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욱 | 한양대 교수·철학
세상을 바꾸었다고 말할 수 있는 책은 드물다. 이런 저런 방식으로 세상에 영향을 준 책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이나 <자본론>처럼 수많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끼쳐 결국은 역사의 큰 흐름을 바꾸는 데까지 이른 책은 그리 많지 않다. 한편 고전이라 평가되는 책은 오랜 세월 그 가치가 입증되어 온 책이다. 하지만 고전 중에는 <그리스·로마 신화>처럼 그 영향에서 특별한 방향성을 찾기 어렵거나 <채근담>처럼 실제 사회에 끼친 영향이 상대적으로 미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의미에서 레이첼 카슨이 1962년 출판한 <침묵의 봄>은 독특하다. 고전의 반열에 들면서도 세계를 바꾸었다고 말할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원제목은 ‘Silent Spring(조용한 봄)’이다. 카슨은 봄이 왔는데도 새가 울지 않는(그래서 ‘조용한’) 가상 상황에 대한 서정적 묘사로 책을 시작한다. 그 이후 내용은 어떻게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다.
카슨은 수많은 실증적 자료에 입각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합성물질의 과다사용의 문제점과 환경보존의 필요성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한다. 봄이 조용해진 이유는 새의 알껍질이 얇아져서 어린 새가 부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알껍질이 얇아진 이유는 어미새의 몸에 축적된 DDT와 같은 살충제 때문이다. 살충제를 뿌린 사람들은 특별히 ‘조용한’ 봄을 원했던 것이 아니다. 살충제는 당연히 해충을 박멸하려고 살포되었다. 하지만 살충제는 ‘의도되지 않았던’ 여러 부작용을 가져왔다. 그 부작용의 끔찍함을 카슨은 ‘조용한 봄’으로 상징화한 것이다.
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경고하는 침묵의 봄 집회(1995년) l 출처:경향DB
<침묵의 봄>은 환경운동 분야에서 소로의 <월든>이나 레오폴드의 <모래군의 열두 달>과 함께 고전으로 평가된다. 소로와 레오폴드의 책도 환경운동이나 생태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카슨의 책처럼 세계를 바꾸지는 못했다. 카슨의 책이 출간된 후 케네디 대통령은 과학자문위원회에 살충제 사용실태에 대한 조사를 주문했고 자문위원회는 카슨의 입장을 옹호하는 취지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책의 대중적 인기와 영향력은 CBS 방송국이 몇몇 광고주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침묵의 봄>의 내용에 기반한 다큐멘터리를 제작·방영하면서 더욱 높아졌다. 결국 농무부, 화학 회사 등의 조직적 방해에도 불구하고, 1964년 ‘야생보호법’, 1969년 ‘환경정책법’이 미 의회를 통과했고 화학물질의 사용을 규제하는 여러 법률 제정으로 이어졌다.
일부 논자들은 카슨의 <침묵의 봄>이 현대 과학의 근본적 문제를 지적하며 자연의 경이를 재발견할 것을 주창했다고 파악한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카슨의 생각이나 책 내용 어느 것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평생 과학과 글쓰기를 함께 사랑하며 이 둘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를 고민했던 카슨은 자신이 과학적 분석을 통해서만 알아낼 수 있었던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다. 자연에 대한 글쓰기에 있어서도 지나친 의인화를 삼가고 관련 과학 전문가가 읽어도 사실적으로 틀린 부분을 찾아내지 못할 만큼 ‘정확하게’ 내용을 전달하려 애썼다.
카슨이 기존 환원적 과학 연구의 문제점을 알아낸 것도 환원적 연구를 통해서였다. 카슨은 실험실에서 특정 인과 관계만을 고립시켜 탐구한 후 그 결과가 복잡한 인과 관계가 얽혀 있는 생태계에서도 여전히 타당하리라 기대하는 과학계의 관행을 비판했다. 이 비판 역시 시적 표현이 아니라 과학 연구에서 나왔다. 일반 시민을 위한 자신의 책에 카슨이 구태여 유기화합물의 구조식을 포함시킨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카슨은 왜 합성살충제가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가져오는지의 과학적 메커니즘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카슨은 어떤 의미에서도 반과학적 자연주의자가 아니었다. 누구나 조금만 찾아보면 알 수 있는 확실한 사실을 용기 있게 말한 내부 고발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보다는 특유의 세심한 관찰력, 핵심적 자료에 접근할 수 있었던 정부과학자로서의 기회, 다양한 과학적 결과로부터 패턴을 읽어낼 줄 아는 통찰력, 과학 내용을 대중에게 쉽고 호소력 있게 풀어낼 수 있는 빼어난 글솜씨,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대중에게 알리려는 사명감을 고루 갖춘 행동하는 과학 지식인이었다.
화학물질 사용에 대한 카슨의 견해는 출간 당시 입수 가능한 증거에 의해 확실하게 입증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당시 평자들은 <침묵의 봄>이 ‘시끄러운 여름’을 가져왔다고 말할 정도였다. <침묵의 봄> 출간 50주년이 되는 지금 우리는 분명 카슨이 만든 세계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만들어갈 가을이 얼마나 풍요로울지는 가치 이쓴 삶에 대한 보다 현명한 생각만큼이나 생태계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더 많은 과학지식에 달려있을 것이다.
'과학오디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컴퓨터의 인간 따라하기 (0) | 2012.06.04 |
---|---|
모바일 시대의 적 ‘특허 남용’ (0) | 2012.05.27 |
과학자는 ‘광우병 애정남’이 아니다 (0) | 2012.05.13 |
구글 데이터센터, 한국 외면한 까닭 (0) | 2012.05.07 |
자연을 기계로 보지 말라 (0) | 2012.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