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원 | 서울시립대 교수·철학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 자연에 대한 이해는 오늘날 자연과학의 핵심 테마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과학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가령 오늘날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인 환경문제만 보더라도 그것이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깊은 관련을 갖기 때문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자연을 하나의 거대 기계로 보는 기계론적 관점과 하나의 유기체적 생명체로 보는 유기체적 관점으로 크게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기계론적 자연관은 16세기 이후의 과학혁명(가령 역학, 천문학, 화학 등에서의 혁명)과 데카르트적인 합리주의 전통에서 유래한다. 과학혁명의 과정은 자연을 보는 관점을 급격히 바꾸어 놓았는데 전통적인 신 중심의 자연관, 즉 자연은 신의 의도에 따라 설계되고 신의 행동과 목적에 따라 움직인다는 생각이 포기되었다. 대신 자연은 시계 태엽처럼 지극히 단순한 기계적 힘에 의해 작동되는 정교하게 구성된 자동기계와 같고, 이 기계의 작동과정은 수학과 실험을 통해 충분히 이해될 수 있고 그 결과는 예측될 수 있으며, 한 발 더 나아가 인간에 의해 조절 또는 조작될 수 있다.
서울 일자산 자연공원 영농체험장에서 어린이들이 벼 수확 체험을 하고 있다. l 출처:경향DB
이러한 생각은 데카르트적인 합리주의 전통을 통해 한층 강화된다. 데카르트는 물질과 정신을 서로 다른 실체로 철저하게 구분했다. 특히 물질은 기하학적 연장성을 속성으로 갖고, 정신은 생각함을 속성으로 갖는 실체로 보았다. 이러한 구분은 중요한 함축을 내포하고 있는데, 하나는 근대과학의 원리들이 정신이 배제된 물질세계에 국한하여 적용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기하학적 연장성을 본성으로 하는 물질세계에 대한 양적·기계론적 사고다. 정신으로부터 분리된 물질세계가 외연적 연장성을 본성으로 갖는다는 것은, 물질세계를 질적인 것이 아니라 양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뜻한다. 또한 이는 물질세계가 수학적이고 양적인 어떤 기계적 법칙에 의해 작동함을 함축한다. 결국 자연을 기계적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로 보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인간에 대해선 생각함을 속성으로 갖는 정신 또는 영혼과 연장성을 속성으로 하는 물질로서의 육체로 구분되어 있고, 정신은 육체가 사라진 뒤에도 존재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인간의 정신은 자연의 다른 모든 물질적 존재자들에 비해 우월하고 자유로운 위치에 있으며, 자연의 어떤 기계적인 법칙에 의해서도 지배되지 않게 된다. 오히려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이다.
한편 유기체적 자연관은 자연을 기계 대신 하나의 생명체와 유사한 것으로 본다. 즉 인간을 포함하여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마치 생명체의 각 기관들이 각자의 존재적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긴밀하게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듯이, 하나의 통일적 전체를 이루고 있다. 이는 19세기 유럽의 낭만주의적 전통 및 생물과학(가령 다윈이론, 생태학 등)의 발달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낭만주의적 전통은 어떤 하나의 보편적인 원리나 완벽한 형태를 추구하기보다는 개별자들의 다양성과 상이함을 추구하는데, 그러한 의미에서 이는 생명체 각각의 존재성과 상대적인 자율성을 승인하는 유기체적 자연관을 지지해 준다.
여기에 생태학의 발전은 자연을 구성하는 이러한 생명체들 사이에, 생명체와 무생명체 사이에, 나아가 이들과 물리·화학적 환경 사이에 유기적인 상호 의존성이 존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가운데에서 하나의 고리라도 위협을 받게 되면 그 영향이 유기체 전체로 확산됨을 말해 주고 있다. 인간 역시 유기체적 자연의 한 부분이기에, 인간의 행위 또한 유기체적 질서를 깨트리지 않도록 행해져야 한다. 생태학은 생명체와 비생명체로 구성된 전형적인 복잡계인 생태계의 원리와 기작(메커니즘)을 탐구하는 과학이다. 이에 따르면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진화과정의 결과로 복잡한 인과 연쇄 곧 유기적 연관성을 지니고 있고 자연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균형과 조화, 자기 조절 능력을 갖춘 복잡한 시스템이며, 한 부분의 이상은 다른 부분에로 그 영향이 크고 멀리까지 미치고 오래 지속됨을 강조한다.
이는 자연을 단순히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한 자원으로 파악하고 목적의식적인 개조 대상으로 보는 기계론적 관점을 거부하고, 자연을 인간을 탄생시킨 존재 그 자체로 보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새롭게 재구성한다.
어떤 관점이 실재하는 자연을 더 잘 그려낼까. 그것이 무엇이든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러한 자연관과 관련하여 의미있는 화두가 있다면, 자연 안에서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혹은 자연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인가이다. 어떤 결론을 내리는가에 따라 자연에 대한 인간의 행위와 가치는 달라질 것이며, 인간의 삶 자체 또한 근원적으로 재정립될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참된 인간의 모습을 찾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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