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욱 | 한양대 교수·철학
ADHD란 낯선 외국어가 있다. 주의력 결핍과 과잉 행동의 특징을 보이는 정신 장애를 지칭하는 축약어다. 일반인에게는 낯선 단어지만 유난히 말썽을 부리는 어린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말이다. 최근 이 단어가 방송에 심심치않게 등장하는 것을 보면 ADHD 환자가 예전보다 부쩍 많아진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런 느낌이 ADHD 증상을 보이는 사람이 정말 많아져서인지, 아니면 예전에는 그냥 아직 철이 덜 든 초등생의 장난으로 여겨지던 것들이 병명을 부여받고 어느 순간부터 ‘질병’으로 간주되기 시작했기 때문인지는 좀 더 신중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ADHD에 대한 연구는 현재 진행형이어서 이 병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연구는 어릴 적 ADHD로 진단을 받은 아동 중 상당수가 특별한 치료를 받지 않더라도 성장하면서 자연적으로 완치되거나 적어도 증상이 크게 완화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ADHD가 뇌의 상대적 미성숙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즉, 상당수의 ADHD 환자가 정서 조절과 규범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을 담당하는 뇌의 관련 영역이 다른 사람보다 ‘느리게’ 성숙하면서 일시적으로 부적응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ADHD 증상은 분명 ‘진짜’ 현상이지만, 어린이의 부주의한 행동이나 정신없는 소란을, 자라면서 없어질 일종의 성장통으로 간주하는 사회문화적 환경에서라면 특별히 ‘질병’으로 범주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표준 증상이 정의되고 진단기준이 마련되고 나면 그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ADHD 환자들이 갑자기 등장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일부 질병은 우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인간과 비정상적인 인간을 구별하는 기준을 새롭게 정의하는 과정에서 ‘탄생’할 수 있다.
성인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환자를 이미지화 한 그림 l 출처:경향DB
성장이 종료된 후에도 여전히 증상이 개선되지 않는 중증 ADHD 환자들도 분명 상당수 있다. 문제는 증상이 매우 심하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면, 늦게 철이 드는 상황과 ‘진짜’ ADHD 상황 사이를 아동 시점에서 구별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구별은 원칙적으로 의료적 개입이 꼭 필요한지 여부와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진짜 환자만 치료하고 그렇지 않은 유사환자는 교육이나 사회화 과정을 통해 자연치유하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ADHD 증상을 보이는 아동을 키우는 부모나 교실에서 이들을 지도하는 교사의 입장에서는 증상을 보이는 아동 중 일부가 결국에는 ‘자연치유’될 것이라는 사실은 별 위안이 되지 않는다. 그들의 발달 과정이 아무리 자연스럽더라도 그들을 다루는 일이 어렵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진짜 환자이든 아니든 치료를 통해 증상이 완화될 수 있다면 그 증상으로부터 고통을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치료를 고려하게 될 것이다. 마치 우리 대부분이 과식으로 인한 불편함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없어지리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여전히 소화제를 복용하듯이, 약은 반드시 비정상적인 환자의 상태를 치료를 통해 정상으로 회복시키기 위해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는 꼭 필요하지 않더라도 좀 더 나은 상태가 되기 위해 약을 복용하기도 한다.
부모나 교사는 리탈린처럼 아동을 ‘유순하게’ 만드는 마법의 약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리탈린은 구입을 위해서는 처방전이 필요한 의약품이다. 게다가 사람에 따라서는 상당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현명한 선택은 중증 ADHD 증상을 보이는 사람에게만 선택적으로 조심스럽게 처방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당장 시끄럽게 떠드는 아동을 감당해야 할 부모나 교사, 그리고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의사에게는 좀처럼 실행에 옮기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리탈린과 같은 약은 지나치게 남용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미 이 가능성이 현실화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사실은 리탈린은 ADHD 증상을 보이지 않는 사람도 복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리탈린은 정상인의 집중력도 높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중요한 시험을 앞둔 법대생이나 의대생들이 리탈린을 암암리에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정상인이 리탈린을 복용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조차 얻기 힘들다. 충분히 정상적인 인간이 끝없이 더 나은 상태를 달성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약물을 복용하는 것은 왠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소화제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약물이 사용되어 온 경우는 역사적으로 드물지 않다. 또 다른 우려는 이런 약물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나면,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소중히 여기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을 계발하려는 노력의 가치가 잊혀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결국 리탈린과 같은 약물 사용의 정당한 범위를 확정짓기 위해서도, 우리는 진정으로 추구할 만한 가치로운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 대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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