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며 수많은 약관을 접한다. 약관에 동의해야 원하는 신청이 이뤄지기 때문에 자세히 읽지 않고 버튼을 누르는 일이 흔하다. 약관의 내용이 너무 방대하다는 점도 습관적으로 버튼을 누르게 하는 원인이다. 가령 아마존이나 아이튠즈의 약관이 <햄릿>과 <맥베스>보다 긴 분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까. 문제는 이 같은 습관 탓에 소비자가 후회하는 일이 적지 않다. 단지 기존의 정보통신기술 분야의 제품에 한정된 사안이 아니다. 의료기관이 아닌 기업이 당장 질병이 없는 사람들의 미래 건강정보를 알려주는 이른바 DTC(Direct-To-Consumer) 유전자 검사가 시행되면서 ‘약관 주의령’이 내려지고 있다.
서구 사회에서 DTC 검사 업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온라인에서 주문 신청을 받는다. 고객은 신청서를 작성하고 일정 비용을 지불한 후 타액이나 머리카락을 회사에 보낸다. 몇 개월이 지나 자신의 비밀번호로 회사 사이트에 접속하면 향후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이 수치로 제시된다. 소비자 입장에서 매우 간단해 보이는 절차로 건강정보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편리하게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는 간단한 절차가 아닌데도 말이다. 신청서를 작성할 때 방대한 양의 약관을 읽고 동의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유전정보에 강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 약관을 상세히 검토하지 않을 수 있다. 본격적인 약관에 도달하기 전에 만나는 수많은 동의 버튼도 무심코 누르고 지나간다. 늘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소비자가 회사에 제공하는 샘플은 바로 ‘생명의 설계도’라 불리는 유전정보이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개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이다. 평소 몰랐던 사돈의 팔촌까지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나의 유전정보를 회사에 보냈을 때 이 정보는 어딘가에 저장된다. 나의 건강정보만 알고 싶었을 뿐인데 누군가가 내 정보를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약관을 자세히 살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회사가 나의 유전정보를 어디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보관하는지, 왜 그런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이 정보가 의약업계에 보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치기 쉽다. 서구 사회에서 DTC 회사가 의약업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심지어 유전자를 분석해 알아낸 고급 정보를 특허로 등록하는 일이 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공익을 위해 제공한 유전정보가 특정 회사의 지식재산으로 바뀔 수 있다. 소비자가 이런 가능성을 인지하고 약관을 검토하지 않으면 나중에 할 말이 없어진다. 비밀번호를 바꾼다 한들 의미가 없다. 이미 제공된 정보는 서버를 관리하는 회사에서 얼마든지 접근이 가능하다. 실제로 DTC 회사의 약관 70여개를 검토한 외국의 한 연구자는 소비자가 무심코 지나치는 조항 가운데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만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유전정보 검사가 쉬워진 만큼 사회생활에서 이를 알고 싶어 하는 이해당사자가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미국의 일부 기업들은 여성 피고용인에게 유방암이나 난소암을 진단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를 권장하기 시작했다. 고객의 근미래 건강상태를 예측하는 일이 중요한 보험회사도 당연히 관심을 가질 사안이다.
지난해 12월 국내에서 DTC 검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다. 6월 시행될 이 개정안을 두고 의료단체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유전자 프라이버시’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도 확산될 것이다. 소비자로서는 이래저래 복잡하게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서구 사회에서 DTC 검사 업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온라인에서 주문 신청을 받는다. 고객은 신청서를 작성하고 일정 비용을 지불한 후 타액이나 머리카락을 회사에 보낸다. 몇 개월이 지나 자신의 비밀번호로 회사 사이트에 접속하면 향후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이 수치로 제시된다. 소비자 입장에서 매우 간단해 보이는 절차로 건강정보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편리하게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는 간단한 절차가 아닌데도 말이다. 신청서를 작성할 때 방대한 양의 약관을 읽고 동의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유전정보에 강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 약관을 상세히 검토하지 않을 수 있다. 본격적인 약관에 도달하기 전에 만나는 수많은 동의 버튼도 무심코 누르고 지나간다. 늘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소비자가 회사에 제공하는 샘플은 바로 ‘생명의 설계도’라 불리는 유전정보이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개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이다. 평소 몰랐던 사돈의 팔촌까지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나의 유전정보를 회사에 보냈을 때 이 정보는 어딘가에 저장된다. 나의 건강정보만 알고 싶었을 뿐인데 누군가가 내 정보를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약관을 자세히 살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회사가 나의 유전정보를 어디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보관하는지, 왜 그런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유전자 감식을 위해 채취된 머리카락_경향DB
그러나 이 정보가 의약업계에 보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치기 쉽다. 서구 사회에서 DTC 회사가 의약업계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심지어 유전자를 분석해 알아낸 고급 정보를 특허로 등록하는 일이 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공익을 위해 제공한 유전정보가 특정 회사의 지식재산으로 바뀔 수 있다. 소비자가 이런 가능성을 인지하고 약관을 검토하지 않으면 나중에 할 말이 없어진다. 비밀번호를 바꾼다 한들 의미가 없다. 이미 제공된 정보는 서버를 관리하는 회사에서 얼마든지 접근이 가능하다. 실제로 DTC 회사의 약관 70여개를 검토한 외국의 한 연구자는 소비자가 무심코 지나치는 조항 가운데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만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유전정보 검사가 쉬워진 만큼 사회생활에서 이를 알고 싶어 하는 이해당사자가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미국의 일부 기업들은 여성 피고용인에게 유방암이나 난소암을 진단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를 권장하기 시작했다. 고객의 근미래 건강상태를 예측하는 일이 중요한 보험회사도 당연히 관심을 가질 사안이다.
지난해 12월 국내에서 DTC 검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다. 6월 시행될 이 개정안을 두고 의료단체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유전자 프라이버시’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도 확산될 것이다. 소비자로서는 이래저래 복잡하게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김훈기 |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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