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학오디세이

갈릴레오 종교재판의 진실

이상욱 | 한양대 교수·철학

 

자연과학자들은 과학적 사실과 어긋나는 대중의 믿음에 대해 참기 어려워한다. 복권이 많이 당첨된 장소에 사람이 몰리거나 화학물질이 첨가되지 않은 음식은 몸에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에 기가 막혀하는 과학자를 필자는 여럿 보았다. 이유는 아주 명쾌하다.

 

복권의 숫자가 일반적으로 가정되는 것처럼 무작위로 나온다면 복권이 많이 당첨된 곳이나 한 번도 당첨되지 않은 곳 모두 정확히 똑같은 당첨 확률을 갖는다. 이는 서로 인과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무작위 사건에 대해 통계학적으로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화학적(化學的)’이란 화학 원소의 성질 및 결합과 관련된다. 이런 의미에서 ‘화학적’이지 않은 물질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아마도 우주공간에 홀로 떠다니는 이온화된 원자 정도가 화학적이지 않을 것이다. 결국 유기농 식품이나 친환경 식품도 몸에 나쁜 합성 첨가물이 잔뜩 들어간 정크푸드만큼이나 화학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자신의 분야 지식에 비추어 잘못된, 일반인이나 다른 분야 사람들의 믿음에 대해 답답해하는 과학자들이 정작 과학의 역사에서 기초적인 사실조차 틀리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해석의 여지가 많은 논쟁적 사안이 아니라 논란의 여지가 거의 없는 ‘사실’에 대해 그렇다는 말이다.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친필서명이 들어있는 종교 재판기록 I 출처:경향DB

 

갈릴레오의 종교재판에 대해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갈릴레오는 무자비한 종교의 비합리적 탄압에 저항하며 과학적 진리를 지켜낸 사람으로 알려져있다. 글자 그대로 성서를 해석할 것에 집착한 가톨릭교회는 코페르니쿠스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로 인해 코페르니쿠스주의를 옹호하던 갈릴레오에게 종교재판이라는 무시무시한 협박을 통해 의견철회를 강요했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장을 나서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중얼거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갈릴레오 사후 100년도 더 지나 처음 등장하는 이 이야기는 갈릴레오의 영웅적 모습을 돋보이려는 의도로 지어낸 것임이 확실하다.

 

이런 이야기의 문제는 역사적 사실과 거의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주된 이유는 그가 코페르니쿠스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니었고, 성서를 올바로 해석하면 코페르니쿠스주의와 성서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갈릴레오는 신앙의 문제에 대해 자신이 신학자나 교황을 오류로부터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정작 코페르니쿠스주의 자체는 가톨릭교회로부터 정죄된 적이 없다. 천문계산을 위한 수학적 도구로 태양중심설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가톨릭교회는 아무 불만이 없었다. 문제는 죽을 때까지 독실한 신자였던 갈릴레오가 우주의 ‘진짜’ 모습이 태양중심설이며, 이는 성서를 ‘올바로’ 해석한 결론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갈릴레오는 자신을 종교에 ‘저항’하는 과학자로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갈릴레오는 가톨릭교회 내에 친구가 무척 많았다. 자신을 종교재판에 회부한 교황과도 추기경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다. 게다가 교황과 정치적으로 라이벌인 피렌체 메디치가로부터 절대적 지원을 받고 있었다. 당시 문헌에 근거할 때, 갈릴레오의 종교재판을 과학과 종교의 근본적 대립으로 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가톨릭 신자이자 과학자였던 갈릴레오와 교황 세력 사이에 성서의 올바른 해석을 놓고 일어난 의견차이에서 비롯된 불행한 에피소드였다. 당시 신교라는 대안 종교가 등장하면서, 가톨릭 세계의 패권을 두고 스페인과 경쟁하던 바티칸의 입장에서는 갈릴레오의 ‘이견’에 대해 엄중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런 잘못된 믿음이 왜 지속될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갈릴레오 종교재판의 신화가 과학자에게 여러 모로 ‘유용하다’는 사실도 있을 것이다. 비과학적 권위에 맞서 굳건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갈릴레오의 모습은 진정으로 영웅적이다. 자연스럽게 갈릴레오의 종교재판은 과학연구의 방향이나 연구주제에 사회적, 정치적 가치판단을 하려는 시도에 대해 그런 시도가 얼마나 비생산적이며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활용된다. 과학자가 무엇을 어떻게 연구하든 그것은 과학적 진리를 찾기 위한 노력이므로 그 과정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갈릴레오 종교재판에 대한 허구적 믿음만큼이나 근거가 없다. 물론 과학적 참·거짓 여부를 사회적 권위로 결정하려는 시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하지만 보다 가치있는 연구주제의 선정이나 보다 바람직한 연구방법의 선택에는 당연히 사회적 고려가 영향을 미쳐야 할 것이다. 실제로 갈릴레오의 ‘진짜’ 삶과 연구는 이런 생각과 합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