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변형농산물(GMO)에 이어 복제 소고기라는 낯선 생명공학 식품이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연구진이 복제 한우 고기의 안전성에 관한 연구 결과를 국제적인 저명 학술지에 발표했다. 한국의 생명공학이 세계 수준에 이르고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복제 한우가 우리 식탁에 오를 날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듯해 우려감이 앞선다. 복제 동물은 과연 먹어도 괜찮은 것일까.
연구진은 쥐에게 보통의 한우, 그리고 복제 한우가 포함된 사료를 26주 동안 섭취하게 했다. 그 결과 복제 한우를 먹은 쥐의 건강 상태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물론 연구진은 인간 역시 복제 한우를 먹어도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안전성을 입증하는 ‘과학적’ 연구 결과가 축적될수록 우리가 복제 한우를 먹을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복제 동물을 식용으로 허용한 상황이다. 2008년 1월8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복제 동물이 식품으로 사용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복제한 소, 돼지, 염소 그리고 이들의 자손에서 얻은 고기와 우유는 인체에 안전하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양은 자료가 불충분해 당시 안전성 판정에서는 제외됐다. 뒤이어 유럽연합과 일본도 비슷한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세간에서는 2008년 이전에 미국에서 복제 소고기가 이미 식탁에 올랐을 것이라고 추정돼 왔다. 미국의 농장주들이 고급 육류를 확보하기 위해 복제기술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실제로 여러 복제 소를 생산해왔기 때문이다. FDA의 허가 분위기를 감지한 미국의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2007년 3월 오클라호마주의 복제 소 사육장에서 소고기를 가져와 각계 인사를 초청, 시식회를 열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체세포복제소 (경향DB)
하지만 복제 소고기에 대한 과학적 검토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 식용화에 대한 우려가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복제기술 자체가 아직 불완전하기 때문에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이다.
사실 복제기술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기술이다. 동물이 태어나려면 정자와 난자가 수정을 해야 한다. 이 수정란이 분열을 거듭하다 하나의 개체로 자라난다. 그런데 복제 동물은 상황이 다르다. 일단 정자가 필요 없다. 난자는 필요하지만, 그 유전자는 필요 없다. 정자와 난자를 제외한 일반 체세포, 그리고 ‘속이 빈 난자’가 결합해 하나의 생명체로 자라난다. 여기서 속이 비어 있다는 말은 난자에서 유전 정보가 담긴 핵을 사전에 제거했다는 의미다. 복제 생명체의 유전 정보는 체세포의 핵에서 거의 100% 제공된다. 그 대표적 결과물이 1996년 세상에 선보인 복제 양 돌리였다.
이후 최근까지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이 복제돼 왔다. 하지만 아직 복제 성공률은 높지 않다. 복제 수정란 가운데 대리모의 자궁에 이식할 만큼 잘 성장하는 비율은 40~50%이다. 그리고 이들 중 무사히 생명체로 태어나는 비율은 10% 정도이다. 나머지의 실패 이유에 대해서는 과학자들이 정확한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무사히 태어났다 해도 과체중이나 여러 장기의 이상으로 금세 죽는 일이 많다. 복제 동물이 보통의 동물보다 오래 살지 못한다는 주장도 있다.
설사 과학적으로 충분히 안전성이 입증된다 해도, 소비자가 복제 동물 식품과 일반 식품을 구별할 수 없다는 문제가 남아 있다. 2008년 FDA는 복제 동물에서 유래한 고기와 우유가 시장에 나올 때 업계에 복제 표시를 요구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복제 동물의 유전 정보는 체세포를 제공한 ‘원본’의 유전 정보와 동일하기 때문에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외래 유전자가 삽입된 GMO보다 복제 동물이 식용으로 좀 더 안전하다는 얘기가 따라붙는다. 실제로 미국의 관련 업계에서 운영하는 한 웹사이트에는 “복제는 유전자를 변화시키지 않으며 GMO와는 다르다”고 명시돼 있다.
따라서 미국 정부와 소비자 모두 복제 동물에서 유래한 고기와 우유가 얼마나 유통되는지 알 방법이 없다. 일례로 2008년 9월3일 캐나다 CBC뉴스 온라인판은 FDA 대변인의 말을 인용하며 복제 동물의 자손으로부터 얻은 고기와 우유가 이미 시장에 공급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대변인은 이들 식품과 보통의 식품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지금까지의 연구 대상은 고기와 우유에 한정돼 있었다. 한국인이 즐겨 섭취하는 내장이나 뼈에 대한 연구는 아직 없는 것 같다. 실험실을 넘어 이미 일상생활 깊숙이 다가온 첨단 생명공학의 성과들이 우리에게 빠르고 신중한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
김훈기 |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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