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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융합적 교양교육

이상욱 | 한양대 교수·철학


지난 학기부터 ‘상상력과 과학기술’이라는 대규모 교양 강좌를 담당하고 있다. 교양 강의는 오랜만이어서 나름 열심히 준비해서 가르쳤지만 결과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수업은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시각을 활용해 ‘상상력’이 과학기술의 실제 연구과정에서 발휘된 사례를 탐색하고 우리 상황에서 바람직한 상상력의 확대를 고민하는 내용이었다. 융합적 성격의 수업이 신선하고 흥미롭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불만의 소리도 높았다.


 불만의 내용은 크게 둘로 나뉜다. 우선 거의 모든 학생이 수업부담이 과중하다고 불평했다. 매주 200쪽 정도의 읽을거리와 각종 과제가 ‘교양수업답지 않게’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평가에서 특히 눈길을 끈 내용은 ‘어떻게 교양과목이 전공과목보다 수업부담이 더 많을 수 있느냐’는 제법 그럴듯한(?) 지적이었다. 또 다른 불만은 강좌의 내용이 특정 전공 학생에게 유리해서 학점 분포가 편파적일 수밖에 없다는 불평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은 하나같이 이 과목이 ‘전문적인’ 과학기술 내용을 담고 있어 이공계 학생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불평한 반면, 이공계열 학생들은 예외없이, 만만치 않은 글을 꼼꼼하게 읽고 그에 입각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내는 이 수업이 인문사회계 학생에게 유리하다고 하소연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좋은 성적은 수강학생 비율에 맞게 전 전공에 골고루 분포되었다.


나는 이런 학생들의 불평으로부터 교양교육에 대한 최근의 의견대립을 문득 떠올렸다. 대학 관계자 중에서도 교양교육을 취미 삼아 듣는, 가벼운 ‘문화 체험’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이 꽤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보다 교양교육이 앞선 유럽이나 미국의 대학에서 교양과 전공에 대한 이런 구별은 낯선 것이다. 예를 들어, 물리학과에 개설되는 과목 중에는 ‘열역학’처럼 전문적인 것과 ‘물리학과 20세기’처럼 ‘교양스러운’ 제목을 가진 것이 모두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전자는 진지하게 공부할 과목이고, 후자는 ‘재미 삼아’ 공부하는 과목이라는 통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차이점은 단지 전자에 비해 후자는 물리학이 삶과 사회의 여러 측면과 맺는 보다 포괄적인 관계를 다루는, ‘융합적’ 성격을 갖는다는 데 있을 뿐이다.


이런 내용의 과목은 교양교육의 원래 의미와도 잘 어울린다. 교양교육은 유럽대학 전통에서 artes liberales에서 연원한다. 그 내용은 고대 그리스에서 자유로운 시람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소양을 키우는 것이었다. 즉, 교양교육의 출발은 그리스 민주정치하에서 자유로운 시민이 공적 의무를 수행하고 국가적 사안에 대한 토론에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을 갖추려는 데 있었다. 자연스럽게 문법, 수사학, 논리학이 핵심 과목이었다. 이런 교육을 통해 그리스인들은 당시 사회를 잘 운영할 수 있는 덕성과 지식을 갖춘 ‘전인적’ 시민으로 성장해 갔다.


대형강의실을 가득 메운 채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 (출처 :경향DB)


교양교육에 종사하는 분 중에는 바람직한 교양교육은 동서양 고전에 대한 집중적 강독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교양교육에서 추구되는 교양은 ‘지식’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기대되는 역할 수행을 위한 ‘능력’이었다. 게다가 교양교육의 내용이 특정 내용으로 확정되어 있다는 생각은 역사적 사실과도 거리가 멀다. 고대 그리스의 교양은 중세의 달라진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확장될 필요가 있었다. 그 결과 전통적인 3과(Trivium)에 더해 수학, 기하학, 음악, 천문학이 4과(quadrivium)로 추가되어 중세대학의 7과 교양교육 체계가 완성됐다. 중세의 전인적 인간은 그리스의 전인적 인간에게 요구되던 능력을 넘어, 자연과 예술에 대한 보다 포괄적 통찰력을 갖출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교양교육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철학, 역사, 문학, 고전 교육이 중세 교양교육에 부재했다는 점이다. 이들 분야가 전인적 인간의 교육에 필수적이기보다는 전문적인 학술 영역에 속한다고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기를 거쳐 고전어 교육이 강조되고 시적 감수성의 교육적 효과가 인식되면서 이들 과목은 점차 교양교육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처럼 교양교육의 내용은 시대적 요구와 필요성에 부응해서 끊임없이 재정의 되어왔다. 현재도 세계 최고의 대학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교양교육의 내용을 설계하여 가르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이 현대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교양교육의 원래 목적을 상기할 때, ‘자유로운 인간’이 과학기술과 관련된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융합적’ 교육이 21세기 대학의 교양교육에 핵심적으로 포함되어야 함은 자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