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진석 | 인천대 교수·컴퓨터공학
컴퓨터 과학에서 다루는 분야 중에는 인간에 비해 컴퓨터가 잘하는 분야가 많이 있지만, 컴퓨터보다 인간이 더 잘할 수 있는 분야도 있다. 예를 들어, 복잡한 사칙연산의 답을 구한다든지 수많은 자료 중에서 원하는 것을 찾는다든지 하는 것은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러나 학습이나 추론, 자연어 이해와 같은 능력은 인간이 훨씬 더 잘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능력을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실현시키는 기술을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고 부른다.
컴퓨터가 인간의 지능을 얼마나 잘 모방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튜링 테스트(Turing test)이다.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은 1950년 발표한 논문에서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컴퓨터로부터의 반응을 인간과 구별할 수 없다면 컴퓨터는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온라인 채팅 프로그램을 사용해 친구와 대화했는데, 이 친구가 사실은 컴퓨터라고 하자. 만일 이 사람이 친구와의 대화를 마친 후 방금 대화한 상대가 컴퓨터인지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면 이 컴퓨터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것이다.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로보월드 2011’ (경향신문DB)
1990년에 미국의 발명가인 휴 뢰브너(Hugh Loebner) 박사는 케임브리지 행동연구센터(The Cambridge Center for Behavioral Studies)와 공동으로 튜링 테스트 경진대회와 뢰브너 상을 만들었다. 매년 한 번씩 개최되는 이 대회는 심사관들이 채트봇(chatbot)이라고 부르는 채팅 프로그램과 대화를 나눈 다음, 인간과 가장 가까운 컴퓨터를 골라서 2000달러의 상금과 동메달을 수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뢰브너는 이 상을 만들면서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최초의 컴퓨터에 대해 10만달러의 상금과 금메달을 약속했지만 아직 이 상금과 금메달을 받은 사람은 없다.
휴 뢰브너와 같이 튜링 테스트에 호의적인 사람도 있지만, 튜링 테스트를 과학사에서 퇴출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있다. 인간과 기계 인지 연구소(Institute of Human and Machine Cognition)의 설립자인 케네스 포드(Kenneth Ford) 박사는 비행기가 새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과 컴퓨터가 인간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모두 부질없는 짓이라고 주장한다. 비행기는 새와 같이 나무에 앉지도 못하고,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지도 못하며, 산들바람을 타고 가만히 공중에 떠 있지도 못하지만, 새와는 달리 1만m 상공에서 음속보다 빠른 속도로 날 수 있다.
따라서 새를 똑같이 흉내 내는 비행기를 만들 필요가 없으며, 마찬가지로 인간의 지능을 똑같이 닮은 컴퓨터를 만들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너무 느리고 쉽게 지치며 오류도 잘 범하기 때문에 인간의 지능을 그대로 모방하려는 시도는 유용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인간을 닮은 컴퓨터는 새를 닮은 비행기와 같이 쓸모없는 것일까?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AI>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 부부가 거의 인간의 지능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아이 로봇을 입양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부부가 로봇을 입양하는 이유는 친아들이 식물 상태로 초저온 냉동고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인데, 처음에는 로봇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부부는 친아들이 식물 상태에서 벗어나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서 로봇과 친아들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결국은 로봇을 숲 속에 버리게 된다.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이 더 발달하여 인간과 구별하기 힘든 컴퓨터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서 뢰브너의 금메달을 받는다고 하여도 과연 이러한 컴퓨터 프로그램에 인간이 얼마나 만족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 <AI>에 나오는 로봇이 다음에 소개하는 후배 딸과 같은 창의성을 따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후배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올라왔다. 이날 후배는 일찍 퇴근해 초등학교 저학년인 딸의 수학 숙제를 도와주었다고 한다.
동물원에 코끼리 8마리와 원숭이 15마리가 있다. 원숭이는 코끼리보다 얼마나 많은가? 아이는 문제를 풀다 말고 코끼리를 그린다. 내가 코끼리를 그만 그리라고 하면 “그럼 원숭이를 그릴까요?”라고 한다. 다시 문제를 풀라고 하면 아무 생각 없이 “2마리요”라고 답한다. 왜 2마리냐고 물으면, “그럼 4마린가요?”라고 묻는다. 다시 풀라고 하면 “동물원에 다른 동물은 없느냐?”고 묻는다. 답을 구하려면 원숭이에서 코끼리를 빼야 한다고 하자, 아이는 “어떻게 원숭이에서 코끼리를 빼느냐?”고 묻는다. 결국 내가 풀어주고 만다. 다음 문제는 여기에다 기린 21마리를 더하는 문제였다. 결국 포기했다. 아이는 내일까지 숙제를 해 가야 한다고 운다. 이 문제도 결국 내가 답을 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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