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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차가운 사과가 더 달콤한 이유는?

시장에 햇사과가 한창이다. 사과를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같은 사과라도 차가울 때가 따뜻할 때보다 더 달콤하게 느껴진다. 밤새 냉장한 사과를 아침에 먹을 때 특별히 맛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질 현상을 모두 설명하는 것이 과학의 목표라면 이 현상에 대한 설명도 있어야 할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훌륭한 설명이 있다. 과일의 단맛은 주로 과일이 함유한 과당이란 물질에서 나오는데, 6개의 탄소 원자가 사슬처럼 연결된 모양을 가진 이 과당은 온도에 따라 복잡한 모양으로 엉키거나 일직선에 가까운 모양으로 풀리기도 하면서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그런데 낮은 온도에서는 더 강한 단맛을 내는 베타 형태가 알파 형태보다 더 안정적이어서 보다 많은 과당 분자가 베타 형태를 취하게 된다. 그래서 베타 형태의 과당이 더 많은 ‘차가운’ 사과가 그렇지 않은 ‘따뜻한’ 사과보다 더 달콤한 것이다.

완벽한 설명이 아닌가? 꼭 그렇지는 않다. 일단 이 설명은 차가운 사과의 달콤함을 화학적으로 해명한 것은 사실이지만 ‘왜’ 우리가 차가운 사과를 더 달콤하게 느끼는지 자체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처음 질문은 ‘차가움’과 ‘따뜻함’ 같은 일상적 차이가 왜 사과의 단맛에 차이를 가져오는지였다. 이에 대해 화학적 설명은 사과 성분의 구조적 차이가 사과의 단맛에 차이를 가져온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왜 베타 형태의 과당이 알파 형태의 과당보다 우리에게 ‘더 달게 느껴지는지’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신경과학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과당의 여러 이성질체를 차등적으로 달게 느끼는 것은 결국 우리 뇌가 아닌가? 단맛을 포함한 다섯 가지 미각 수용체로부터 오는 전기화학적 신호의 패턴이 어떻게 미각 신경을 통해 통합적으로 해석되어 우리의 ‘미각 경험’을 구성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대략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마도 필자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과당 분자의 구조적 차이가 우리의 단맛 감각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신경과학적 설명은 찾기 어렵다.

설사 이런 설명이 완벽하게 주어져도 여전히 남는 의문이 있다. 우리 인류가 무슨 이유로 이렇게 단맛을 느끼는 특별한 메커니즘을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진화생물학이 담당한다. 우선 단맛을 내는 물질이 주로 탄수화물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탄수화물은 우리 몸의 주요 에너지원이므로 탄수화물이 포함된 먹을 것을 쉽게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은 분명 인류 조상의 생존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우리가 단맛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면, 우리는 몸에 필요한 탄수화물을 열심히 찾게 되는 진화적 이득을 얻었을 것이다.

결국 차가운 사과가 더 단 이유를 납득하기 위해서는 분자학, 신경과학, 진화생물학 3가지를 통달해야 한다. 사진은 추석을 10여일 앞둔 26일 경남 거창군 고제면 원봉계마을 땀내기농원에서 농민들이 홍로사과를 수확하는 장면. (출처 : 경향DB)


결국 차가운 사과가 왜 더 단지에 대한 ‘완전한’ 과학적 설명은 과당 분자의 3차원적 구조와 그 과당 분자를 ‘달게’ 느끼는 우리 몸의 신경 메커니즘, 그리고 그러한 메커니즘을 갖게 된 진화생물학적 설명이 함께 결합된 형태가 될 것이다. 이들 설명 각각에 아직 보충할 점은 많지만 이런 방향으로 설명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완전한’ 과학적 설명은 차가운 사과의 달콤함을 남김없이 설명한 셈인가?

그런데 말이다. 꼭 그렇지는 않다. ‘완전한’ 과학적 설명이 주어져도 우리가 사과를 깨물 때 느끼는 ‘주관적 경험’으로서의 달콤함은 여전히 해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탄수화물이 들어 있는 물질을 판별하기 위해 ‘단맛’이 동원되었다면 왜 우리는 단맛 대신 ‘쓴맛’을 동원하도록 진화하지 않았을까? ‘쓴맛’은 많은 경우 ‘즐거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면, 이는 여러 미각 중에 좋은 느낌의 미각을 그저 ‘단맛’으로 부른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이처럼 차가운 사과의 달콤함은 과학자와 철학자 모두에게 여전히 더 탐구할 주제를 풍성하게 남겨두고 있다. 보다 만족스러운 설명을 얻기 위해 각각의 연구는 필연적으로 통합되어야 할 것이다. 세상은 과학과 철학으로 나누어져 있지 않다. 오직 우리의 연구 방식이 그럴 뿐이다.


이상욱 | 한양대 교수·과학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