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학오디세이

모바일 시대의 적 ‘특허 남용’

이중원|서울시립대 교수·철학

 


작년 4월부터 삼성전자와 애플은 상대방 회사에서 생산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 모바일 제품에 자사의 소프트웨어나 디자인 또는 터치 기술 등 특허기술이 무단으로 사용되었다고 서로 특허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정보기술(IT)업계에서 사실상 스마트 모바일 기기 시장을 장악한 두 거대기업이 그동안 문제 삼지 않고 사용을 용인해 왔던 상용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 기술에 대해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가면서 벌이고 있는 이 특허 전쟁을 보고 있노라면, 특허가 과연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반문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특허란 원래 독창적인 지식이나 발명에 대해 개발자의 이익을 특별히 보호하고자 만들어진 하나의 사회적 제도다. 이는 개발자가 들인 시간·노력·비용 등을 사회적으로 정당하게 평가하여 인정해 주는 데서 시작된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특허로 보호받아야 하는 정당한 범위인가가 논쟁거리다. 개발자가 보호받아야 하는 영역은 어디까지이고 사회적으로 공유되어야 하는 영역은 어디까지인지가 문제인 것이다.

 

삼성전자 ‘갤럭시S’(왼쪽)와 애플 ‘아이폰4’ l 출처:경향DB

 

특히 사회적으로 공유할 만한 가치가 매우 큰 지적 재산의 경우 이는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어떤 개인이 오랜 기간의 노력을 들여 특별한 요리법을 개발해 낸 경우, 이를 특허로 인정하여 개발자에게 배타적 이익을 허용해 줄 것인지 아니면 인류 공동체가 이를 자유롭게 공유토록 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 특별한 요리를 향유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개발자의 이익을 절대적으로 보호해 주는 방향으로 특허권이 남용되는 경우 이것은 자칫 개인 또는 기업의 배타적 이기주의로, 그래서 반사회적이고 비윤리적인 것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전쟁이 곱지 않게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패스워드>라는 영화를 보면 컴퓨터 운영체제(OS) 시장을 선점한 거대 기업이 이와 호환되는 다른 프로그램들을 모두 통합하여 사용하도록 강요하는 방식으로 컴퓨터 소프트웨어 시장을 독점하는 내용이 나온다. 오늘날 흔히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 독점을 바탕으로 전 세계의 모든 통신기기와 인공위성을 하나로 연결하여 통제하려 시도하는데, 대학을 갓 졸업한 몇몇 컴퓨터 천재들이 이 연결에 필수적인 디지털 컨버전스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이를 공개함으로써 이에 맞선다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오늘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소위 독점 소프트웨어 제도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나아가 정보를 공유하자는 ‘카피레프트(copyleft)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영화의 원제가 <Antitrust> 곧 반독점이라는 데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사실 독점 소프트웨어 제도, 다시 말해 소프트웨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거나 교환하는 것을 금지하고 나아가 이를 저작권 침해로 단죄하는 제도에 대해 오래전부터 반대하는 움직임들이 있어 왔다. 미국 MIT대학 인공지능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던 리처드 스톨먼(Richard Stallman)은 1983년에 누구나 자유롭게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GNU 프로젝트’, 달리 말하면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을 시작했다. 유닉스에 호환되는 GNU라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이 프로그램들의 소스를 공개하여 필요에 따라 고쳐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더 이상 상업적인 목적에 이용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리누스 토발즈가 개발한 ‘리눅스’ 프로그램은 GNU 정신에 잘 부합하는 대표적 운영체제다.

 

이 GNU 프로젝트에서는 소프트웨어 사용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자유가 보장되었다. 첫째,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복제(copying)하며 친구나 동료와 함께 이를 공유할 수 있는 자유, 둘째, 소스 코드를 원용해서 이를 개작(modification)할 수 있는 자유, 셋째, 개작된 프로그램의 이익을 공동체 전체가 얻을 수 있도록 배포(distribution)할 수 있는 자유가 그것이다. 이러한 자유를 권리로 옹호해 주는 카피레프트의 정신이 온전히 담겨 있다.

 

한편 21세기에 들어와 모바일 사회로 빠르게 전환하면서 급속한 속도로 구축되고 있는 공유기반의 클라우딩 컴퓨팅 환경도 소스의 공개를 활발하게 촉진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제공자의 소프트웨어를 구매하지 않고도 필요할 때 서비스로 이용토록 함으로써 과거의 독점 소프트웨어 방식의 해체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특허는 기술 발명의 대가로 당연히 보호할 가치가 있지만, 지나칠 경우 기술의 진보를 가로막고 소비자의 피해를 낳는 등 오히려 기술 발전의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 모 포럼에서 애플의 공동창업자의 한 사람인 스티븐 워즈니악(Stephen Wozniak)이 자신이 개발했던 애플 컴퓨터의 디자인을 아무런 저작권료 없이 전 세계에 제공한 경험을 언급하면서, 두 기업의 특허 전쟁에서 “특허가 너무 남용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특허제도에 갇혀 똑같은 제품만 양산해 내고 있다”고 쓴소리를 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로 우리 모두가 귀담아 들을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