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학, 인간에 대한 경험과학적 탐구는 왠지 불온해 보인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인간을 동물이나 사물과 같은 지위로 격하하려는 시도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동일한 경험적 방법으로 연구하기에 인간과 동물은 너무도 다르지 않은가?
물론이다. 하지만 인간의 특별함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도 위험하다. 최근 칼레도니아 까마귀가 조약돌을 활용해 물이 얕게 담긴 유리병 밑에 놓인 먹이를 둥둥 뜨게 해서 꺼내 먹는다는 점이 밝혀졌다.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도구 사용을 잎이 달린 나뭇가지를 가공해 흰개미를 잡아먹는 침팬지만이 아니라 멍청한 동물의 대명사인 새도 할 수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지구상에서 생명의 역사를 공유한 인간과, 인간이 아닌 동물은 차이도 많지만 중요한 특징도 수없이 공유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그의 주저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를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출판했다. 책 서문에서 그는 겸손하지만 청년다운 단호함으로 자신이 이 책을 통해 도덕철학에서 성취하려는 바가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통해 자연철학에서 이룩한 것에 비길 만한 것이기를 바란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뉴턴이 자연의 원리에 대한 경험적 탐구를 통해 모든 사물의 운동을 설명했듯이, 흄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경험적 탐구를 통해 윤리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치학·경제학·법학 등 모든 사회과학적 주제를 포괄하는 당대 도덕철학의 기초를 놓을 수 있기를 희망했다.
1687년 뉴턴 ‘프린키피아’ 출간 (출처 :경향DB)
우리에게 흄은 회의론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 흄이 윤리학과 사회과학의 기초를 인간 본성에 대한 경험적 탐구에서 찾았다는 점이 의아하게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흄의 회의주의는 그가 공격 대상으로 삼은 당시 철학자들의 독단, 즉 자신이 생각하기에 ‘자명’한 것에서 세상이 그러하다는 결론으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지적 자만을 경계하려는 것이었다. 흄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지식에서 절대적 확실성을 보장하려는 시도가 부질없음을 강조했다. 그렇기에 그가 추구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지식의 기초 역시 충분히 견고하고 믿을 만한 것이기는 하지만 언제든지 더 많은 경험과 차분한 검토를 통해 개선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것이 인간으로서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과학 지식의 확실성의 한계였다.
결국 흄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학문적 탐색이 자연 현상에 대한 학문적 탐색과 유사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최근 인간 본성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도덕심리학자나 행동경제학자들이 흄의 저작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흄은 자연과학과 인간과학이 완전히 동일한 방식으로 연구될 수 있다고 보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자연 현상에 대한 탐구와 달리 인간 행동이나 사회규범에 대한 탐구는 연구자의 선입견에 영향받기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사회심리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 대해 가해진 자극에 반응한다. 텔레비전을 구매할 의사가 있는지를 묻는 설문에 답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텔레비전을 구매할 확률이 더 높다. 자연과학과 달리 인간과학에서는 연구대상이 되는 경험 자체가 연구결과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성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을 자신의 주체적 결정에 따라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로 규정한다. 우리의 상식적 인간관도 이와 그리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인간은 인터뷰 직전 뜨거운 커피를 마셨는지 차가운 콜라를 마셨는지에 따라 인터뷰 대상자에 대해 평가가 달라지는 성향을 보일 정도로 상식적 인간관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존재이다. 인간과학 연구의 가치는 인간과 동물이 얼마나 유사한지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우리는 인간에게만 고유한 합리성이나 문화에 대한 인문학적 탐색이 놓치고 있는 인간의 복잡한 면모에 대한 경험과학적 탐구가 인간에 대한 유의미하고 귀중한 지식을 얼마나 더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변해야 할 근거를 흄의 후계자인 인간과학자들이 충분히 축적해 놓았다. 일찍이 흄이 의도했듯이, 우리는 인간에 대한 경험과학적 탐구 결과를 적극적으로 고려함으로써 그 기초 위에 인간에게만 가능한 삶과 세계에 대한 훨씬 멋진 조망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욱 | 한양대 교수·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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