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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모든 세포는 세포로부터

얼추 10만개에 달하는 우리 머리카락의 평균수명은 대략 5년이다. 이 머리카락 한 가닥을 기다란 원통이라고 해보자. 몇 올의 머리털을 세로로 나란히 세우면 폭이 1㎜가 될 수 있을까? 이는 머리카락의 직경이 얼마쯤 되겠느냐는 질문과 같다. 한국인 머리칼의 평균 직경은 80마이크로미터(㎛)다. 그러므로 약 13개의 머리카락을 일렬로 세우면 1㎜가 된다. 우리는 머리카락을 눈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세포는 어떤가? 주먹 쥔 손등을 뚫어지게 본다한들 피부세포가 보일 리 만무하다. 인간의 눈은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를 보지 못한다. 인간이 가진 세포의 평균 직경이 머리카락보다 훨씬 작기 때문이다. 얼마나 작을까? 인간의 세포 약 다섯 개를 나란히 세워야만 머리카락 하나 정도의 폭이 된다.

 

세포(cell)란 말은 12세기 초반 중세 수도원에서 수녀나 사제들이 머물던 방을 가리키던 용어였다. 그 뒤 영국의 과학자 로버트 훅은 인간의 시각을 미시세계까지 확장하는 현미경을 통해 관찰할 수 있었던 공통적인 미세구조물에서 사제의 방을 떠올리고 거기에 세포라는 이름을 붙였다. 세포는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이다. 이들 개별 세포는 서로 소통하고 협력한다. 그렇지만 모든 생명체가 거추장스럽게 여러 개의 세포를 거느리지는 않는다. 필요할 때 잠시 연합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세균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세포가 생명체 전부다. 세포 하나가 3m에 이르는 콜러파라는 괴상한 조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세포는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작다. 그러므로 인간의 눈에 보일 정도 크기인 생명체는 대부분 세포가 여럿인 다세포 생명체다. 식물도 다세포 생명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수업시간에 가끔 나는 세포를 레고와 같은 빌딩 블록에 비유하곤 한다. 요새는 흔한 장난감이고 어른 마니아들도 있을 정도라니 레고는 다 알 것이다. 레고 블록 한 개를 하나의 세포로 간주한다면 몸통의 길이가 1㎜에 불과한 예쁜 꼬마 선충은 세포 레고 블록의 숫자가 1000개 남짓, 포도 껍질에 몰려드는 초파리는 1만개가 좀 안되는 작은 장난감이다. 타조 알이나 콜러파처럼 예외적으로 큰 세포가 없지는 않지만 다세포 생명체를 이루는 개별 세포의 크기는 서로 엄청나게 차이 나지 않는다. 꼬마 선충의 근육 세포와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근육 세포의 크기가 서로 비슷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인간과 꼬마 선충의 무게를 결정하는 것은 주로 세포의 숫자다. 이런 사실로부터 우리는 인간이 가진 세포 숫자가 30조~50조개 정도라고 추론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수는 우리 인간의 인식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 하지만 굳이 비유를 해보면 50조는 현재 지구 인구의 1만배, 빛의 속도로 5년 동안 달린 거리를 ㎞로 표현한 양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보유한 세포 레고 블록의 종류는 얼마나 될까? 약 200가지라고 한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세포는 무엇일까? 1위는 적혈구다. 25조개 정도다.

 

인간 세포의 절반 이상이 적혈구인 셈이다. 한참 뒤처지는 2등은 혈관이 구멍 났을 때 땜질하는 혈소판이고 다음으로 골수세포, 뇌의 신경아교세포, 혈관을 구성하는 내피세포, 해독하는 간세포 등이다. 세포의 숫자만 놓고 보면 혈액을 따라다니면서 산소와 영양분을 운반하는 데 관여하는 세포들이 가장 흔하다.

 

그러나 다음 세대로 전달되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측면에서 인간의 세포를 구분한다면 이들 200종의 세포는 딱 두 종류로 나뉜다. 앞에서 얘기한 적혈구니 간세포니 하는 모든 세포들은 뭉뚱그려 자식 세대에 전달되지 않는 체세포로 분류된다. 후대에 대물림되는 세포는 생식세포라 불리는 난자와 정자, 단 두 가지밖에 없다. 우리가 흔히 믿듯 유전자만 후대에 대물림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유전자를 포함하는 세포가 통째로 유전되는 것이다. 다세포 동물의 발생은 수정란이라 불리는 단 하나의 세포에서 오롯이 비롯된다. 수정란은 부모의 생식세포인 난자와 정자가 각각 하나씩 만나서 합체된 세포이다. 큰 바다가 한 방울의 물에 합류한 것과 같은 이 하나의 수정란이 다양한 기능을 전담하는 50조개의 커다란 세포 덩어리로 분화해 간다. 그게 우리 인간이다. 병리학의 창시자이자 ‘의학은 사회과학이고 정치는 거대 규모의 의학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사회의학을 옹호했던 19세기의 과학자 루돌프 피르호는 ‘모든 세포는 세포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이제 미루어 짐작하겠지만 생명체의 대물림 과업은 고스란히 생식세포의 몫이다. 양쪽 합해 100조개에서 차출되어 지금의 나를 빚은 두 개의 생식세포는 한 번의 끊어짐 없이 계속해서 부모, 부모의 부모로부터 장구히 이어져 내려왔다. 하나의 수정란과 그 안에 포함된 두 벌의 부모 유전자를 자손들에게 건강하고 안전하게 물려주기 위해 부모의 체세포는 최대한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1000년 전에도 10만년 전에도 인간의 체세포는 늘 그래 왔다. 인간 부모의 체세포 생물학은 본질적으로 애틋하고 아가페적이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