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노벨과학상은 모두 공동수상자에게 돌아갔다. 1950년대 노벨상의 공동수상 비율은 50%를 넘지 않았으나, 2000년 이후에는 90%를 상회하고 있다. 이제 노벨상 독식은 꿈도 못 꿀 세상이다. 몇 달에 걸쳐 편지로 의견을 주고받았던 뉴턴 시대와 달리 수백 편의 자료가 e메일로 순식간에 전달되는 지금은 공동연구에 편한 환경이다. 또한 엄청나게 커진 실험 규모는 더욱 공동연구를 요구하고 있어 이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또 치열한 경쟁은 공동연구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선점하는 것이 과학에서 매우 중요한데, 이런 속도의 문제에서 공동작업은 개인보다 훨씬 유리하다.
미국의 경우 공동저자 수는 20년 사이에 평균 2.7명에서 4.3명으로 크게 늘었다. 최근 논문에서 공동저자 수를 보면 물리학은 7.2명, 의학 생물학은 4.5명, 수학은 1.9명이다. 특히 실험과 검증 과정이 많은 분야일수록 공동연구는 상대적으로 우월하다. 대규모 실험의 물리학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때문에 논문의 내용보다 저자 목록이 더 긴 기이한 논문이 가끔 나타나기도 한다.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서 공동연구가 필수적이지만 공동연구를 방해하는 요소도 존재한다. 전체적으로 협력을 해야 하지만 그 결과의 배분 문제로 공동연구가 외면되기도 한다. 가장 흔한 경우는 저자를 정할 때 발생하는데, 누구를 넣고 뺄 것인가, 책임저자를 누가 가져갈 것인가의 문제로 갈등이 발생한다. 특히 연구결과가 큰 돈벌이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참여자 간 지분은 복잡한 정치적 갈등으로까지 발전되기도 한다.
(경향DB)
우리나라에서 공동연구는 상당히 취약한 편이다. 국가적으로 볼 때 획기적인 결과를 경쟁국에 앞서 선점하기 위해서는 공동연구가 장려되어야 하지만, 실제 정책은 공동연구를 경시하게 만든다. 한 예로 평가에서는 논문의 주저자만 고려되기 때문에, 주저자가 아니면 공동연구는 꺼려지게 된다. 예를 들어 대부분 기관에서 제2저자 논문은 몇 편을 모아도 주저자 한 편의 논문보다 못한 점수를 주기 때문에, 불확실한 지분의 공동연구에 동참할 이유가 없다. 그 시간이면 수준은 떨어지더라도 확실한 자기 지분 100%인 논문을 만드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평가 방식이 지속되면 개인별 논문역량은 올라가겠지만 전체적인 국가 경쟁력은 답보상태를 면하지 못하는 모순적 상황이 될 것이다.
특히 외국과 달리 국내 연구기관끼리의 공동연구, 예를 들어 관련 연구자끼리의 대학 간 공동연구팀을 자발적으로 만드는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식 공동연구의 내부에는 또 다른 갑과 을의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본원적 의미의 융합연구가 잘 일어나지 않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하지만 연구에서는 평등하고 열린 문화가 중요한데, 이것을 위해서라도 공동연구를 장려하는 유연한 평가 방식이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공동논문의 추가 저자가 저평가되는 이유는 그 안에 별 일도 하지 않고 숟가락을 올린 무임승차 저자가 있기 때문이다. 외국에도 보면 대략 저자 중 10% 정도는 무임승차 저자라고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개별 연구자의 양심의 문제이므로 마땅한 해법이 없다. 매 논문마다 무임승차 저자에 대한 조사를 검찰이나 학회에서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우리의 큰 문제는 협동에 대한 교육을 일찍부터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영재학생들을 가끔 가르쳐보면 각각의 역량은 세계 최고이지만 협업에 대한 훈련은 잘되어 있지 않음을 볼 수 있다. 그들이 과학한국을 짊어질 미래의 자원임을 감안하면 걱정될 수준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협동, 배려 이런 것은 좋은 대학 가는 데 도움은커녕 방해만 되기 때문이다.
융합이니 통섭이니 말들은 많지만, 실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파편화된 개인별, 줄세우기 평가 방식은 개선되어야 한다. 국제적 경쟁에서 중요한 것은 무임승차를 미시적으로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최고 결과물을 남들에 앞서서 어떻게 만들어내는가이다. 공동연구는 그것을 달성해줄 유일한 수단임을 최근의 노벨상이 잘 보여주고 있다.
조환규 | 부산대 교수·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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