적인 융합 연구는커녕 효과적인 융합 교육조차 불가능하다. 융합 교육의 성공을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학문의 세계관과 접근방식을 존중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갖추도록 요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학제적 학습 능력’은 필요에 따라 다른 분과 지식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인지능력이다. 이를 위해 모든 분야의 지식에 ‘달인’이 될 필요도 없고, 이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하지만 주기율표에 내재한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첨단 화학 연구 결과를 활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공들여 쓰인 글이 주장하는 바의 정확한 내용과 그로부터 올바르게 도출될 수 있는 바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이 인문학으로부터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므로 ‘학제적 학습 능력’은 21세기의 맥락에서 여러 학문 분야가 이룩한 지식의 최첨단이 보여주는 ‘세계상’과 ‘방법론’의 핵심을 배우고 필요에 따라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함양할 수 있을 것이다.

융합 교육은 모든 분과 지식에 통달한 천재를 만들려는 교육이 아니다. 융합 교육은 ‘열린 마음’과 ‘학제적 학습 능력’을 향상시켜 향후 융합 연구 과정에서 집단지성의 힘을 배가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이상욱 | 한양대 교수·과학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