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 <마션>은 화성에 홀로 남겨진 주인공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가 생존을 위해 벌이는 사투와 그의 구출작전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식물학자인 와트니는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해 감자를 키워 식량을 해결하면서 버티다 우주에서 구조선과 도킹해 생환한다.
<마션>은 와트니 한 명을 구하기 위한 미국식 영웅주의가 깔려 있어 <라이언 일병 구하기>, 과학 지식으로 무장한 <인터스텔라>, 무인도 표류기와 비슷한 <캐스트 어웨이>가 결합된 영화라고 한다. 또 화성에서 하루하루 먹고사는 문제이므로 TV 프로그램의 제목을 붙여 ‘화성판 삼시세끼’라고 패러디하기도 한다. 와트니를 구출하는 데 중국의 전폭적인 협조는 영화 제작에 중국 자본이 유입되지 않았는지 의심을 하게 만든다.
<마션>은 과학 지식으로 충만한 영화이지만 수학 관점에서도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내용이 나온다. 와트니는 지구와 교신하기 위해 1997년 화성에 버려진 우주선 패스파인더를 찾아내고 그 안에 있던 회전거울과 동료 대원이 두고 간 아스키코드를 이용한다. 아스키코드는 미국 표준 정보 교환 코드로, 0부터 127까지 128개의 코드로 구성된다. 아스키코드에서 10진법의 수 옆에는 16진법의 수가 병기되어 있고, 각각에 대응되는 알파벳, 아라비아숫자, 특수문자, 제어문자가 적혀 있다. 16진법에서는 0부터 15까지가 한 자리 수이므로, 0부터 9까지는 10진법과 공통이고, 10진법의 수 10, 11, 12, 13, 14, 15에 해당하는 16진법의 수를 각각 A, B, C, D, E, F로 정한다. 이제 10진법의 수 16은 16진법의 수 10이 되고, 마지막의 127은 7F가 된다.
영화 <마션>_경향DB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와트니가 어떻게 화성에서 오랜 시간을 버텼는지 궁금해하며 “How alive” 라고 묻는다. 아스키코드에서 H는 10진법의 수로 72이고, 72는 4×16+8이므로 16진법의 수로 48이 되며, 이런 식으로 메시지를 16진법의 수로 바꾸면 48 4F 57 41 4C 49 56 45가 된다. 마크는 큰 원을 4등분하고, 각 사분면을 다시 4등분해 원을 16개의 영역으로 나누고 0부터 15까지로 정한다. 그런 후 회전거울이 16개의 영역 중 특정한 영역을 가리키도록 하면서 메시지를 원시적인 방법으로 송신한다.
10진법 이외의 진법이 등장하는 또 다른 작품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들 수 있다. 이 소설의 작가 루이스 캐럴은 원래 옥스퍼드 대학의 수학자인 만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수학적 장치가 곳곳에 담겨 있다. 한 예로 2장 ‘눈물 연못’에는 다음과 같은 독백이 나온다. ‘… 4 곱하기 5는 12이고, 4 곱하기 6은 13, ….’ 수학자인 작가가 엉터리 구구단을 내놓았을 리 없으니, 이제 이 구구단을 분석해보자.
4 곱하기 5는 분명 20인데, 12라고 말한 것은 18진법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18진법에서는 0부터 17까지가 한 자리 수이고 18이 되면 두 자리 수로 올라가게 된다. 10진법의 수 20은 18+2이기 때문에 18진법으로 표현하면 12가 된다. 동일한 방식으로 4 곱하기 6은 10진법으로 24이고 24는 21+3이기 때문에 21진법을 적용하면 13이 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흔한 진법은 10진법이다. 일, 십, 백, 천, 만으로 단위가 커지는 것이나, 야구 타율의 할, 푼, 리는 10진법에 따른 것이며, 금 10돈은 1냥과 같은 전통 단위도 10진법의 산물이다. 10진법이 대표적인 진법으로 자리 잡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손가락이 10개이기 때문이다. 만약 화성에 문명을 이루고 있는 생명체가 존재하고, 그 생명체의 손가락이 12개라면 12진법을 사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지구에는 10진법만 존재하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남아메리카의 한 종족은 5진법으로 수를 세고, 마야에서는 20진법을 사용했다. 지구의 공전주기가 360일 정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바빌로니아인들은 태양의 모양인 원을 360으로 생각하고 360을 6등분한 60을 단위로 하여 60진법을 사용했다.
대안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사고의 유연함은 10진법 이외 다른 진법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데도 필요하다.
박경미 | 홍익대 교수·수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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