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석 | 인천대 교수·컴퓨터공학
최근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 구글 크롬의 상승세가 가파르다. 인터넷 시장조사 업체인 스탯카운터(StatCounter)에 따르면 2012년 3월 현재 데스크탑용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시장 점유율은 34.8%를 기록하고 있고 구글 크롬의 시장 점유율은 30.4%라고 한다. 아직까지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1위이기는 하지만 크롬이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4%포인트 차이로 바짝 추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1년 전 45%를 기록한 이후 계속 점유율이 감소하고 있지만, 크롬은 1년 전 17%에서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다른 인터넷 시장조사 업체인 넷 애플리케이션(Net Applications)의 경우에는 2012년 3월 현재 인터넷 익스플로러 53.%, 파이어폭스 20.6%, 크롬 18.6%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두 기관의 시장 점유율이 차이가 나는 것은 조사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중요한 것은 두 기관 모두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경우 대세 하락, 크롬의 경우는 대세 상승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지속될 경우 올해 6월에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크롬의 점유율 순위가 역전되고, 내년 초에는 크롬의 점유율이 50%를 넘어설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기 시작했다.
1990년대말 제1차 브라우저 전쟁(Browser War I)의 일방적인 승리를 통해 당시 80%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던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를 밀어내고, 세계 시장 점유율을 95%까지 끌어올린 인터넷 익스플로러였지만, 2004년 모질라재단에서 파이어폭스를 출시하면서 시작된 제2차 브라우저 전쟁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며 이제는 크롬에 업계 1위 자리를 위협받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필자는 이러한 브라우저 전쟁을 보면서 기원전 146년에 멸망한 카르타고를 떠올리곤 한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에 보면 한니발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카르타고의 멸망을 지켜보던 로마 장군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자신의 뒤에 서 있던 폴리비오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폴리비오스. 지금 우리는 과거에 영화를 자랑했던 제국의 멸망이라는 위대한 순간을 목격하고 있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 로마도 이와 똑같은 순간을 맞이할 거라는 비애감이라네.”
제1차 브라우저 전쟁의 승리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이러한 비애감을 느낀 관리자가 있었을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서 사용되는 모바일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는 2012년 3월 현재 애플 사파리가 61%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안드로이드 브라우저와 오페라 미니가 각각 18%, 15%로 뒤를 따르고 있다.
제2차 브라우저 전쟁에서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고전하고 있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크롬과 사파리 모두 공개 소스 프로젝트(open source project)로 진행되고 있는 웹킷(WebKit)이라는 렌더링 엔진(rendering engine)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렌더링 엔진이란 웹 문서를 해석하여 화면에 배치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웹 브라우저의 속도를 좌우하는 기본적인 프로그램이다. 결국 폐쇄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공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는 구글과 애플의 웹 브라우저 성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향후 전반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방향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세계 시장의 경우와는 달리 국내에서는 현재까지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절대 강자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이 80% 이하로 떨어졌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아성은 견고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웹 사이트 중에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동작하는 사이트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기 위해 대표적인 민원서류 발급 사이트인 민원24에 크롬을 사용하여 접속해 보니, 로그인부터 민원서류 출력 직전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민원서류 발급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인 출력을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결국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사용하여 다시 접속하여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을 수밖에 없었다.
요즘처럼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없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사용자들이 자신의 기기에 설치된 웹 브라우저로 접속할 수 없는 웹 사이트에는 더 이상 들어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므로, 우리나라에서 웹 브라우저의 종류에 관계없이 사용 가능한 웹 사이트를 만드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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