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정 과학전문기자
태평양 한가운데 자리잡은 미국 하와이 주. 8개의 큰 섬 가운데 ‘빅 아일랜드’라 불리는 하와이 섬은 화산으로 유명하다. 하와이를 대표하는 불의 여신 펠레가 살고 있다는 전설의 칼라우에아 산맥은 지금도 활발한 화산 활동을 하고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산맥의 위쪽으로 해발 4,200미터의 ‘마우나 케아’라는 산이 있다. 마우나 케아는 사시사철 따뜻한 하와이에서 눈이 내리는 곳으로 하와이어로 ‘하얀 산’이라는 뜻이다. 바로 이 화산의 정상에 세계에서 가장 큰 망원경이 자리잡고 있다.
마우나케아 산 정상과 크고 작은 망원경들 눈이 쌓인 마우나 케아. 마우나 케아 천문대의 망원경들이 선명한 천체사진을 얻기 위해 레이저를 쏘고 있다. LGS AO(Laser Guider Star Adaptive Optics)기술은 레이저로 인공별을 만들어 대기로 인한 별빛의 흐트러짐을 보정하는 데에 활용된다. 화와이 제도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큰 섬이 바로 하와이섬이다.
마우나케아 천문대를 가기위해 하와이섬 동쪽 해안의 도시, 힐로를 출발해 새들 로드를 달렸다. ‘말안장 길’이라는 뜻처럼 낙타 등처럼 앞뒤로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졌다. 약 한시간정도 달렸을까. 해발 3000미터에 이르자 구름과 함께 ‘할레 포하쿠’가 나타났다.
할레 포하쿠는 바위로 만든 집이라는 뜻으로 마우나 케아 정상에 오르기 위해 들러야하는 곳이다. 해발 4000미터가 넘는 산 정상으로 바로 올라갈 경우 갑자기 산소가 부족해 호흡이 곤란해지는 고산병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할레 포하쿠에는 천문학자들이 쉬었다 가는 관측자 방문소가 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식당과 의자가 마련돼 가벼운 식사와 휴식이 가능하다. 방문소 뒤쪽으로는 숙소가 있어 마우나 케아를 방문하는 천문학자들은 이곳 숙소에서 잠을 잔다.
할라포하쿠 전경(위)과 할레포하쿠 방문자센터
할레 포하쿠에서 산 정상까지 다시 30여분을 달렸다. 눈이 내려앉은 사이사이로 검붉은 흙이 보였다. 정상에 자리잡은 13개의 망원경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켁 망원경’이다. 동그란 지붕을 얹은 천문대 두 개가 마치 쌍둥이처럼 나란히 있는 켁 망원경은 1993년과 1996년에 하나씩 완공됐다. 켁 망원경은 거울 하나를 깎아서 만든 것이 아니라 육각형의 거울 36개를 이어붙인 특이한 벌집구조다. 지름 10미터로 현존하는 가장 큰 거울을 만들기 위해 거울 여러 장을 붙이는 기술이 시도된 것이다.
밤이 되면 천문대 돔이 열리면서 ‘레이저 빔’이 발사된다. 천구에 미리 찍어놓은 지역을 레이저의 붉은색 빛이 비추면 관측자들은 이를 기준으로 원하는 별을 찾는데 이를 ‘레이저 가이드’라고 한다. 켁 망원경은 수많은 은하 사진과 구조를 밝혀냈으며 현재까지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망원경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미국 연구팀이 생명체가 살 가능성이 있는 지구형 행성, 즉 골디락스 행성을 찾아냈을 때 사용하기도 했다.
두 대가 나란히 서 있는 켁천문대의 모습. 벌집 구조로 만들어진 망원경 내부. 켁 망원경이 촬영한 우주의 모습.
이웃 나라 일본도 대형 망원경 시대에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일본은 1970년대 말부터 새 망원경 제작을 계획했는데 지름이 큰 대형 망원경을 짓기위해 하와이로 눈을 돌렸다. 1980년대부터 망원경 프로젝트를 가동해 1997년 거울 지름 8.2미터의 스바루 망원경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스바루’는 플레이아데스 성단의 일본어 이름인데 일본 자동차 회사가 이 이름을 사용해 유명해졌다.
1999년 처음으로 관측을 시작한 스바루 망원경은 지구에서 128억 광년 떨어진 가장 먼 은하를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스바루 천문대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표태수 박사는 “스바루는 일본 과학교과서 표지에 실릴 정도로 일본인들이 자부심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하와이를 찾는 많은 일본인 관광객이 이 스바루 망원경을 견학하고 있다.
하와이섬 힐로에 있는 일본 스바루 천문대 본부의 뒤뜰. 야자수가 하와이 정취를 자아낸다. 스바루 천문대의 모습. 돔이 열린 사이로 망원경의 모습이 보인다. 스바루 망원경이 찍은 우주.
현존하는 전 세계의 대형 망원경들은 대부분 1990년대 만들어졌다. 이들은 허블우주망원경이 지구 밖에서 관측하던 해상도만큼이나 높은 해상도를 땅 위에서 구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망원경으로도 우주의 아주 끝까지 도달할 수 없다. 현재 인류가 발견한 가장 먼 천체는 128억년정도 이니 과학자들이 계산한 우주의 나이(137억년)에는 못 미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지금 전 세계는 거울 지름 20미터가 넘는 거대 망원경 건설에 경쟁적으로 달려들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거대망원경 프로젝트는 모두 3개다. 칠레 라스캄파나스 천문대에 건설할 ‘거대 마젤란 망원경’(GMT:Gaint Magellan Telescope)과 하와이에 건설할 ‘TMT’(Thirty Meter Telescope)와 유럽연합이 중심이 된 ‘E-ELT’(European Extremly Large Telescope) 프로젝트이다. 각각 거울 지름 25미터, 30미터, 42미터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앞으로 만들어질 거대망원경들. 위부터 GMT, TMT, E-ELT.
거대망원경 시대를 열기위해 천문학은 여러 나라가 협력해야 하는 국제 프로젝트가 됐다. 우리나라는 미국 카네기재단이 주축이 된 거대마젤란망원경 프로젝트에 10% 지분으로 참여하고 있다. 망원경이 완성되면 1년 365일 가운데 10%인 약 36일의 관측권을 우리나라가 배정받는다는 뜻이다. 거대망원경은 앞으로 인류에게 새로운 우주를 열어줄 것이며 특히 천문학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가 천문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대 미생물학과 졸업. 서울대 의학박사(생명윤리 전공). 1995년 언론계에 입문해 과학분야에 대한 기사를 써왔으며 현재 KBS 과학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과학계 앞얘기, 뒷얘기 > 이은정의 '과학기사 프리즘''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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