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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가상·증강현실의 핵심은 상상력

영국 런던 북쪽에 자리 잡은 레전트 파크는 형형색색의 화초가 마치 잉글랜드의 초원을 옮겨 놓은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정원을 걷다보면 기하학적 조경이 두드러진 프랑스식 정원과 달리, 제멋대로 심어놓은 식물들의 자연스러움이 돋보인다. 하지만 이는 치밀하게 계산된 환상이다. 실은 영국 정원만큼 정원사의 인위적 노력이 돋보이는 환경도 드물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초목의 느낌을 구현하기 위해 정원사들은 대영제국 시절부터 수집해 온 세계 곳곳의 이국적식물들을 영국의 풍토에 맞게 개량한 후 적당히 섞어 배치했다. 레전트 파크를 거닐며 번잡한 도시의 인공적 삶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방문객들은 실은 자연과 인공의 절묘한 결합을 즐기고 있는 셈이다.

 

24일 오후 울산시 울주군 간절곶을 찾은 포켓몬 고 게이머들의 모습이 게임 화면 너머로 보인다. 연합뉴스

 

최근 포켓몬 고 열풍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이 게임은 대표적인 증강현실 게임이다. 게임 참여자들은 현실에 정말 존재하는 건축물이나 지형지물에 덧붙여 증강된현실, 즉 포켓몬 관련 이미지를 함께 경험한다. 포켓몬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게임 캐릭터이기에, 이 증강현실에서 현실과 비현실은 비교적 분명하게 구별된다. 그럼에도 이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이 구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들에게는 트레이너로서 포켓몬을 잡는 일이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항구의 부둣가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과 환상적인 게임 캐릭터의 결합 자체가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도 현실과 비현실 구별에 있어 포켓몬 고를 즐기는 사람은 레전트 파크를 거니는 사람과는 분명 달라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살펴보면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진 않다. 19세기 초 처음 개장한 레전트 파크를 거닐던 당시 방문객들은 분명 세계 곳곳에서 수집된 낯선식물들에 감탄하며 그것을 훨씬 친숙한다른 사물, 예를 들어 공원 벤치와 분명하게 구별했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초의 방문객들에게는 여러 이유로 그런 낯선 느낌이 사라졌다. 글로벌 시대의 시각적 자극에 익숙한 우리에게 모든 식물은 그저 자연일 뿐이다. 이런 변화, 즉 낯선 것이 친숙해지면서 그 둘 사이의 구별이 무화되는 변화가 포켓몬 고 사용자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이런 가능성은 이미 실현되고 있다. 게임에 몰두하며 현실을 잊고 사는 일부 게임중독자가 사회문제로 부각된 지는 한참 되었다. 게다가 실은 우리 모두가 이미 가상현실을 현실과 별 차이없이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 있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특정한 맥락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소설을 읽을 때가 바로 그런 맥락이다.

 

개념적으로 볼 때 소설은 훌륭한 가상현실 기술이다. 우리는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기호가 가득한 종이묶음을 읽어가면서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야기에 몰입한다.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화하기도 하고 극적인 상황에서 다음이 어떻게 진행될까 숨을 죽이기도 한다. 책을 읽고 이런 느낌을 갖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좀 더 시각적 자극이 분명한 웹툰을 떠올려도 좋다. 이들 오래된 가상현실 기술이 요즘 유행하는 가상·증강 현실 기술에 비해 시각적 생생함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매우 뛰어난 상상력을 갖고 있기에 충분히 만족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실 우리의 상상력이 없다면 최근 유행하는 가상현실도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불완전한 가상현실로부터 극적인 몰입감과 현실·비현실의 무경계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 상상력 덕분이다.

 

그러므로 가상·증강 현실과 관련된 여러 사회적, 윤리적 쟁점들은 결코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가상현실에 대해서도 이를 항상적으로 경험하는 우리의 마음은 경험 전체를 현실로 인식하고 그것과 상호작용한다. 이는 마치 레전트 파크 근처 베이커 스트리트에 위치한, 소설 속 주인공 셜록 홈스가 살던집에 관광객이 몰려드는 것과 같다. 증강현실에 24시간 내내 노출되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네트워크가 특정한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분류한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제공한다는 사실에 둔감해질 수 있고, 그런 정보의 도움 없이 판단하거나 생활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최근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바에 따르면 그런 사람의 뇌도 증강현실의 노출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증강·가상 현실이 사회적으로 보편화될수록 우리는 새롭게 등장하는 수많은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신기술만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문화도 동시에 필요한 것이다.

 

이상욱 | 한양대 철학과 교수·과학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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