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학오디세이

‘위험 거버넌스’와 소통

이중원 | 서울시립대 교수·철학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은 현대 사회를 ‘위험사회’로 규정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은 급격한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이 오늘날 가공할 만한 위험을 만들고 이를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 학자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언제나 과학기술문명이 빚어낸 위험들을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산업화로 인한 생태계 파괴,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 및 기상이변 재난들, 미국 스리마일섬과 러시아의 체르노빌 그리고 일본의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대형 원전사고들, 광우병 사태 등등 크고 작은 위험들이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성격은 다르지만 금융공학의 새로운 기법들이 야기한 최근의 세계 금융위기도 이러한 위험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지금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지만 첨단 과학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빠르게 증폭되고 있는 미래의 위험들 또한 셀 수 없이 많다. 유전자조작 식품에 대한 우려, 동물 복제 및 맞춤형 장기 생산과 같은 유전체 공학에 수반하는 위험들, 나노 물질의 독성으로 인한 나노제품들의 안전성 문제,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빚어지는 인간관계의 부정적 변화와 사회적 부작용 등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러한 위험들은 대체로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우선 이런 위험들에 대한 확실한 예측이 어렵다. 위험의 징후들을 아무리 과학적으로 정확히 예측해내려 해도 그것이 어떤 경로를 통해 발생하고 어떤 인과적 결과들을 야기하는지 확실하게 예측하기 어렵다. 기술 개발 과정에서 충분히 고려하고 예측하지 못한 변수들의 존재로 인해 어떤 위험한 결과들이 나타날지 예견하기가 쉽지 않다. 지진 및 해일에 충분히 대비해서 만들었다는 후쿠시마 원전도 높은 해일 등의 예상치 못한 변수들에 의해 통제 불가능 상태까지 간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위험을 예측하고 해결하는 문제에 관한 한 현재의 과학기술은 확실하지도, 충분하지도 않은 셈이다.


다음으로 이러한 위험들의 발생은 총체적인 특성을 지닌다. 과학기술적인 오류나 불확실성 이외에도 사회·경제적인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가령 실험실에 안전 수칙은 있고 이를 잘 준수하는지, 아직은 불확실한 위험일지라도 관련 기관이 사전 예방적 차원에서 대비하고 있는지, 정부 차원에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법률적이고 제도적인 장치들은 마련되어 있는지, 위험에 대한 시민사회의 인지와 합의를 위한 소통문화는 잘 형성되어 있는지 등 한마디로 사회적 안전망이 잘 갖추어져 있는지에 따라 위험의 크기가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산화탄소 배출과 그에 따른 온실효과로 기상이변이 어느 정도 예측되는 상황이라면, 산업활동의 규제 등 국제적 차원의 경제협약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꼭 필요하다.


울리히 벡 뮌헨대 교수 공개강연 (출처: 경향DB)


일반적으로 과학기술에 따른 위험을 논할 때 다음의 두 가지를 동시에 고려해야 의미가 있다. 과학기술의 산물이 갖는 위해성 그 자체와 인간과 자연 생태계가 이 위해성에 얼마나 노출될 수 있는지의 가능성이다. 가령 인공 제조된 나노물질로 만든 나노제품을 생각할 때, 나노물질(입자상태)의 독성이 지닌 위해성 그 자체와 인간이 나노제품(결합상태)을 사용할 때 독성을 띤 이런 입자상태의 나노물질에 얼마나 노출되는가를 동시에 고려해야만 나노제품으로 인한 위험을 논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아무리 위해성이 큰 사물이 존재하더라도 우리가 그 사물에의 접근이 차단될 수 있다면 인간에게 결코 위험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를 막고자 공장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양을 줄이려는 노력, 원자로에서 방사능이 유출되더라도 인간이 접근할 수 없도록 원전 주변 일대를 차단하는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전자의 요소가 미래의 과학기술 발전으로 완화될 문제라면, 후자의 요소는 현재의 사회적 시스템과 관련된 문제이므로 현재 위험을 논할 때에는 이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이 부분, 곧 위해성에의 노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 구축이 위험 거버넌스의 핵심 관건이다. 일반적으로 거버넌스(governance)란 거번먼트(government)로서의 정부뿐 아니라 위험을 통제하려는 모든 사회적 요소들-관련 행위자들, 논의 및 결정 과정, 문화와 전통, 사회적 규약과 제도 등-이 함께 작동하는 사회적 기재를 말한다. 과학기술적인 차원에서의 접근만이 아니라 과학기술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요소들을 포함한 위험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공동 대처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위험에 대한 투명한 공개와 사회적 공유 그리고 이에 대한 책임있는 공동대처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여러 이해당사자들 간의 사회적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 사회적 소통은 이제 정치권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개개인의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