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출간 직후 번역된 베스트셀러 <마시멜로 이야기>로 유명해진 마시멜로 테스트는 1960년대 스탠퍼드대 월터 미셸 박사가 고안한 실험으로 유치원생들에게 마시멜로를 보여준 후 15분 참았다 먹으면 하나 더 주기로 하고 실험에 참여한 아이들을 15년간 추적했다. 그 결과 기다렸다가 먹은 아이들이 시험성적이나 건강지수, 행복도 등이 전반적으로 더 높았다. 한동안 대학입시라는 장기전을 치러야 하는 부모들이 집에서 마시멜로 테스트를 하고는 희비가 갈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마시멜로 실험의 요지는 즉각적인 만족보다 장기적인 보상을 추구하는 자제력이 성공의 주요 요인이라는 것이다. 보상이란 일종의 유인(incentive)으로서 어떤 행동이나 선택을 할 때 따르는 긍정적인 대가이다. 조직의 관점에서 보자면 마시멜로 실험의 메시지는 조직 구성원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보상을 잘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거나 집단 활동에 참여해본 경험이 있다면 100% 공감이 되는 얘기다.
한편 하버드대 심리학자 테레사 애머빌은 1980년대 중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소위 폴라로이드 실험을 진행했다. 두 그룹으로 나누어 마시멜로 실험처럼 첫번째 그룹에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보여주고 글쓰기 숙제를 마치면 카메라를 가지고 놀 수 있게 했다. 두번째 그룹에서는 글쓰기를 먼저 하든, 카메라를 먼저 갖고 놀든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았다. 두 그룹 어린이들이 쓴 글을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독창성을 중심으로 평가하게 한 결과 두번째 그룹이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아무런 보상도 주어지지 않은 그룹에서 창의성이 더 높게 나타난 것으로 마시멜로 실험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폴라로이드 실험의 메시지는 창의성은 보상이라는 외부적인 유인보다는 그 활동 자체를 즐기고자 하는 내적 동기가 클 때 더 잘 발현된다는 것이다. 외부적인 대가를 염두에 두고 활동을 수행하면 오히려 그 활동을 십분 즐기지 못하는 역효과가 나올 수 있다. 학교 공부든, 회사 프로젝트든 비슷한 경험을 두고 볼 때 이 역시 100% 공감이 되는 얘기다.
사실 두 실험이 완전히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애머빌은 창의성에 관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주어진 과업의 성격에 따라 마시멜로 실험과 같이 보상이 효과적인 경우가 있는가 하면 폴라로이드 실험처럼 보상이 역효과를 낳는 경우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예컨대 여러 과제가 단선적으로 이어지는 단순 알고리즘 같은 과업은 창의성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외적 보상이 충분히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반면 과제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비선형적으로 복잡하게 연결된 과업에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창의적 상상력이 중요하므로 내적 동기 유발이 되지 않고서는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최근 도쿄대 과학정책 전문가인 시바야마 교수 연구팀이 일본의 약 400개 대학실험실 대학원생의 연구 참여형태와 졸업 후 연구성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하였다. 이공계 실험실에서는 대체로 교수가 연구책임자로 연구 설계를 맡고 대학원생들은 실험 수행과 정리를 맡는다. 오랜 연구 경험으로 연구 동향을 잘 파악하는 교수가 연구의 앞단을 맡고 대학원생은 단순 작업 위주인 연구 뒷단을 맡는 것이 여러모로 효율적인 분업이다.
분석 결과 전통적인 분업 구조의 실험실 대학원생들이 졸업 후 3년 정도는 출판 논문 수가 많았다. 그러나 연구 앞단에 대학원생들이 참여한 소수의 실험실에서는 졸업생들이 처음에는 성과가 변변치 않다가 3년이 지나자 논문의 양이나 수준이 전통적 실험실 출신 대학원생들을 추월하였을 뿐만 아니라 증가세 또한 가팔랐다.
연구 주제 설정이나 실험 설계 등 연구의 앞단은 그야말로 수만 가지 가능성이 잠재된 복잡다단한 과정이다. 대학원생을 연구 앞단에 참여시키는 것은 과학연구 역시 무한 경쟁에 내몰리는 시대에 눈앞에 둔 보상(논문 출판, 과제 수주)을 날리는 짓이다. 하지만 이공계 실험실은 단지 연구성과를 생산하는 공장이 아니라 교육과 연구를 통해 다음 세대의 독립적인 연구자를 키우는 곳이다. 시간이 걸려도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창의적인 연구자로 홀로 설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이것이 장기적으로는 훨씬 성과가 좋다는 것이 실증적으로 드러났다. 사실 폴라로이드 실험처럼 연구라는 활동을 즐기지 않고는 창의적인 연구가 불가능하다는 100% 당연한 말이기도 하다.
김소영 | 카이스트·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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