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도 위작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르네상스시대 생존 작가들의 작품은 싼값으로 거래가 됐기 때문에 생계형 위작이 만연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돈벌이 목적과 더불어 당시 주류 미술계를 놀려먹기 위한 목적으로 위작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조각품을 땅에 묻어서 시간의 흔적을 덧씌운 다음, 우연한 기회에 발굴한 것같이 꾸며 로마시대의 걸작으로 팔아먹었다.
<위조의 기술> 저자 노아 차니도 이와 같은 맥락의 주장을 한다. 위조범의 목적은 돈벌이에도 있지만 자신의 재능을 무시한 주류 예술계에 대한 보복적 성격도 있다고 한다.
위작은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를 속이는 작품을 만드는 것도 엄청난 재능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그림을 바로크 황금시대의 화가 페르메이르의 진품이라고 속여 나치에게 판 위작의 전설 메이헤런의 경우가 이런 위작의 심리학과 경제학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가 괴링에게서 받은 돈도 위폐였다는 사실은 위작의 복잡한 층위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최근 유명 화가의 위작 논란으로 소란스럽다. 원작자는 과학자의 연구노트에 해당하는 도록이나 다른 사람이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단서로 자신이 작품의 주인임을 증명해야 한다. 내가 원작자이므로 그런 증명이 불필요하다는 주장은 순환논리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진품 감정은 권위나 감성의 영역이 아니라 객관이 핵심인 과학의 영역에 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한눈에 알아낼 수 있다는 과신은 위작범들이 가장 좋아하는 심리기제이다. 요즘 위작 감정에는 다중 스펙트럼 카메라, X선, 나노 질량분석기까지 동원된다. 원작자의 정열만큼이나 위작범들의 노력도 상상을 초월한다.
요즘 위작범은 0.1㎜ 단위로 채색할 수 있는 3D 프린터까지 동원해 붓질 자국, 물감이 말라 갈라진 패턴까지도 재현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작가의 도록 자체를 위조한 뒤, 그 안에 위작을 늠름하게 끼워 넣기도 하고, 아예 위작과 그 초기 스케치까지 짝을 맞춰 쌍으로 조작하기도 한다.
디지털시대인 지금, 주인을 확정하고, 진짜 가짜를 가리는 문제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 프로그램, 디지털 사진, 오디오, 출력물의 조작 여부와 주인을 가리는 디지털 포렌식은 첨단 과학의 한 분야이다. 이 중 디지털 워터마크(watermark)는 원주인의 정보를 파일에 숨겨 넣는 대표적 위조방지 기법이다. 예를 들어 사진 파일에서 원작자의 생일이나 주민번호에 해당하는 순번의 픽셀을 특별히 수정한다. 얼핏 보기에는 흔한 잡티로 보이겠지만 그 잡티의 위치정보로부터 이미지의 주인을 증명할 수 있다. 소스코드에 개발자의 이름을 적어 놓는 방법으로는 내 것임을 보장하지 못한다. 편집기로 그런 정보를 몽땅 지워버리고 위작범이 자신을 도리어 주인으로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원소스코드의 변수 이름에 개발자의 이름이나 생일, 전화번호 등을 교묘히 숨겨 놓아야 한다. 만일 위조범이 워터마크로 의심되는 부분을 조금이라도 고치는 경우에는 프로그램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도록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주인이 아니고서는 변조가 불가능하다. 이런 난독화(obfuscation) 기법은 핵심 알고리즘 보호에도 유용하다. 사진의 경우 뷰파인더로 보이는 작가의 홍채 이미지를 워터마크로 사용하는 특수 카메라까지 개발돼 있다.
워터마크를 이용하면 유출자도 추적할 수 있다. PDF 문서를 배부할 때 받는 사람들마다 교묘하게 변형된 다른 결과물을 배부한다. 예를 들어 1번 수신자에게는 문서의 첫 번째, 11번째 줄의 특정 글자를, 2번 수신자라면 두 번째, 12번째 줄에 있는 특정 글씨를 0.1㎜ 정도 아래로 내린다. 또는 단어 사이의 공백 간격을 조정하여 문서마다 다른 공백 패턴을 만들어주는 워터마킹 기법도 있다. 우리 눈은 이 정도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워터마크의 존재를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따라서 유출된 이미지를 분석하면 유출자뿐 아니라 그 과정까지도 추적할 수 있다. 물론 워터마크를 뭉개주는 비싼 해킹 도구도 개발돼 있다.
위조를 막는 방법은 과학에서 찾아야 한다. 그림에 찍힌 지문 정도는 3D 프린터로 쉽게 복제된다. 원유에 특정 식물 유전자를 넣어 해양오염 주체를 추적하는 기법과 같이, 앞으로는 물감이나 캔버스에 작가의 땀이나 피를 섞어 넣는 처절한 기법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피와 땀”을 섞어 만든 작품에 대한 “친자 검사”만이 위작 논란에 대한 궁극의 해결책이 아닐까 싶다.
조환규 부산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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