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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13일의 금요일’ 공포증

누구나 동경하는 낭만적인 도시 파리를 피로 물들인 테러 사건은 11월13일 금요일에 일어났다. 서양에서는 13을 불행의 수로 생각하고, 특히 13일과 금요일이 겹치면 불길한 날로 여긴다. 잘 알려진 유래에 따르면, 최후의 만찬에 예수와 열두 제자를 포함한 13명이 참석했고 예수를 배반한 유다가 13번째 손님이었으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금요일이기 때문이다. 실제 서양에서는 13일의 금요일이면 여행객이 줄고 결혼과 이사도 피하며 장사도 잘 안되어 금전적인 손해가 적지 않다고 한다.

서구의 건물 중에는 13층을 두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13일의 금요일 공포증(paraskevidekatriaphobia)’이라는 용어도 있다. 금요일을 뜻하는 paraskevi와 13을 뜻하는 dekatria와 공포의 phobia를 결합해서 만든 용어이다. 13과 불운을 연결시키는 예로, 아폴로 13호는 1970년 4월11일 13시13분에 발사되었고, 4월13일 산소탱크가 폭발했다. 컴퓨터를 감염시키는 예루살렘 바이러스는 13일의 금요일에 실행되도록 만들어졌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새너제이의 명소 중 하나는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이다. 미스터리 하우스는 총기 회사의 회장이던 윈체스터가 사망한 후 부인이 세운 대저택으로, 160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고 집의 구석구석에 13을 반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13개의 욕실이 있고, 13번째 욕실에는 13개의 창문이 있고, 이 욕실에 이르기 위해서는 13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방에는 13이나 13의 배수에 해당하는 개수의 벽걸이 후크를 설치해 놓았고, 배수구에는 13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샹들리에는 원래 12개의 초를 꼽게 되어 있었는데 하나를 추가하여 13개가 되도록 개조했다. 이처럼 13에 특별한 의미를 두었던 윈체스터 부인을 기리기 위해 13일의 금요일 13시에는 종을 13번 울리는 관행을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서구 사람들이 불길하게 여기는 13이지만 미국 1달러 지폐의 뒷면에는 13이 여러 번 등장한다. 미국의 초기 주가 13개였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지폐에 새겨진 피라미드에는 13개의 계단이 있고, 독수리 머리 위에는 13개의 별이 새겨져 있다. 독수리의 한쪽 발은 13개의 화살을 쥐고 있고 다른 쪽 발은 올리브 가지를 쥐고 있는데 13개의 열매와 13개의 잎이 달려 있다.



영화 '13일의 금요일'_경향DB


한자 문화권에서도 길한 수와 불길한 수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넉 사(四)는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기피된다. 중국에서는 8을 길한 숫자로 생각하는데, 중국어로 8의 발음이 돈을 번다는 뜻의 ‘발(發)’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8로만 이루어진 자동차 번호판에는 높은 프리미엄이 붙는다.

2008년 8월8일 저녁 8시8분8초에 개막식이 시작된 베이징 올림픽을 상기해보아도 8에 대한 중국인들의 유별난 선호를 확인할 수 있다. 유나이티드항공사는 베이징에서 출발하여 차이나타운으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를 운항하는 항공편을 UA888로 부른다.

한편 십진법에서는 0부터 9까지의 기본수를 사용하므로 그중 가장 큰 수인 9는 충분함을 나타내는 수이자 황제와 관련된 수로 생각했다. 우리말과 마찬가지로 중국어에서도 아홉 구(九)는 오랠 구(久)와 발음이 동일해, 9는 영원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애플사는 2014년과 2015년 9월9일에 각각 아이폰6와 6S를 출시했는데, 2년 연속 동일 날짜인 것은 아무래도 중국 시장을 겨냥한 택일로 보인다.

이처럼 한자 문화권에서는 숫자의 발음과 관련하여 길흉을 따진 반면 서양의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13과 같이 종교적 의미와 관련짓는 경우가 많다. 3은 삼위일체를 나타낸다고 해서 중세에는 신성한 수로 취급되었다. 또 7은 신의 수로 7이 세 번 연속된 777을 가장 길하게 여긴다. 슬롯머신에서 777을 당첨 수로 설정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인간은 수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하고 신비화하는 수비주의(數秘主義, numerology) 경향을 갖는다. 그저 숫자일 따름인데 수를 신봉하는 게 비이성적인 미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인간은 무엇엔가 의미를 두고 그로부터 부질없는 불안감을 갖기도 하고 근거 없는 위안을 얻기도 하는, 태생적으로 나약한 존재인 걸 어찌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