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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경계할 것인가, 행동할 것인가

올해 추석은 유난히 더웠다. 그러다보니 정성껏 준비한 차례음식이 상하고, 부산 해운대에서는 수천명이 해수욕을 즐겼다는 뉴스까지 들려온다. 


막연하게나마 우리가 비정상적인 기후 상황에 처해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당장 무슨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얼어붙은 북극해에서 놀고 있는 범고래 (출처 :경향DB)



하지만 기후변화에 대해 권위 있는 보고서를 발표해 온 유엔 산하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가 최근 기후변화의 속도나 강도에 대해 완화된 예측을 내놓았다는 소식도 전해온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행동과 정책을 취해야 할까?

미래에 대한 과학적 예측에 어느 정도의 불확실성이 있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렇다면 그런 불확실성하에서 우리의 행동이나 정부의 정책을 결정하기 위한 적절한 원칙은 무엇일까? 


일단 ‘사전예방’을 우선시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파국적 기후변화가 일어날 확률이 정확히 얼마든 상관없이 이를 미리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파국적 결과가 왔을 때의 피해가 너무 크고 일단 상황이 벌어지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로 제시될 수 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 특히 냉장고에 잘 보관된 식품은 먹어도 대부분 별탈이 나지 않는다. 물론 출고된 직후처럼 신선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그 이유는 식품이 부패기한보다 유통기한을 충분히 짧게 잡기 때문이다. 낮은 확률이라도 상한 식품을 먹고 사람이 탈이 나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사전예방 원칙은 과학적 지식에 기반해 우리 사회가 운영되는 방식에 잘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극히 낮은 확률을 갖는 파국적 사건마다 그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분명히 대형 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건축물을 지진에 절대 무너지지 않도록 지어야 한다는 규정 도입에 찬성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일단 어떤 규모의 지진에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건물을 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설사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기에 현실성도 없다. 대신 원전처럼 절대적 안전이 요구되는 건축물에 특별히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선택적 규정을 택하는 게 현명한 일일 것이다. 


이처럼 모든 불확실한 위험에 대비하되, 그 대응 방식이 비용 대비 효과의 측면에서 합리적일 수 있는 것만을 시행하는 것을 ‘사전경계’ 원칙이라 한다. 사전경계 원칙은 현재 기후변화를 비롯한 지구적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국제사회의 노력의 기본 원칙으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일부 급진론자들은 사전주의 원칙이 기술 발전을 부당하게 규제한다고 주장하면서 ‘행동우선’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기술 개발을 통해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도 있지만 역으로 현재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가 기술적으로 해결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 두 가능성 중 어떤 것이 어떻게 실현될지는 실제로 기술 개발을 해보기 전에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그러므로 행동우선주의자들은 이런 불완전한 예측에 기대어 사전예방이나 사전경계적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일단 기술을 개발해 널리 사용한 다음 그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그때그때 해결해 나가자고 제안한다.

환경운동가들이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할 것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


행동우선주의자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완화하거나 저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탄소가스 배출 억제와 같은 소극적 대응이 아니라 기후변화의 위험을 타개할 수 있는 신기술 개발과 이런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얼핏 매력적으로 들리는 행동우선 원칙을 꼼꼼하게 검토해보면 맹점이 여럿 있다.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행동우선 원칙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다. 미래의 기후변화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일어날지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불완전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새로운 경험적 자료가 등장하거나 이론적 가정이 바뀌면, 약간씩 다른 예측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정말로 진행 중이며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에는 불확실성이 없다. 또한 행동우선주의자들은 신기술 개발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혁신은 통상적으로 예상하지 못한 큰 부작용을 가져왔음을 역사가 잘 보여준다. 결국 기술 발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희망은 그 기술이 가져올 ‘새로운’ 문제를 외면할 때만 가질 수 있다.


당연히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그 행동은 미래에 대한 최선의 과학적 분석과 건전한 윤리적 판단에 근거한 경계하는 태도와 결합돼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