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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간단명료한 ‘과학 읽기’의 위험성

필자가 지난 글에서 설명했듯이 뉴스와 과학은 새로운 내용에 주목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물론 둘 사이에는 차이점도 많다. 그 중에도 결정적인 차이점은 과학에 비해 뉴스는 상황을 단순하게 흑백논리로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이 과학을 어려워하는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내용을 명쾌하게 전달하다 보니 생긴 것인지, 아니면 대중매체의 과학 보도가 워낙 간단명료해서 그 방식에 익숙해진 대중이 과학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인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아마도 두 경우 모두가 이런 경향성을 강화하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 경향성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최근 국내 언론에 보도된, “미국 연구진, DNA 검사로 동성애자 67% 예측” 혹은 더 선정적으로 “게이 유전자 있을까”라는 제목을 단 기사를 살펴보자. 제목만 읽거나 간단하게 보도된 내용만 읽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검사를 받고 양성 판정을 받으면 67% 확률로 동성애자라고 판단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혹은 더 나아가 “어린 시절 이 검사를 받고 동성애자 판정을 받은 100명 중 67명이 자라서 동성애자가 되겠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보도된 연구는 캘리포니아대학 연구팀이 미국 인간유전학회에서 발표한 내용으로 아직 정식 논문으로 출판되지도 않았다. 이 검사의 정확도에 대한 과학계의 검증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미 여러 전문가들은 정확도가 워낙 낮은 표본군(일란성 쌍둥이 47쌍)에서 얻은 결과이기에 과학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설사 이 검사가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올바른 것이어도, 검사를 통해 개인이 동성애자인지 여부를 결코 67% 확률로 예측할 수는 없다. 정확한 수치는 동성애자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달라지는데, 인구 100명당 1명이 동성애자라고 하면 이 검사를 받고 양성으로 판정된 사람 100명 중 대략 3명만이 동성애자이다.





얼핏 모순처럼 들리는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비교적 단순하다. 앞서 보도된 검사의 정확도가 67%라는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이 검사가 틀릴 확률은 33%라는 말이다. 즉 이 검사를 받은 100명 중 33명은 동성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라는 ‘잘못된’ 판정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제 ‘진짜’ 동성애자는 평균적으로 100명 중 단 한 사람만 있다고 가정했음을 떠올려 보자. 그러므로 우리는 임의의 100명에게 이 검사를 실시하면 대충 34명의 동성애자 판정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물론 그 중에서 1명만 진짜고 나머지는 검사의 한계 때문에 잘못 나온 결과이다. 이제 당신이 이 검사를 받았고 동성애자 판정을 받았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당신이 진짜 동성애자일 확률은 34분의 1, 즉 3%가 채 안된다. 결국 당신이 동성애자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말이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아무리 정확도가 높은 검사라도 그 검사가 찾아내려는 특징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낮다면 검사 결과로 그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요즘 유행하는 뇌영상을 찍어 99.99%의 환상적인 정확도로 사이코패스를 찾아내는 검사를 누군가가 발명했다고 가정해 보자. 물론 불가능한 가정이다. 설사 그런 검사가 있더라도 전체 인구 1만명당 1명꼴로 사이코패스가 있다면, 이 검사를 받고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은 사람이 정말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은 절반밖에 안된다. 누군가는 99.99% 정확도에 현혹되어 이 ‘과학적’ 검사로 엉뚱한 사람을 사이코패스로 몰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자고 제안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생각만 해도 오싹한 가능성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반직관적 현상에 대해 일부 인지과학자들은 우리 뇌의 인지구조가 확률적 주장을 이해하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한다. 우리는 사이코패스 검사의 정확도가 99.99%라는 말보다 누군가가 사이코패스 검사를 받고 양성일 때 진짜 사이코패스인지 여부에 더 관심이 많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뉴스는 과학적으로 정확한 99.99%의 정확도를 이런 방식으로 오해되기 쉽게 보도하는 것이다.

이런 보도 관행의 위험은 전형적인 사회과학 개념의 경우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검사의 정확도가 기껏해야 70%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사회적으로 배척되는 소수자의 특징은 잘못 진단되고, 그 결과 잘못 진단된 사람들은 과학적 객관성의 이름으로 부당한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복잡한 사회적 개념을 단순한 검사로 환원시키려는 시도의 무용함과 위험이 여기에 있다. 과학과 뉴스의 결정적 차이는 과학이 뉴스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데 있다. 이 복잡한 과학을 간단명료하게 읽어내려는 시도는 종종 의도하지 않은 위험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이상욱 | 한양대 교수· 과학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