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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의 공학이야기

늦출 수 없는 바이오파운드리

반도체산업은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 중 하나이다. 반도체가 시장에 나오기까지는 크게 설계, 생산, 패키징 및 조립, 품질검사 그리고 판매 및 유통의 과정이 있다. 실제 웨이퍼를 생산 가공하는 설비들을 갖춘 팹(fab)은 제조설비의 약자로서 이를 갖추는 데만도 수조원의 많은 돈이 든다. 이러한 팹을 갖추고 반도체 설계는 직접 하지 않으며 다른 기업이 설계한 반도체의 생산만을 전담하는 기업을 파운드리라고 부르며, 반대로 설계만을 하는 기업을 팹리스라고 한다. 반도체산업에서의 파운드리와 유사한 개념으로 바이오 분야에는 바이오파운드리가 있다.

 

바이오제품에는 치료제, 백신, 친환경 석유화학 대체 화학물질, 다양한 기능의 천연물질, 바이오플라스틱 등 많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현재의 바이오파운드리는 이런 제품들을 직접 생산하는 곳이 아니다. 현재 바이오파운드리의 주요 목표는 이 제품들을 효율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세포공장을 만드는 것이다. 내가 제자들과 26년간 연구해온 바이오플라스틱 생산 세포공장 개발과정을 보면 특정 플라스틱을 만들기 위한 대사회로를 컴퓨터 가상세포를 이용해 설계하고, 플라스틱 합성에 관여하는 필요한 효소들을 찾고, 그 효소들을 코딩하는 유전자들을 찾아 클로닝하고, 이 유전자들이 세포 내에서 최적으로 발현되도록 하고, 플라스틱 생산능이 극대화되게 하는 등의 총체적 대사공학을 수행했다. 그 후 플라스틱을 고농도, 고수율, 고생산성으로 생산하기 위한 발효공정과 분리 정제공정도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원하는 수율로 플라스틱이 생산되지 않으면 다시 세포공장 설계와 제작 단계로 돌아가는 작업을 반복했다. 이렇게 20여년 전부터 내가 사용한 디자인-균주개발-공정개발 및 시험-그리고 이들의 반복작업으로 구성된 시스템생명공학과 시스템대사공학전략은 지금 합성생물학분야 연구자들이 활용하는 디자인-빌드-테스트-런(design-build-test-learn), DBTL 사이클과 일맥상통한다. 

바이오파운드리는 이 DBTL 사이클 중 엄밀하게는 BT에 해당하지만 실제론DBTL 전체를 다룬다고 보면 된다. 위의 생분해성플라스틱 생산 세포공장을 바이오파운드리로 만들어보자. 우선 플라스틱 합성에 관여하는 효소들을 코딩하는 다양한 유전자들을 최적으로 설계해 자동으로 합성하고, 이들을 세포 내에서 발현하도록 최적으로 조립하고, 자동으로 세포 내에 클로닝해 설계된 유전자 회로를 가진 세포들을 제작, 이들을 고속 스크리닝을 통해 플라스틱 생산능을 측정해 가장 효율적인 세포공장을 골라내게 된다. 즉, 바이오파운드리를 통해 DNA 혹은 유전자 부품들을 최적의 모듈로 조립하고 이를 박테리아와 같은 세포 섀시에 도입해 세포공장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바이오파운드리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컴퓨터시스템과 설계를 위한 알고리즘이 필요하며, 필요한 유전자들을 초고속으로 합성할 수 있는 DNA합성기, 그리고 서열분석 및 검증을 위한 DNA시퀀서뿐 아니라, DNA를 잘라붙이고, 세포에 유전자를 넣어주고, 수많은 종류의 세포들을 동시에 배양하고, 화합물과 세포성장 등을 실시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초고속 병렬 로봇 및 분석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반도체 파운드리 구축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하드웨어 비용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를 갖추게 되면 매우 빠른 속도와 저비용으로 세포공장의 구축이 가능해진다. 글로벌바이오파운드리연합에 속한 미국, 유럽, 일본, 싱가포르 등은 국가차원에서 바이오파운드리 구축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바이오파운드리는 없지만 세계 최초와 최고효율의 다양한 세포공장들을 개발한 대사공학의 우수성으로 초대되어 카이스트와 생명공학연구원 등이 이 연합에 멤버로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늦출 수는 없다. 바이오파운드리 없이 세포공장을 만드는 것은 수작업으로 반도체를 만들겠다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도 바이오파운드리의 구축을 조속히 추진하여 생명공학이 반도체산업처럼 차세대 주력산업이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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