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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같은 주제, 상반된 결론은 왜

과학계에서는 익숙하지만 일반인에게는 낯설게 다가오는 사실 하나. 동일한 연구주제에 대해 상반된 결론이 나오는 일이 흔하다는 점이다. 당연하다. 과학적 연구는 특정 문제에 대해 최대한 객관성을 확보하며 답을 찾는 행위이지만 연구자가 어떤 방법을 사용하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여러 개의 답이 나올 수 있다. 문제는 인체와 생태계에 치명적인 사안에 대해 과학계가 상반된 결론을 내릴 경우 일반인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럴 때 정부가 나서 양쪽의 입장을 정리하고 알기 쉽게 소개함으로써 일반인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 문제 해결을 위한 출발점일 것이다. 최근 과학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제초제 논란을 보며 떠오른 생각이다.

지난 3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글리포세이트 계열의 농약이 인간에게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글리포세이트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제초제로 농가는 물론 공원, 늪지 등의 관리를 위해 살포되고 있다. 이전까지 미국 환경청(EPA)은 글리포세이트가 인체에 치명적이지 않다고 밝혀왔다. 다른 제초제에 비해 독성이 약하다고 판단해온 과학계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였다. 글리포세이트의 사용량은 유전자변형 농작물(GMO)의 등장으로 대폭 늘어났다. 세계에서 가장 널리 재배되고 있는 GMO는 제초제를 뿌렸을 때 잘 죽지 않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 GMO에 살포하는 주요 농약이 바로 글리포세이트 계열이었다. 한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1974년부터 2014년 사이에 그 사용량이 240% 증가됐다고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IARC의 발표는 세계 농가와 소비자에게 큰 충격을 던졌다.

그런데 지난 12일 유럽식품안전청(EFSA)은 정반대의 결론을 발표했다. 글리포세이트가 인간에게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당장은 안심이 된다. 하지만 이 결론에 대해 논란이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면 다시 혼란스러워진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대규모 농장에서 경비행기로 농약을 살포하고 있다._경향DB



먼저 두 기관은 동일해 보이지만 약간 다른 대상을 조사했다. EFSA는 글리포세이트 성분 자체의 위해성을 검토했다. 이에 비해 IARC는 글리포세이트 성분이 함유된 제품까지 조사 대상에 넣었다. 현재 그 제품의 수는 700여개에 달한다고 한다. EFSA는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인간의 유전자에 손상을 일으키는 것이 사실이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다. 발암성 물질은 글리포세이트 자체가 아니라 최종 제품에 섞여 있는 다른 성분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EFSA는 IARC의 주장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한 연구원은 글리포세이트의 위해성에 대해 이전보다 좀 더 우려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두 연구기관이 검토한 논문이나 보고서의 종류도 다르다. IARC는 관련 산업계의 연구결과를 일부러 검토 대상에서 제외했다.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산업계의 지원을 받지 않은 학자나 공공부문의 연구결과만 분석했다. 또한 17명의 과학자가 무기명으로 제출한 의견을 모아 결론을 내렸다. 이에 비해 EFSA는 산업계의 연구결과를 포함시켰다. 애초에 검토자료가 달랐다면 결론이 상이하게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동안 산업계는 글리포세이트가 세계 각국 규제당국의 관리 아래 안전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한편에서는 EFSA의 결정에 성급히 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반론이 나올 것이라 예상된 상황이었으므로, 우선 EFSA 주장의 근거를 과학적으로 충분히 따져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6월 미국 EPA 역시 산업계의 자료를 포함해 검토한 결과 EFSA와 동일한 결론을 내린 바 있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일리 있는 얘기이다. 다만 이런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글리포세이트의 사용량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는 주정부 차원에서 암이나 기형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화학물질에 글리포세이트를 포함시키겠다고 밝혔다. 결론이 어떻게 나오든 일반인은 일단 상황을 알 필요가 있다. 하지만 글리포세이트 사용에서 예외가 아닌 한국에서는 상황 자체에 대한 정보도 잘 알려지지 않는 듯하다.




김훈기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