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원 | 서울시립대 교수·철학
요즘 소셜 웹(social web)이 대세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플러스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들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작은 동호인 모임에서부터 정치적인 신념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웹상에서 다양한 커뮤니티들이 형성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하는 등 새로운 유형의 사회적 활동들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개인용 스마트 모바일 기기들의 확산은 컴퓨터 환경을 점점 개인화하여 개인들의 네트워크 접속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또한 현재 개인 컴퓨터의 정보들을 네트워크를 통해 통합·관리할 뿐 아니라 네트워크 안에서 프로그램을 구동하고 비즈니스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의 개발도 네트워크 기반의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한층 가속화할 것이다. 이는 오프라인에서라면 결코 쉽지 않았거나 불가능했을 일들이다.
소셜 웹의 바람은 지난 20세기 말에 불어 닥친 정보화의 바람과는 사뭇 다르다. 컴퓨터와 인터넷에 기초하고 있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과거 정보화가 일차적으로 산업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업무 자동화를 기반으로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등 산업사회의 요구에 의해 진행된 것이라면, 소셜 웹을 통한 변화는 다양한 개인들이 개인의 욕망과 관심사를 중심으로 네트워크 안에서 끼리끼리 모여 새로운 사회적 관계들을 만들어 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과거 정보화 과정에서 개인은 기존의 사회적 조직이나 제도가 만들어 낸 사회적 관계하에 놓여 있었지만, 소셜 웹에서는 기존의 조직이나 제도의 경계를 넘어서서 네트워크 안에서 다양하고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가는 주체인 것이다. 그렇다고 개인의 힘이 기존의 사회적 제도나 집단의 힘을 능가한다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가는 주도권이 점차 집단에서 개인으로 옮겨 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기존의 정보화에서는 막강한 정보시스템 구축을 통해 경영을 집중화하고 기업의 구성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등 기업의 통제체제가 중앙집권화되고 강화되는 경향이 강했다. 정보에 대한 법적 소유가 인정되어 필요한 정보를 함부로 사용하거나 네트워크에 쉽게 접근할 수 없게 되었고 정보의 공개와 공유를 통한 자유로운 소통도 사실상 어려워졌다. 또 다른 의미에서 닫힌 사회다. 하지만 소셜 웹의 경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서 보듯 커뮤니티는 개방형으로 항상 열려 있고 끊임없이 생성·소멸·진화하고 있으며, 다양한 정보의 공개와 소통은 앱(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의 개발에서 보듯 새로운 유형의 정보를 창조하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소셜 웹을 통한 변화는 기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며 열린사회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칼 포퍼 (출처 :경향DB)
20세기의 저명한 철학자인 칼 포퍼는 1·2차 세계대전이라는 서구사회가 저지른 비도덕적 만행을 바라보면서 전체주의와 역사주의에 젖어 있는 사회를 ‘열린사회’의 적으로 간주하고 이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포퍼에 따르면 닫힌사회는 사회적 법률이나 제도 또는 도덕이 마치 자연법칙처럼 절대적이어서 이에 대한 어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비판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역사 또한 법칙에 따라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고 믿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닫힌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율성보다는 국가의 간섭과 통제가, 그리고 이성적인 대화보다는 힘의 우위와 폭력이 지배하게 된다.
반면 열린사회는 개인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하며 서로의 비판에 귀 기울이는 합리적인 소통의 사회다. 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은 전체적인 이상과 계획이 아니라 개인의 이성적 판단과 행위다. 이렇게 포퍼적 의미에서 본다면 오늘의 정보화 사회는 소셜 웹에 기초하건 그렇지 않건 이미 열린사회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특징으로 인해 소셜 웹으로 구현될 열린사회를 포퍼적 의미의 열린사회로 규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것은 새로운 열린사회다. 첫째, 이 열린사회에서는 여전히 개인의 이성적 판단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욕망에 호소하는 감성적 접근이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커뮤티니의 형성은 이성의 이름으로 보편적인 어떤 하나를 추구하기보다는 감성에 바탕을 둔 다양성을 추구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 열린사회에서 개인의 사회적 관계는 개인이 속해 있는 실제적인 사회조직이나 제도의 틀보다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웹상에서의 아바타들 간의 분기와 연결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이렇게 결정된 개인의 사회적 관계는 실제적인 이해관계보다는 공동의 관심사나 이슈에 바탕하고 있어 매우 느슨해질 것이다. 그래서 공동체적 의식이나 집단적 정체성과 같은 집단지성의 정신도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넷째, 이 열린사회에서는 합리성 가운데 일반적으로 강조되는 목적-수단적 합리성보다는 커뮤니티별로 의사소통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수행할 것인가라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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