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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산시로(三四郞)가 바라본 과학”

이상욱 | 한양대 교수·철학

 
<산시로>는 일본 근대문학의 대가 나쓰메 소세키가 아사히신문에 1908년 9월부터 12월까지 연재한 소설이다. 주된 내용은 규슈의 시골 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대학에 진학한 청년 산시로가 겪는 생활의 여러 단면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산시로>는 할머니를 잃고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고도 불쌍하다 생각하면서도 누구도 선뜻 도와주려 나서지 않고, 순경(경찰)이 알아서 해결해줄 것이라 믿는 대도시 현대인들의 모습에 대한 산시로의 관찰 등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나간 일종의 성장 소설이다. 

하지만 100년도 더 전에 쓰여졌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현대적 문장이 구사된 <산시로>는 일본과 우리나라 근현대 소설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소세키의 대표작답게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여인의 이야기나 대학의 외국인 교수를 일본학자로 대체하려는 당시 경향처럼 흥미로운 이야기가 여럿 담겨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청춘 소설답게, 알듯말듯한 어조로 산시로의 마음을 태우는 미네코라는 여성과의 소심한 사랑 이야기도 있다.

산시로의 고향 선배이자 연적(戀敵)인 노노미야는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하루종일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빛의 압력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로 등장한다. 노노미야는 이미 저명한 외국학술지에 여러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해당 분야 학자들 사이에는 잘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봉에 시달리며 정작 일본 내에서는 그다지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서재에 앉아있는 나쓰메 소세키. (경향신문DB)



소세키는 도쿄대학을 졸업하고 국비장학생으로 영국 유학을 마친 뒤 모교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그런 이유로 소세키의 대학 생활 묘사는 당시 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인상적인 것은 지금부터 100년도 더 전에 일본에서는 이미 요즘 말로 하면 ‘국제저명학술지’에 논문을 내는 과학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산시로의 눈에는 다소 답답해 보이지만 당시 첨단 연구주제를 묵묵하게 추구하면서 다른 사람이 이해해주든 말든 ‘학문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서양 과학 수용과 연구의 역사는 이보다 더 오래된다. 일본은 막부시절 쇄국정책을 취하면서도 기독교를 전파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나가사키에서 네덜란드 상인들과 교류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서양 과학기술 서적이 일본어로 번역돼 널리 학습됐고 이러한 학습은 <산시로>에 등장하는 본격적인 과학 연구의 기초를 제공했다. 

1853년 강제 개항 이후에는 정부가 나서서 일본 과학기술자 집단을 보다 적극적으로 양성하려 노력했다. 우선 일본 과학기술 인력의 초기 형성과정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했던 도쿄대학 이학부와 의학부 등에 능력있는 외국인 과학자, 기술자를 교수로 초빙했다. 이들은 당시 최고수준의 과학기술자는 아니었지만 자국에서도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실력있는 학자들이었다. 이들을 일본으로 오게 한 데는 일본에 대한 막연한 동경, 높은 보수와 일본 정부의 극진한 대우, 일본 학생들의 열의 등의 유인이 있었다. 

이들에게 최신 과학 내용을 배운 학생들은 그후 국비유학을 떠나 첨단 과학연구가 이루어지던 곳에서 최고 수준의 연구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세계적인 생리학자 로버트 코흐의 제자로 일본 병리학 및 보건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기타사토 시바사브로 등이 이런 방식으로 길러진 국비유학생의 대표적 예이다. 

결국 일본은 1900년 즈음이 되면 과학 분야에서는 세계 10위권, 기술 분야에서는 7~8위 권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의 연구 수준을 갖추게 되었다. 산시로가 관찰한, 노노미야의 따분하면서도 어딘지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과학 연구에 대한 진지함의 배경에는 그 전 시기 수십년에 걸쳐 축적된 일본 과학기술 연구의 ‘유산(遺産)’이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예는 과학기술 연구에서 지적 유산(legacy)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지적 유산은 최신식 설비를 갖춘 인상적인 실험실처럼 손에 쉽게 잡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주제가 중요한 연구 주제인지를 판별하고 그러한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연구하는 것이 유망한지에 대한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여러 연구자에게 내재적으로 구현된 형태로만 확인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지적 유산은 한 세대 연구자로부터 다음 세대 연구자로 이전되면서 보다 깊어지고 발전하게 된다. 산시로가 살던 20세기초 일본 사회와 21세기의 한국사회는 여러 모로 다르다. 당연히 바람직한 과학기술 유산의 내용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개별적인 연구 성과만이 아니라 그러한 연구 성과를 가능하게 해주는 과학기술 연구의 지적 유산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일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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