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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인간과 기계의 대결?

이번주로 예정돼 있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언론에서는 앞다투어 인간과 기계의 대결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이미 체스와 퀴즈쇼에서 기계에 패한 전력을 상기시키며 이번에는 인류 자존심의 마지막 보루를 이세돌 9단이 지킬 수 있을 것인지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을 파악하는 것은 사실적 오류다. 이세돌 9단이 대결하는 상대는 결코 기계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사람+기계’ 연합팀과 대결한다고 보아야 한다. 게다가 알파고는 이세돌 9단처럼 바둑을 두는 과정에 집중하거나 즐길 수도 없다. 알파고가 자신이 ‘바둑’이라는 인간의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다고 보기조차 어렵다. 알파고는 복잡한 알고리즘을 활용해 문제를 푸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작성한 컴퓨터 공학자들은 바둑 관련 자료를 면밀히 분석, 가장 효과적인 바둑 알고리즘을 찾아내 알파고를 만들었다. 결국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이긴다면 그는 알파고를 만든 공학자팀과 기계를 한꺼번에 이긴 셈이고, 그 반대의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아직은 인공지능 프로그램 ‘혼자’ 이세돌 9단을 이겼다고 보기는 힘들다. 1997년 5월에 벌어진 IBM의 인공지능 체스 컴퓨터 딥블루와 당시 체스 세계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의 대국을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그 전해에 치러진 딥블루와의 첫 대결에서 카스파로프는 첫판을 내주기는 했지만 종합점수 4 대 2로 승리했다. 카스파로프는 당시 체스 마스터 중에는 드물게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하는 체스 프로그램의 특징에 익숙했다. 그렇기에 카스파로프는 자신이 ‘인간적인 창의성’이 결여된 체스 프로그램을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첫 대국에서 딥블루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수를 두자 카스파로프는 당황했다. 누가 봐도 ‘멍청한 수’였고, 비록 카스파로프가 이기기는 했지만 ‘기계는 결국 예측가능한 방식으로밖에 체스를 둘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이 한 수에 카스파로프는 당혹감을 느꼈다. 결국 카스파로프는 이후에 무너지기 시작해 종합점수에서 3.5 대 2.5로 패하고 말았다. 그는 대국 후에 IBM이 인간 기사를 활용하는 반칙을 저질렀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멍청한 수’가 정작 알고리즘 오류였다는 사실이다. IBM 기술자들은 이 오류를 금방 간파해서 다음 대국이 벌어지기 전에 알고리즘을 수정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몰랐던 카스파로프는 ‘창의적으로’ 체스를 둘 줄 아는 기계의 등장에 당황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기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된 이미지는 소위 인간과 기계의 대결 상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얼핏 듣기에는 형용모순처럼 느껴지는 인공지능 심리학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은 자연스럽게 인공지능의 행위를 인간 마음에 대한 가정에 맞추어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로봇은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실수’를 하고 다른 방식으로 사고를 한다. 이렇게 인간과 다른 방식의 지적 사고 능력에 주목하지 않으면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번 ‘대결’에 대한 관심에서 더 이상한 점은 왜 그토록 승패에 집착하는 가이다. 어떤 계산 천재도 싸구려 계산기보다 계산을 빨리할 수 없다. 이 점이 우리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가? 그럴 리는 없다. 인간이 치타보다 빨리 뛰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육체적 능력이 아니라 지적인 능력에서는 기계가 결코 인간의 상대가 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오랜 기간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해 왔다. 또한 계산 능력처럼 인간이 기계보다 못한 영역이 나타나면, 그 능력은 인간의 ‘고도’ 정신 능력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거나 실수도 안 하고 계산을 척척 하는 능력은 ‘기계적’이라고 폄하한다. 즉, 인간이 가진 매우 특수한 종류의 능력의 조합이 전 우주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고 기계가 그것을 해내지 못할 때는 역시 인간이 우월하다고 자신하다가 기계가 그런 일을 해낸 순간 인간은 그런 기계적인 능력보다 더 훌륭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자위하는 것이다.

기계가 적어도 당분간 하기 어려운 인간의 능력을 원한다면 지저분한 방 안에서 수건을 찾아 깔끔하게 접어놓는 일은 어떨까? 이 간단해 보이는 일을 기계가 하기에는 수많은 난관이 있다. 일단 수건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하고 그걸 깔끔하게 접어야 한다. 모두 원칙적으로 가능하긴 하지만 사람처럼 효율적이고 재빠르게 하는 기계는 당분간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수건을 정리하는 능력을 인간의 우월함을 보여주는 능력으로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말 그럴까? 이쯤 되면 기계는 못하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에 집착하기보다는 인간과 기계의 서로 다른 종류의 지능을 인정하고 생산적인 협력을 모색해야 할 때가 왔다고 보아야 한다.


이상욱 | 한양대 교수·과학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