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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우려되는 ‘유전자검사 규제 완화’

병원을 가지 않아도 자신의 유전자를 간단히 검사할 수 있는 길이 조만간 국내에서 열릴지 모르겠다. 그동안 유전자검사는 주로 유전질환이 의심되는 사람을 대상으로 의료인과의 상담 후에 시행돼왔다. 앞으로는 건강한 사람이라도 유전자의 이상 여부를 알려주는 진단서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이달 초부터 정부는 ‘보건의료사업 규제 개선 30개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로 유전자분석 시장의 활성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민간업체가 직접 일반인의 유전자를 검사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겠다는 의미이다.

국내 대기업과 벤처회사들이 보유한 유전자분석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이들에게 정부의 검토는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대규모의 비즈니스를 수행할 수 있는 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논란을 떠올려보면 소비자에게는 반가운 일일까 의문이 든다. 미국은 오히려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추세이기에 국내의 움직임이 의아하기도 하다.

미국에서 유전자검사업체가 등장한 시기는 2007년이다. 업체 수는 한때 30여개에 이르렀다. 검사비용은 1000달러부터 시작됐다. 누구나 선뜻 지불할 액수는 아니었지만, 2000년대 초반 인간의 전체 유전자를 분석할 때 소요된 30억달러에 비하면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검사기간도 10년에서 1개월 내외로 단축됐다. 물론 유전자 전체가 아니라 특정 질환과 관련된 일부 부위를 검사하는 데 필요한 비용과 시간이다. 신청자가 할 일은 간단하다. 타액, 또는 입안을 살짝 긁어낸 면봉을 보내면 된다.

신청자들은 검사업체로부터 장래에 유방암이나 심장질환 같은 질병에 걸릴 가능성을 통보받았다. 커피를 많이 마시는 사람은 카페인을 얼마나 잘 분해시키는 체질인지 알 수 있었다. 유전정보를 스스로 손쉽게 확인함으로써 건강관리와 질병예방에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신청자들의 수는 수십만명에 달했다.

한 센터에서 유전자 유전자 감식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하지만 점차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먼저 소비자에게 불필요한 불안과 혼란을 줄 수 있다. 신청자가 받는 자료는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통계적으로 제시된 수치이다. 질병 유전자가 있다 해서 반드시 발병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신청자에게 다양한 질병에 대한 발생 확률이 제시되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됐다 해서 만족스럽기만 할까. 한때 ‘유전자 궁합’이란 우스갯소리가 떠돌았다. 조만간 결혼상대에게 건강진단서와 함께 유전자진단서를 요구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의미에서다.

겉으로는 멀쩡한 결혼상대의 수두룩한 발병 가능성을 알게 됐을 때 느낌이 어떨까. 의료기관이라면 전문가의 진단으로 이런 불안감은 상당히 사라지겠지만 말이다.

검사업체들의 기초자료가 제각기라는 점도 혼란을 부추긴다. 미국에서 실제로 여러 차례 보고돼온 사안이다. 예를 들어 2008년 한 과학저술가가 유전자 샘플을 세 군데 검사업체에 보낸 결과 심장마비에 걸릴 위험도가 높음, 중간, 낮음으로 제각각 나왔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자에서 한 장의 제목을 “당신 2.0: 나는 불운하다. 또는 아니다”라고 적었다.

개인정보의 보안 문제도 중요하다. 신청자가 제공한 유전자 샘플은 인적사항이나 건강기록 등과 함께 검사업체에 보관될 수 있다. 이 정보가 타인에게 유출돼 ‘유전자 프라이버시’가 침해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미국의 검사업체들은 제약회사나 생명공학회사와 제휴 관계를 맺어왔다. 확보된 수십만명의 유전정보를 연구자들에게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서이다. 나의 유전정보가 인류 복지를 위해 쓰이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누가 이 유전정보를 활용해 큰 이익을 얻을까를 생각해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환자로부터 얻은 유전정보를 활용해 특허를 취득한 검사업체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많은 검사업체들이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문을 닫은 상황이다. 2007년 설립된 ‘23앤드미’는 명맥을 잇고 있다. 그나마 지난해 말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제재로 가족력 확인 서비스만 하고 있다. 유전자검사 장비가 의료기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정부의 허가 없이 질병을 진단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한국이 이 사업을 진행하려 한다면 미국에서 제기된 다양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


김훈기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