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은 ‘반지의 날’이었다.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을 반대한다’는 말의 첫 자를 따서 반지(反G)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날 행사에서 어느 때보다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슈가 제시됐다. 국산 GMO가 조만간 상업화된다는 문제였다. 지난달 8일 농촌진흥청 GM작물개발사업단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개발 중인 GMO 가운데 벼와 고추 두 품목에 대한 승인 신청이 곧 이뤄진다. 통상 승인 심사는 9개월간 진행되므로 내년 7월께 국산 GMO가 우리 땅에서 상업적으로 재배될 수 있다. 그동안 가공식품에 대량 사용돼온 콩, 옥수수, 면화, 유채 외에도 이제는 한국인의 주요 곡물과 반찬에 GMO가 등장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벼에 대한 사업단의 발표 내용에 다소 생소한 느낌을 주는 용어가 등장한다. 유전자변형 벼를 사람이 먹는 용도가 아닌 ‘산업소재용’으로 심사를 받겠다는 대목이었다. 무슨 의미일까. 이 벼에 새롭게 삽입된 유전자는 땅콩이나 포도에서 레스베라트롤이라는 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레스베라트롤은 식물이 병원체의 침입에 대항하면서 분비하는 물질이다. 각종 심장질환을 예방하고 지방간의 발생을 막으며 비만을 억제할 수 있는 등 효과를 발휘한다고 알려져 있다. 상식적으로 당연히 식용으로 개발돼야 할 품목이다. 밥을 먹을 때 레스베라트롤까지 덤으로 섭취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업단의 발표에 따르면, 이 벼는 화장품에 사용될 예정이다. 벼에서 추출한 레스베라트롤을 미백 성분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미다. 주곡마저 GMO로 바뀌는 일에 대한 국민의 반감을 의식한 결과였다. 이 벼가 국내에서 재배될 경우 외부로 유출돼 엉뚱한 곳에서 자랄 가능성은 없을까. 혹시라도 유기농으로 재배되는 논에 섞여 들어간다면 농가나 소비자 모두에게 피해를 줄 것이다. 그러나 사업단은 밀폐형 실내공장에서 재배할 예정이기 때문에 이 같은 우려를 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산업소재용 GMO 개발은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 20여년간 국산 GMO 개발을 위해 상당한 자금을 투여해 왔다. 목표는 세계 식량시장에서 GMO 종자 개발의 주도권을 확보해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는 것이었다. 2012년 농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에서 개발되고 있는 GMO는 17개 작물 133종에 달한다. 식용이나 사료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품목 수로는 벼가 62종으로 가장 많고 유채(18종), 배추(7종), 사과(7종), 감자(6종), 콩(5종), 알팔파(3종), 마늘(2종), 고추(1종) 등이 뒤를 잇는다. 이들 가운데 개발의 마지막 관문에 해당하는 ‘안전성 평가’가 진행 중인 종류는 벼 4종, 배추 1종, 고추 1종이다. 전체적으로 외국에서 이미 개발된 GMO를 피하면서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아시아인의 주식을 겨냥한 품목들이다. 이번에 승인 신청에 들어가는 고추 역시 식용으로 쓰일 것이다. 벼의 경우 당장은 화장품 재료로 쓰이겠지만 식용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연도별 유전자변형식품(GM0)수입량, 수입 곡물 중 GMO 비중, GMO가 주재료인 가공식품 생산량_경향DB
문제는 사업단도 지적했듯이 사회적 공감대이다. 지금까지 GMO에 대한 안전성과 표시제도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GMO 재배농가에서 널리 쓰이는 글리포세이트 계열의 제초제가 인체에 암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승인 신청 전 야외에서 이뤄지는 시험재배도 문제이다. 2013년 5월 국내에서 떠들썩했던 미국 오리건주의 밀 사건이 대표적 사례이다. 당시 미국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은 유전자변형 밀이 현지에서 발견됐고, 한국을 비롯한 수입국들은 자국 내에 이 밀이 유통됐는지 다급히 확인해야 했다. 10여년 전 시험재배가 이뤄졌고 모두 폐기됐다고 보고된 밀이었다. 시험재배 중인 GMO가 정확한 유출 경로를 알 수 없이 얼마든지 주변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준 사건이었다.
최근 시민단체의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된 바에 따르면, 지난 6년간 국내에서 약 60억원이 투여돼 유전자변형 벼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으며 5개 지역에서 시험재배가 진행돼 왔다.
조사 결과 다행히 주변에 유출된 사례는 하나도 없었다고는 하지만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사안이다. 국산 GMO의 승인 과정은 이 같은 논란과 우려를 없앨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갖추는 것은 물론 다양한 이해당사자 간의 사회적 합의가 전제된 후에 진행돼야 한다.
김훈기 |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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