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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국산 GMO 승인 과정 ‘깜깜’

국산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의 상업적 개발 속도가 늦춰지고 있다. 지난해 9월 농촌진흥청 GM작물개발사업단은 국내 기술로 개발된 유전자변형 벼와 고추에 대한 승인을 신청하겠다고 예고했다. 승인심사가 계획대로 이뤄졌다면 올해 7월 국산 GMO가 등장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농진청은 승인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이 섭취하는 주요 농산물이 GMO로 바뀌는 일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 여론의 동향을 의식했기 때문인 듯하다.

정부가 국민의 먹거리를 새롭게 개발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단 승인이 이뤄지면 국산 GMO가 국내에서 재배돼 시장에 유통되는 상황이 법적으로 보장된다. 그렇다면 국민은 어떤 국산 GMO가 승인대기 상태인지, 조만간 얼마나 많이 승인신청에 돌입할 것인지 사전에 알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이 정보를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고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국산 GMO 신청을 둘러싼 최근의 상황을 보면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감지되지 않는다. 지난해 벼와 고추의 승인신청 예고는 한 포럼에서 한 발표에 대한 국내 시민단체들의 문제제기와 언론의 보도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이 없었다면 국산 GMO의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농업생산자와 소비자는 승인이 이뤄진 후에야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지 모른다.

물론 국산 GMO가 승인신청에 들어갔는지 여부를 알려주는 정부의 공식적인 장치가 마련돼 있기는 하다. 국산이든 수입산이든 GMO를 사람이 먹어도 괜찮은지에 대한 심사를 주관하는 곳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이다.


연도별 유전자변형식품(GM0)수입량, 수입 곡물 중 GMO 비중, GMO가 주재료인 가공식품 생산량_경향DB



이 부처가 관리하는 식품안전정보포털(foodsafetykorea.or.kr)에 접속해 GMO 코너에 들어가면 현재 심사가 진행 중인 GMO의 종류를 알 수 있다. 이미 승인이 완료돼 수입되고 있는 종류도 매달 공개되고 있다. 가령 지난 4월까지 국내에 수입이 승인된 농산물은 총 139개 품목이며, 주로 콩(22건), 옥수수(71건), 면화(26건), 캐놀라(13건) 등이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그런데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이 이 사이트의 존재를 알고 있을까. 한동안 GMO 강연 현장에서 개인적으로 접한 대부분의 청중은 이를 알지 못했다. 국내에 어떤 종류의 GMO가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지 궁금해할 뿐이었다. 어디에 관련 사실을 문의해야 하는지 몰라 답답해하기도 했다. 만일 언론 보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향후 국산 GMO가 승인신청에 들어갔는지 알기 위해서는 국민이 이 사이트에 일일이 들어가 확인해야 한다.

승인과정은 통상 9개월간 정부가 선정한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에 의해 진행된다. 흔히 이들 심사위원이 최종적인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부는 나름대로 폭넓은 의견수렴 절차를 마련해놓고 있다. 심사위원회의 결과보고서를 1개월 정도 국민에게 공개하고 의견을 묻고 있다. 예를 들어 국산 GMO의 승인신청 사실을 뒤늦게 알았어도 이 단계에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일단 찾기가 쉽지 않다. 전문가의 승인이 완료된 결과보고서는 식약처 홈페이지의 공지 코너에 다른 다양한 사안들과 섞여 올라온다. 웬만큼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수시로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엄두를 내기 어렵다. 찾았다 해도 일반 국민이 ‘해독’할 수 없다. 공개된 결과보고서는 전체 보고서를 20여쪽으로 요약한 형태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전문용어로 가득하다. GMO 개발에 참여하는 전문가나 제대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이해했다 해도 의견 제시가 거의 불가능하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문구를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다만, 안전성 평가심사는 과학적인 접근법에 근거하므로, 공개의견 역시 과학적인 근거 또는 논리가 있는 경우에만 반영한다.” 전문가들이 9개월간 심사해 승인한 내용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반박하라는 의미이다.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아예 의견 제시 자체를 할 수 없는 이 같은 절차는 어떤 결과를 기대하며 만든 것인지 모르겠다.

현재까지 정부는 다양한 종류의 국산 GMO를 개발해 왔다. 한국인의 주곡과 김장재료 대부분이 여기에 포함돼 있다. 승인심사를 통과하면 이들 GMO의 상업화가 실현된다. 이 과정에서 ‘과학적 근거’를 갖추는 일은 물론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실질적이고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김훈기 | 홍익대 교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