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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오디세이

같은 이야기, 달리 듣지 않기 위해

조삼모사(朝三暮四) 이야기는 잘 따져보지 않고 반응하는 일의 어리석음을 잘 보여준다. 어차피 얻을 수 있는 도토리의 수는 똑같은 데도 아침에 더 주겠다고 하니 만족스러워하는 원숭이의 한심함을 비웃기는 쉽다. 하지만 우리도 이런 원숭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란 쉽지 않다.

인지심리학 실험을 통해 잘 알려진 사실은 똑같은 내용이라도 표현 방식을 다르게 하면 그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같은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제시해서 사람들이 다른 측면에 주목하게 함으로써 평가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공공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처럼 사회적 파급효과가 큰 맥락에서도 이 효과가 나타난다는 게 심각한 문제다.

예를 들어, 똑같은 정책이 그 정책을 통해 줄일 수 있는 사망자에 주목하도록 제시될 때와 생존자를 중심으로 제시될 때는 상당히 다른 평가를 얻는다. 100억원을 들여 시내 교통 표지판을 모두 바꾸면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가 2100명에서 2000명으로 줄어든다고 발표하는 것보다, 100명의 목숨을 살리는 효과가 있다고 발표하는 것이 더 높은 정책 호응을 얻는다. 보다 우리 삶의 일상적 선택과 직결되는 사례는 신약이 기존 것에 비해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소개할 때의 상황이다. 신약개발의 ‘황금시대’가 지나갔다는 점은 제약계에서는 상식이다. 페니실린처럼 기존 약보다 개선효과가 탁월한 소위 ‘마법의 탄환(약)’을 개발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출시되는 약의 대부분이 기존 약의 화학 구조나 성분을 다소 변형해 약간의 추가 효과를 노리는 것들이다. 그러다보니 세계적 제약회사 중에서도 신약 효과를 부풀리기 위해 과학적으로 부당한 연구방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최근 늘고 있다. 원래 혈압약으로 개발된 약인데 임상 시험에서 함께 측정해 둔 다른 항목, 예를 들면 심부전증이 우연히 개선된 점을 활용해 심부전증약으로 둔갑시키거나, 임상시험 결과에서 원하는 효과가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시험참가자 집단을 나누거나, 신약의 장기적 부작용이 나타나기 전 임상시험을 끝내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17일 서울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신촌세브란스병원의 아시아 최대규모 동물실험연구기관인 '에비슨의생명연구센터' 개관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_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이런 잘못된 임상시험 관행은 과학적으로 논란의 여지없는 잘못이고 신약의 효과를 부풀린 명백한 왜곡이다. 하지만 이런 왜곡이 없더라도 신약의 효과를 절대비율이 아니라 상대비율을 사용해 보고하면 그 효과가 획기적으로 보인다는 점이 문제다. 기존 약이 특정 질병으로 사망할 확률을 100만분의 1로 낮추어 준다고 해보자. 당연히 누가 봐도 우수한 약이다. 이 확률을 200만분의 1로 줄어주는 신약이 나왔다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 기준으로 25명 정도의 추가생존 효과가 있는 셈이므로 매우 비쌀 가격을 고려할 때 개인에게 그다지 큰 매력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약이 사망할 확률을 기존 약에 비해 50% 개선했다고 선전하면 0.0001%의 절대적 감축 효과가 있다는 말과 정확히 동일한 내용이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어떤 경우든 확률을 줄여주면 좋지 않은가? 물론이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기에 이 신약을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에는 항상 ‘비용’과 ‘부작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의 신약 채택 여부처럼 경제적, 사회적 파급효과가 엄청난 경우에는 특히나 그렇다. 비행기를 타는 내내 산소마스크를 쓰고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면 사고가 났을 때 분명 생존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자신과 다른 승객에게 끼치는 불편함과 위험을 고려한다면 이런 조치가 타당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가적으로 의료자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비용 대비 매우 작은 편익 효과가 예상되는 신약을 50% 효과 개선이라는 표현에 현혹되어 사용하는 결정을 한다면 그 약이 가져올 비용과 거의 확실히 나타나기 마련인 부작용을 무시하는 어리석은 결정을 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점을 시민 모두가 잘 알고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하지만 개인이 개별 사안마다 모든 정보를 일일이 찾아서 판단을 내리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언론과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언론과 정부는 특정 이해집단이 명백한 거짓말을 할 때만이 아니라 내용 자체는 사실이지만 편향된 홍보를 할 때 이를 지적하고 막아야 한다. 언론과 정부가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관련 내용과 결정 과정이 비판적 검토를 거칠 수 있도록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통해 우리는 지극히 안타까운 방식으로 이 점을 깨닫고 있다.



이상욱 | 한양대 교수·과학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