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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귀지’의 생물학

20세기 초반 비타민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던 영국의 프레더릭 홉킨스는 식물을 연구하는 동료 과학자들을 탐탁잖게 생각했다. 배설기관이 따로 없는 식물을 ‘더럽다’고 여긴 까닭이다. 장차 아파트가 들어설, 한바탕 땅을 뒤집어 놓은 척박한 곳에 자리 잡은 버드나무를 <나무수업>의 저자 페터 볼레벤은 개척자 식물이라고 칭했다. 몸피가 허연 자작나무도 또한 개척자 식물이다. 개척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버드나무와 자작나무는 강한 햇살과 목마름을 기꺼이 버티고 견딘다. 그리고 수시로 나무껍질을 떨구어 손상된 세포나 조직을 버린다. 나무껍질은 배설기관이다. 수정을 끝내고 하릴없이 떨어지는 꽃잎도 가을 저물어 떨구는 이파리도 마찬가지로 배설기관이다. 질소와 같은 필수적인 영양소를 몸통에 남긴 채 나무껍질도, 낙엽도 하릴없이 땅으로 떨어진다. 그러므로 동물이 배설기관을 가졌다고 유난 떨 일은 아닌 것 같다. 정수를 앗긴 음식물 찌꺼기라는 생각 때문에 배설물은 버려야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자연계에서 배설물은 ‘반쯤 소화된’ 음식물에 가깝다. 쥐도 판다도 자신의 배설물을 빈번하게 먹는다. 밀림에서 배설물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말똥구리나 쇠똥구리와 같은 곤충이 잽싸게 처리하기 때문이다. 배설물이 다른 생명체에게는 양식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자신의 코를 통해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다시 사용할 수 없지만 식물은 순식간에 이산화탄소를 포도당으로 바꾸어버린다. 광합성을 통해서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식물처럼 동물도 껍질을 떨구어낸다. 우리가 ‘때’라고 부르는 것이다. 피부는 우리 몸통에서 정기적으로 떨어져 나간다. 아주 정확한 수치는 못되겠지만 그 양은 하루 약 1.5g 정도라고 한다. 1년이면 쇠고기 한 근 어치에 버금간다. 이른바 확장된 피부라 불리는 손톱이나 발톱 혹은 머리카락도 떨어져 나가거나 닳는다. 재미있는 점은 우리가 귀지라고 부르는 고형 물질에도 죽은 피부세포가 많이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귀의 안쪽 피부의 땀샘과 피지샘에서 나온 물질들도 귀지에 포함되어 밖으로 빠져나온다. 때를 굳이 박박 밀지 않아도 각질로 떨어져 나가듯 귀지도 굳이 파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물속에 사는 고래는 사정이 다르다. 공기 중의 소리를 전달하던 고막과 귓속뼈의 기능이 대폭 줄어들면서 고래는 아래턱과 이마에 지방체를 갖추고 물을 타고 오는 주파수를 감지하도록 진화했다. <백경>에서 멜빌이 묘사했듯 고래의 귀는 구멍이 아주 작거나 막혀있어서 설사 귀지가 많더라도 나오기 쉽지 않은 구조이다. 분비된 채 귓속에 보관되어 있던 고래의 귀지가 발견되었다고 한 때 법석을 떤 적이 있다. 무려 길이가 24㎝나 되었단다. 한사코 거부하는 내 귀를 파면서 “귓구멍이 좁으니까 남의 말을 잘 안 듣지”라는 다소 해괴한 말로 귀의 해부학을 통속 심리학으로 즉시 탈바꿈시킬 줄 아는 우리 집사람이 봤다면 그야말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테처럼 삶의 역사를 오롯이 간직한 고래의 귀지는 나도 한번 보고 싶기는 하다.

 

그렇다면 귀지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생명체가 유한하다는 말은 곧 그것의 구성단위인 세포도 수명을 다하면 죽는다는 명제로 바뀐다. 주재료가 죽은 피부세포이기 때문에 귀지는 어쩔 수 없는 생명의 흔적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동양인과 서양인의 귀지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이나 중국, 일본인의 귀지는 대부분 하얗고 마른 상태이지만 흑인이나 서양인의 그것은 액체처럼 젖은 데다 노랗다고 한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귀 파는 취미를 가진 집사람이 귀이개를 사오라고 했다. 대형 몰을 여러 차례 돌았어도 찾지 못했다. 결국 대나무 가지 쪽을 주워서 귀이개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적이 있었다. 귀지를 파는 것은 매우 사적인 행동에 속하므로 미국 생활을 오래 했지만 미국인들이 귀를 파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아마 면봉을 쓰지 않을까 싶다. 잠깐 구글링해보니 주사기로 빨아내기도 하고 진공청소기처럼 귀지를 파내는 기계도 있는 듯하다. 앞에서 얘기했듯 귀지는 죽은 세포와 샘에서 분비된(secreted) 물질이 섞인 것이다. 세포 내부의 비밀(secret)을 분비하는 단백질의 차이가 동양인과 서양인의 귀지를 각기 다르게 빚어낸다. 이 단백질을 만들 때 사용된 유전자 염기 서열 단 한 개가 바뀐 인간 집단의 귀지가 마르고 하얗게 변한 것이다. 일본 연구진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유전자 돌연변이가 생긴 지는 약 2000세대 전이다. 한 세대를 20년으로 잡아도 얼추 4만년 전에 일어난 사건의 결과가 지금껏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아프리카를 떠난 인류가 유럽으로, 중동으로 갈리면서 이런 차이가 고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당연한 말 같지만 1만5000년 전쯤 베링해를 건넜던 아메리카 인디언의 귀지는 하얗고 마른 동양인의 그것과 같다. 그것 말고도 더 있다. 서양인의 귀지는 분비물이 많고 지방산과 같은 화학물질도 상당히 들어 있어서 냄새도 고약하다고 한다. 이 냄새를 분석하면 몇 종류의 대사 질환도 진단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혹은 동물이든 식물이든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배설한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더 이상 필요가 없는 유전자를 가차 없이 버리고 단출한 삶을 꾸리는 일은 세균계에서도 거의 법칙에 속한다. 한때는 비밀(secret)이었을지도 모를 생명의 정보가 쓰임새를 다하면 분비(secrete)되거나 배설(excrete)되는 일은 그지없이 자연스럽다. 그렇다. 비밀은 언젠가는 분비된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