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등학생 시절, 학기 초가 되면 교실 환경미화 작업이 실시됐다. 대개 한 면은 새마을운동에 할당되었는데, 새마을운동의 효과를 극대화해 보여주기 위해서 그 전후 사진을 대비시켰다. 1960년대 농촌은 작은 흑백사진으로, 1970년대 농촌은 큰 컬러사진으로 게시했다.
1960년대 사진은 흑백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어린 마음에도 이건 공평한 게임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일한 장면이라도 작은 흑백사진과 큰 컬러사진이 주는 인상은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통계치를 접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얼마 전 우리나라를 강타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의 치사율을 살펴보자. 정부는 메르스 확진자 중 사망자 비율로 치사율을 계산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투병 중인 환자는 궁극적으로 완치되거나 사망하거나 둘 중의 하나로 판정될 것이고, 치사율을 계산하는 시점에서는 불확실한 상태이기 때문에 제외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즉 정부의 치사율 산출식인 ‘사망자/확진자’가 아니라 ‘사망자/(사망자+완치 생존자)’로 계산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후자의 경우 분모가 작아지기 때문에 치사율이 높아진다.
이런 논란은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확산 때 홍콩에서도 벌어졌다. 사스가 종식된 후에는 ‘확진자=사망자+완치 생존자’이므로 두 가지 버전의 치사율이 동일하지만, 사스가 창궐하고 있는 시점에서는 분모를 확진자로 잡을 경우 치사율이 낮아진다. 한국과 홍콩 정부는 민감한 심리 지표인 치사율을 낮게 산출하기 위해 분모를 확진자로 잡았다고 볼 수 있다.
2015학년도 수능 영어문제에 등장해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 두 퍼센트 사이의 차이를 말하는 퍼센트포인트(%P)이다. 2014년 4분기 실업률은 3.2%이고 올해 1분기 실업률은 4.1%이므로, 실업률이 0.9%P 높아졌다. 이때 3.2%에서 0.9%가 차지하는 비율을 기준으로 실업률이 28% 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처럼 퍼센트와 퍼센트포인트에 따른 수치의 느낌은 매우 다르다. 실업률의 변화가 미미하기 때문에 경제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고, 실업률이 급격하게 높아져 경제가 무너질 지경이라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통계치를 계산하는 식이 동일하더라도 그 요소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정부는 2008년 말 주택보급률의 산정방식을 약간 바꾸었다. 새로운 주택보급률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주택 수/가구 수’이지만, 분모의 ‘가구 수’에 1인 가구를 포함시키고, 분자의 ‘주택 수’에는 다가구주택을 이루고 있는 개별 가구를 모두 주택 수에 반영시킨다.
이렇게 변경한 이유는 급증하는 1인 가구와 분할거주 상태인 다가구의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서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1인 가구의 비율은 가파르게 증가해 2015년 현재 27.1%에 이르기 때문에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면 분모가 커지면서 주택보급률은 낮아지게 된다. 실제 2014년 기준 신주택보급률은 103.5%이고, 구주택보급률은 118.1%이다. 주택보급률이 100% 미만일 때는 주택보급률을 높게 보이는 것이 필요했고, 100%를 넘게 되면서 정부 공공사업으로 주택을 짓는 근거가 미약해지자 주택보급률을 낮게 산정할 필요가 있어서가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을 제기할 수 있다.
실업률과 고용보조지표 비교_경향DB
실업률과 고용률도 짚어볼 만하다. 2015년 5월 고용률은 60.9%에 불과하다. 얼핏 생각하면 1에서 고용률을 빼면 실업률이 아닐까 싶지만 2015년의 월별 실업률은 3~4%대를 오가고 있다. 이런 간극이 생기는 이유는 실업률의 산출 방식에 있다. 실업률은 ‘실업자/경제활동인구’이고, 경제활동인구는 만 15세 인구 중 재화나 용역을 생산하기 위해 노동을 제공할 의사와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군인, 주부, 학생, 노인, 장애인, 취업준비생 등은 모두 비경제활동인구로 간주된다. 이처럼 비경제활동인구가 늘어나면, 실제 체감하는 정도보다 실업률은 훨씬 낮게 산출된다.
통계는 유용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근거를 제공하지만, 현실을 호도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통계로 거짓말하기는 쉬워도, 통계 없이 진실을 말하기는 어렵다”는 수학자 안드레예스 둥켈스의 언급을 떠올리며, 통계의 명암을 되새겨본다.
박경미 | 홍익대 교수·수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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