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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원전의 불편한 진실

이중원 | 서울시립대 교수·철학


 

전기에너지의 80% 이상을 핵 발전에 의존하고 있는 프랑스가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 대해 매우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6월8일자 르몽드지 기사를 보면 후쿠시마 원전 4호기의 사용 후 핵연료 풀에 현재 핵 연료봉이 1535개 남아있는데 진도 7 이상의 지진 및 냉각장치 정지가 일어나 핵 연료봉이 공기에 닿게 되면, 체르노빌 사고 시 방출된 방사능의 10배에 해당하는 양이 방출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것은 국가의 안전이 위협받는 재난에 해당하는지라, 각국의 핵 전문가들은 더 이상 기업에 맡기지 말고 일본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핵 연료봉을 시급히 꺼내라고 주문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작년 3월에 후쿠시마에서는 진도 7의 지진이 발생했었다. 후쿠시마 참사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했던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원자로 4호기의 건물 내부 (경향신문DB)



 체르노빌 사고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86년 사고 당시 4호기는 바로 폐쇄됐고 2호기는 1991년에, 1호기는 1996년에 폐쇄되고 마지막 3호기는 2000년에 가동중단됐다. 하지만 지금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는 12년째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전력생산이 아니라 바로 파묻혀 있는 핵연료 폐기물에 대한 안전 관리 때문이다. 원전 가동이 중단되고 폐쇄됐다고 해서 안전 관리 자체가 끝난 것은 아니다. 20~30년 정도 원전을 사용하고 나면 사용 후 핵 연료봉을 끄집어내는 데 1~2년, 기계나 건물 등에 남아 있는 방사성물질을 제거하는데 7~8년, 원자로와 건물 해체 및 부지의 오염 제거 작업 등 적게는 30년 많게는 120년까지 걸릴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영국의 과학전문지인 ‘네이처’는 체르노빌의 경우 오염제거 작업이 2065년까지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원전을 해체·철거하고 방사능 오염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그 비용도 천문학적이다. 한 예로 1997년에 30살로 수명을 마감한 일본의 도카이 원전은 해체기간만 무려 23년, 그리고 해체 비용은 약 1조200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렇게 따진다면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요금의 단가 계산에는 우라늄의 생산에서 원전의 철거 및 오염제거에 이르는 전주기(life-cycle) 과정에서의 비용이 모두 포함되어 계산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럴 경우 아무도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쓰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세계 6위의 원자력 대국이다. 35년 전 고리 원전 1호기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총 21기의 원전이 가동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매년 3~4회씩의 사고가 발생하는 등 안전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지난 2월에는 말썽 많은 고리 원전 1호기에서 12분간 전원공급이 중단되고 원전이 멈추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전원공급이 중단되면 냉각수의 공급이 줄고 노심이 녹아내려 자칫 후쿠시마에서와 같은 대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중대한 사고였음에도 비상경보는 울리지 않았고 사고는 은폐됐으며 정부 감독기관은 한 달 동안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사실 고리 1호기는 35년간 운영된 노후화된 시설로서 전체 원전 사고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사고가 일어날 정도로 고장이 잦다. 특히 원자로가 파괴시험을 견디지 못할 정도로 약해져 있고 압력 용기도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상당히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전력난 등의 이유를 들어 무리하게 고리 1호기의 재가동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원전 밀집도는 세계 1위다. 다시 말해 좁은 공간에 원전이 빼곡히 들어선 꼴이다. 고리 원전 1호기가 있는 지역은 반경 30㎞ 안에 고층건물 및 아파트를 비롯하여 300만명이 밀집해 있는 인구밀집지역이다. 이곳에만 현재 5개의 원전이 있고 1개를 추가로 건설 중이다. 지난 5월 일본의 모 대학 교수가 고리 1호기에서의 원전 사고에 대한 모의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1년 안에 8만5000명이 바로 사망하고 85만명이 암으로 죽어갈 것이며 피난 비용만 630여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국가 재난 상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원자로에서 사용하고 남은 사용 후 핵연료에 대한 안전·관리도 문제다. 사용 후 핵연료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로서 세슘의 경우 평균 1만년 동안 방사능을 내뿜는다. 따라서 원전이 지속가능하려면 고준위 폐기물을 안전하게 저장하고 관리할 저장소가 반드시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미국의 경우도 20년 동안 노력했지만 아직도 저장소를 지을 장소를 확정짓지 못한 상태다. 우리나라도 폐기물 저장소가 없어 그동안 쌓인 폐연료봉 1500만개가 원전 내부에 임시 보관되어 있는데, 이 또한 몇 년 내로 수용 한계상황에 다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을 들여 수명이 다하고 노후화된 원자로의 해체 작업도 바로 시작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체르노빌 사건은 유럽 사회를 바꾸어 더 이상 원전을 경제적이며 유용한 전기에너지 공급원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2004년 이후 신규로 건설 중인 35기의 원전 가운데 단 2기만이 유럽에서 건설 중이라는 점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도 그러한 변화가 일어나주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