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가 사회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요즘 첨단 생명공학을 동원해 무병장수를 실현하겠다고 나선 미국의 한 기업이 화제다. 지난해 미국 샌디에이고에 설립된 인간장수주식회사(HLI·Human Longevity Inc.)가 이달 초 세계 언론에 자신의 출범을 본격적으로 알렸다. 인간의 유전정보는 물론 몸에 사는 미생물의 유전정보, 세포의 대사물질 정보, 그리고 줄기세포 기술을 모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사실 일반인에게 익숙한 용어들이어서 새롭지 않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회사가 사상 최대 규모를 갖추고 있고, 설립자가 생명공학계의 세계적인 스타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인간의 유전정보에 대한 소유권이 기업에 주어지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가 새삼 의문스럽다.
HLI의 설립자 가운데 한 명이 크레이그 벤터이다. 벤터는 2010년 미생물의 유전자 전체를 합성해 미생물을 살아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사이언스’에 보고했다. 실험실에서 생명체가 합성될 수 있다는 사실에 세계가 깜짝 놀랐다.
2000년대 초반에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독자적으로 완수해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인간 유전자에 존재하는 30억개의 염기가 어떤 순서로 배열돼 있는지를 밝히기 위해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이끄는 국제연구팀이 1990년부터 추진한 사업이었다. 10여년에 걸쳐 30억달러가 투자됐다. 그런데 벤터는 1998년 셀레라 지노믹스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 국제연구팀과 같은 시기에 대등한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았다.
벤터는 HLI의 연구성과를 활용해 인간이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투자자들로부터 초기자금 7000만달러를 확보한 상황이다. 생명공학 회사인 일루미나에서 최신 장비 두 대를 구입해 당장은 1년에 4만명의 유전정보를 해독하겠다고 한다. 향후 그 수를 10만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일루미나의 장비는 사람 한 명의 유전정보를 1000달러 선에서 알아낼 수 있다. 현재 HLI가 표방한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는 암 정복이다. 건강한 사람과 암환자의 유전정보를 비교해 암의 발생 원인을 규명하고 신속한 진단기법을 개발하려 한다.
벤터의 화려한 이력에 비춰보면 HLI의 목표는 기술적으로 달성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연구에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장비 두 대의 가격은 2000만달러에 달한다. 4만명의 유전정보를 해독하려면 4000만달러가 필요하다. 1년만 지나면 지금보다 많은 자금이 필요해지는 상황이다.
HLI의 주요 자금확보 전략은 유전정보의 판매이다. 제약회사에 질병 유전정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신약이나 새로운 진단법이 개발될 때 막대한 로열티를 받을 수 있다. 당연히 HLI는 주요 유전정보에 대해 특허를 등록할 것이다.
인간게놈 프로젝트 웹사이트가 제공하는 SNP 가상 모형도 (출처 : 경향DB)
벤터는 인간게놈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유전정보 특허를 등록해 국제연구팀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인간의 유전정보를 누군가가 소유해서는 안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인간게놈프로젝트가 완료되던 시점에서 국제연구팀은 모든 정보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하지만 벤터는 주요 정보에 대해 제약회사나 대학교에 판매하는 전략을 세웠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국제연구팀이 정보를 공개한 상황에서 벤터를 찾는 수요자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암을 예로 들어보자. NIH는 2005년부터 암게놈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3억7500만달러를 들여 1만여개의 암세포 샘플에서 유전정보를 분석했다. 암을 일으키는 주요 유전자가 대거 밝혀졌다. 하지만 최근 보고에 따르면 제대로 된 연구를 위해서는 지금보다 10배의 샘플이 필요하다고 한다. NIH가 향후 더욱 많은 연구비를 투자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벤터가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한다면 암 유전자에 대한 지식재산권은 상당부분 HLI에 귀속될 것이다.
HLI의 설립자 한 명은 이렇게 장담했다. 인간이 80세까지 살 수 있는지는 생활습관에 달려있지만, 100세 이상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은 유전학자에 의해 확보될 것이라고. 그런 기대감은 좋다. 다만 그 비용을 누가 얼마나 감당해야 할지가 걱정된다.
김훈기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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