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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의 공학이야기

[이상엽의 공학이야기] 융합전략, 생명공학 강국의 발판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생명공학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뜨겁다. 오래전 유럽에서는 생명공학을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색깔로 구분하였다. 의학·생명에 관련된 생명공학은 우리의 피 색을 나타내는 레드(red) 바이오텍, 농업·식품과 관련된 생명공학은 나뭇잎 색인 그린(green) 바이오텍, 산업 화학물질 및 소재 생산과 환경에 관련된 생명공학은 화이트(white) 바이오텍으로 부른다. 바이오 시장 규모는 어디까지 포함하는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전 세계 레드, 그린, 화이트 바이오텍 시장 규모는 약 1800조원으로 추정되고 급속히 성장 중이다. 우리나라의 바이오 시장 규모는 34조원 정도로 전 세계 시장의 2%가 안 되는 상황이다.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사람의 건강과 먹거리도 책임지고, 친환경으로 지속 가능하게 화학물질도 생산할 수 있게 하는 생명공학을 우리나라의 미래 핵심 산업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더 중요한 것은 의학, 생명과학에 다른 학문과 기술을 융합함으로써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 수준의 혁신적인 기술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착용이 필수적이고 일상화된 마스크를 통해 융합연구의 중요성을 살펴보자. 현재 우리가 착용하는 마스크는 대부분 폴리프로필렌이라는 고분자 소재로 만든다. 이는 사용 후 폐기 시 썩지 않고 폐플라스틱 축적 문제를 일으킨다. 지난 수년간 폐플라스틱의 환경유해 문제가 크게 대두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감축 노력을 열심히 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엄청나게 버려진 마스크 때문에 그 노력들이 불과 몇 달 만에 허사가 되었다. 화이트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한 미생물 발효로 생분해성 고분자를 생산하고, 이를 소재로 마스크를 만들면 사용 후 폐기 시에도 폐플라스틱 문제가 줄어들 것이다.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되면서 바뀐 것들이 많다. 그중 하나가 화장품 사용이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붉은색 립스틱이 잘 팔린다는 말이 있었다. 이번 코로나19 상황에서는 그렇지가 않다고 한다. 마스크로 얼굴 아래 반쯤을 가리고 다니다보니 오히려 눈화장 제품들이 잘 팔린다고 한다. 마스크와 얼굴피부 접촉시간이 많다보니 얼굴 아래에 사용하는 마스크팩도 잘 팔린다고 한다. 피부트러블을 줄여줄 수 있는 기능성 바이오, 천연물 소재들을 개발하여 마스크 제조기술과 융합 시 전 세계 인구 77억명 중 일부만 착용하더라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시장 창출이 가능할 것이다.

 

생명공학 분야에서의 융합을 조금 더 살펴보자. 레드생명공학 중 약을 개발하는 경우 데이터과학과 인공지능, 다양한 시뮬레이션 기법들을 접목하여 독성이 낮고 약효가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신약 후보물질들의 빠른 발굴이 가능하다. 화합물 라이브러리의 초고속 자동합성 시스템과 스크리닝 시스템도 화학공학, 기계공학, 전자공학이 생명과학에 접목되어 구축될 수 있다. 당연히 의학과 약학이 기본이 되며, 생명과학과 공학이 접목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의료기기의 개발에서 의학과 공학의 융합은 그 중요성이 더 커진다. K방역으로 전 세계적으로 위상이 크게 올라간 지금 우리나라 진단의료기기의 90% 정도가 외국산이라는 것은 씁쓸하다. 최근 정부에서는 코로나19에 대응하면서 필요하다고 판단한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이 중 최소 100명이라도 데이터과학 전문의사, 인공지능, 화학 및 기계공학 전문의사 등과 같이 과학과 공학을 융합한 의사로 양성하여 다가오는 융합생명공학 시대를 선도할 수 있어야겠다. 이는 과학기술 중심대학에 융합의료연구전문대학원의 설치를 통해 가능할 것이다.

 

그린생명공학과 화이트생명공학도 마찬가지이다. 작물의 육종 및 재배에서도 크리스퍼 등 생명과학기술을 이용한 식물표현형 개선뿐 아니라 토양 마이크로비움의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을 통해 비료와 농약의 투입을 줄인 친환경 농업도 가능하다. 습도, 온도, 병해충 등을 센서와 ICT로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자동으로 필요한 조치를 행할 수도 있다. 농촌진흥청에서는 기존 농업기술에 ICT, 첨단 생명과학, 생명화학공학 등 여러 전문 분야를 융합한 융합그린생명공학 분야에서 다양한 과제를 수행 중이며 이 분야를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보다 강력한 융합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그린생명공학과 K푸드가 세계를 선도하도록 해야겠다. 비식용 바이오매스나 이산화탄소를 탄소원으로 사용하여 범용화학물질, 정밀화학물질, 친환경 플라스틱, 연료 및 에너지 등을 생산하는 화이트생명공학은 전 세계 기후위기 대응과 맞물려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다. 친환경 지속 가능한 화학산업을 위한 바이오리파이너리의 구축에서는 그 핵심인 미생물공장의 제작에 있어 생명과학, 화학공학, 전산학, 전자공학 등이 융합되어 시스템 수준에서 가장 효율적인 미생물 생산공장의 구축이 가능하다. 과기정통부에서는 관련 친환경 바이오화학산업의 원천기술들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데, 이는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그린 뉴딜의 핵심이 될 것이다. 이상과 같이 레드, 그린, 화이트 생명공학 경쟁력 확보에 있어 융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 하겠다.

 

의료진의 헌신, 정부의 정책, 그리고 국민의 적극적인 동참으로 K방역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고 전 세계 모범이 된 우리나라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다가오는 생명공학의 시대에 우리나라가 세계를 선도할 수 있도록 융합혁신을 통한 전략 수립과 산학 연관의 일체된 노력을 해나가야겠다.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