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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수학적 사고의 시초 ‘수 세기’

산수가 사라졌다. 이제는 더 이상 산수가 아니라 수학이라고 한다. 계산 능력보다 수학적 사고력이 중요하며, 수학적으로 사고해야만 수학을 제대로 공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수학적 사고가 무엇을 말하는지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분류하는 것이 직업인 학자들이야 수학적 사고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을 늘어놓겠지만, 그들만의 리그에서나 벌어지는 현학적인 문구를 여기에 들이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런데 사실상 우리 모두는 언제나 수학적 사고를 하고 있는데, 수 세기라는 가장 단순한 활동조차 수학적 사고를 필요로 한다. 단지 자신이 수학적으로 사고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직접 수 세기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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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나타난 별은 모두 몇 개인가?

 

그렇다. 당연히 8개이다.

 

그렇다면 다음 그림에 제시되어 있는 별 개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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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3개.

 

단순한 개수 세기의 정답을 내놓으라고 아까운 지면을 할애한 것은 아니다. 별의 개수가 몇 개인지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알았는지를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별의 개수를 셀 때, 8개인 경우와 3개인 경우에 각각 그 방법이 다르다는 점을 파악해야만 한다. 이해가 가지 않으면, 자신이 직접 그 개수를 어떻게 세었는지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기 바란다.

 

 

(경향DB)

 

 

굳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별 3개는 한눈에 들어오니까 세어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별 하나, 별 둘, 별 셋, 이렇게 일일이 헤아리지 않고 단번에 3개임을 파악할 수가 있는데, 이러한 수 세기 방식을 직관적 수 세기라 부르기로 하자. 대체로 5개 이하인 경우에는 전체를 한 눈에 파악할 수가 있어 하나하나 세어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직관적 수 세기가 가능하다.

 

그런데 별 8개짜리도 그럴 수 있을까? 단번에 8개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개수를 세는 방법 역시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그렇다고 하여 하나, 둘, 셋, … 일곱, 여덟, 이렇게 하나부터 여덟까지 일일이 세어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만일 그런 방식으로 개수를 세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수학 문맹에 가까운 그래서 수학적 사고가 젬병이라 하여도 틀리지 않다. 그런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8개라는 개수를 파악하기 위해 이렇게 세었을 것이다.

 

둘, 넷, 여섯, 여덟. 그러니까 여덟 개.

 

또는 넷, 넷이니까 여덟 개.

 

또는 다섯 개 그리고 세 개. 그러니까 여덟 개….

 

그렇다. 별 8개는 묶어 세기를 통해 전체 개수를 파악한다는 점에서 3개짜리와는 다른 수 세기가 적용된다. 두 개씩 또는 네 개씩이라는 “두 배수” 묶음을 이용하거나, 5개를 먼저 묶은 후에 나머지 3개를 묶어 결합하는 등, 각자 나름의 수 세기 “전략”을 사용한 것이다. 우리는 이를 직관적 수 세기와 구별하여 전략적 수 세기라 부르기로 하자.

 

앞에서 보았듯이 5 이하의 수는 직관적 수 세기에 의해 쉽게 헤아릴 수 있지만 6 이상의 수에도 이를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으므로 각자 자신만의 전략에 따라 수 세기를 하는 것이다. 단순한 수 세기 활동에 담겨진 이러한 인지 과정은 바로 수학적 사고가 빚어낸 결과로, 수와 양에 대한 개념과 연계된 우리의 수학적 사고는 전략적 수 세기에서 비롯된다 하여도 틀리지 않다. 따라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하나부터 백까지의 숫자를 차례로 말하는 기계적인 암송은 수학적 사고와는 무관한 행위이다. 수학적 사고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경향DB)

 

그런데 이와 같이 직관적 수 세기와 전략적 수 세기를 구별하고 나서 우리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해 배우는 1학년 수학 교과서를 살펴보면 특이한 현상을 발견할 수가 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1학년의 첫 단원이 5까지의 수 그리고 두 번째 단원이 9까지의 수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러한 분리가 결코 우연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그렇게 분리했다고 하여 직관적 수 세기와 전략적 수 세기라는 최신 이론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두 개의 단원으로 나누어 그 가능성의 여지는 남겨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와서 그리고 산수를 수학으로 개명까지 한 후에 세상에 내놓은 1학년 신입생의 수학교과서 첫 단원은 ‘1부터 9까지의 수’라 하여 이전까지 나누어져 있던 두 단원을 통합해 버린 것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최초의 수학적 사고인 전략적 수 세기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마저 아예 처음부터 봉쇄해 놓았으니 말이다. 아마도 우리에게 보다 더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은 수학적 사고보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반성적 사고가 아닐까?

 

 

박영훈 | 수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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