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쌀(golden rice). 보통의 쌀과 달리 색깔이 누렇고, 황금처럼 큰 가치를 갖는다는 의미에서 명명된 쌀이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먼저 개발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의 차세대 대표 주자이다. 자연산 쌀에 외래유전자를 삽입, 밥을 먹을 때 비타민A의 섭취량도 높이겠다는 취지에서 개발되고 있다. 개발자 측은 황금쌀이 질병과 기아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주식을 연구하는 과정인 만큼 어느 때보다 면밀하고 공정한 실험 절차가 필요하다. 또한 황금쌀의 개발과 관련된 이해당사자들과의 의견 조율, 즉 사회적 수용 절차가 중요하다. 그럼에도 최근 외국에서 전해진 두 가지 소식은 황금쌀의 개발 과정이 그다지 순탄치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한 가지는 지난 9월 중순 미국 터프츠 대학의 발표에서 드러난 시험규정 위반 사항이다. 1년 전 중국에서 ‘황금쌀 사건’이 발생해 세계적인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터프츠 대학의 연구진이 중국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황금쌀을 섭취하게 한 후 그 효과를 조사한 일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사람은 비타민A를 동물성과 식물성 식품을 통해 섭취한다. 그런데 식물성 식품의 경우 비타민A 자체가 들어있지 않고 그 이전 단계 물질인 베타카로틴이 존재한다. 황금쌀은 이 베타카로틴 유전자를 함유하도록 변형된 쌀을 의미한다.
터프츠 대학 연구진은 황금쌀 안의 베타카로틴이 인체에서 비타민A로 잘 전환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인체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대상은 중국 후난성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6~8세 어린이 68명이었다. 연구진은 황금쌀, 시금치, 그리고 순수 베타카로틴 오일 성분 등 3가지를 어린이들에게 섭취하게 했다. 총 실험 기간은 5주였다.
논문에서 제시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혈액을 채취해 조사한 결과 황금쌀을 섭취했을 때 비타민A의 공급량이 순수 베타카로틴 오일을 섭취한 경우와 유사했다. 그리고 시금치를 섭취한 경우보다 좀더 효과적이었다. 이 연구결과는 2012년 8월1일 발간된 ‘미국임상영양학 저널’에 발표됐다.
하지만 논문이 발표되자 중국은 발칵 뒤집혔다. 황금쌀의 안전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린이에게 실험을 감행했기 때문이었다. 누가 이 실험을 승인했고, 실험 대상자와 그 부모에게 제대로 동의를 받았는지가 핵심 사안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12월 중국 정부는 황금쌀 임상시험을 부당하게 허가한 관계자 3명에게 면직 처분을 내렸고, 해당 기관이 공개적으로 사죄하도록 명령했다고 밝혔다. 실험 참가자 가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고, 향후 후유증이 발생하면 정부가 책임진다는 약속도 있었다. 그리고 9월 터프츠 대학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연구 동의서에는 실험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 없었다. 황금쌀을 GMO라고 밝히지 않고 그저 “새로운 쌀”이라고만 표현했다. 더욱이 일부 서명 날짜는 조작된 것으로 추정됐고, 부적절한 형태의 서명도 발견됐다. 일부 부모는 이 실험이 학교에서 행해지는 공식 프로그램인 줄 알았다고 밝혔다. 터프츠 대학은 이 연구를 총괄한 교수에게 향후 2년간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64세의 이 교수는 이미 내년에 연구실 문을 닫고 은퇴하기로 결정한 상황이었다.
다른 한 가지 소식은 지난 8월 초 필리핀에서 발생한 ‘황금쌀 시험재배지 습격 사건’이었다. 현재 필리핀에서는 국제쌀연구소(IRRI)와 필리핀쌀연구소(PRRI)의 지원 아래 5개 지역에서 황금쌀의 시험재배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400여명의 지역 농민들이 IRRI가 관할하고 있는 한 시험재배지를 찾아 황금쌀 품목을 모두 뿌리째 뽑아버렸다. 이들의 주장에는 황금쌀이 인간의 건강과 자연 환경에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황금쌀 재배가 지역 농민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이들은 필리핀에 만연하고 있는 비타민A 결핍증 문제가 기존의 과일과 야채의 재배와 소비를 적극 장려하면 해결될 수 있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단지 비타민A를 국민에게 충분하게 공급하기 위해 각종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GMO를 필리핀에서 대규모로 재배할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IRRI는 사건 직후 농민들의 판단과 행동에 실망감을 표하며 황금쌀 시험재배가 계속 추진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향후 2년 내에 상업적 재배를 실현하겠다는 목표이다. 개발자 측의 의지대로 연구가 진행될 수는 있겠지만, 그 성과물이 사회적으로 잘 수용될지는 확실치 않다. 황금쌀의 주요 이해당사자인 최종 소비자가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김훈기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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