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은 일찍부터 추위가 찾아와 따스한 실내가 그립다. 가을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와인… 막 가을이 시작할 때쯤 서울대 공대의 모 교수와 와인을 마시다 (둘 다 직업적 발로인지) 와인과 과학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 레드 와인에 ‘라스페타롤’이 많아 심장병에 좋다느니 하는 뉴스들은 이제 구문(舊聞)이 된 지 오래다. 뭔가 새로운 얘기가 없을까? 가을이 깊어지면 와인과 물리학에 대해 취재하기로 했는데 최근 그 작업을 모두 마쳤다. 이 작업은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김호영 교수가 대부분 조언을 해줬다.
와인의 눈물을 보신 적 있나요?
와인을 잔에 따르다보면 와인 방울이 유리잔을 타고 내려오는 현상이 있는데 이것을 와인의 눈물이라고 한다. 소믈리에가 아니더라도 와인을 마실 때 잔의 베이스를 잡고 원형으로 천천히 돌리는 ‘스왈링’ 정도는 할 줄 안다. 와인이 산소와 많이 접촉하고 새로운 향을 일깨우는 동작이다. 이때 와인잔 안쪽을 타고 흘러내리는 와인 줄기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와인의 눈물(tears of wine)' 혹은 '와인의 다리'(legs of wine)라고 한다. 색깔이 선명한 레드와인에서 더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빙빙빙, 돌려도 안 넘쳐욧! (출처:경향신문 DB)
와인의 눈물이 생기는 이유는 당연히 중력 때문이다. 지구상의 모든 물체는 지구 중심으로 잡아당기는 힘에 의해 아래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와인의 눈물이 내려오다 와인의 수면에 닿으면 미세하게 다시 올라간다.
위에서 본 와인의 눈물. 초큼 무섭군요. (출처:www.clebus.com/platfrm/view.html?rrID=4959)
와인 방울이 느리게 내려오다 다시 살짝 올라가는 이유는 물과 알코올의 비중 차이 때문이다. 와인 방울들이 내려오다 와인 표면을 만나면 알코올을 흡수하게 되고 알코올을 흡수하면 가벼워져서 다시 위로 올라간다. 올라간 와인 방울은 알코올이 증발하면 다시 무거워져서 내려오는 현상을 반복하는데 마치 와인 방울들이 와인 수면 위를 통통 튀는 현상을 보이게 된다.
속설에 의하면 와인의 눈물이 많이 흐르면 품질 좋은 와인이라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와인의 눈물이 물과 알코올의 비중 차이니까 쉽게 말하면 알코올 함량이 많을수록 많이 생기게 되어있다. 그러니까 와인의 도수에 비례하는 것이지 와인의 맛과는 상관이 없다. 다만 와인 잔이 깨끗할수록 눈물이 잘 생긴다고 할 수 있다.
같은 원리로 위스키는 와인보다 도수가 더 높기 때문에 오히려 위스키에서 눈물 현상이 더 잘 일어난다. 하지만 ‘위스키의 눈물’ 같은 용어가 없는 이유는 위스키를 마실 때 잔을 돌려가며 관찰하면서 마시지 않기 때문이다.(왠지 와인의 눈물은 굉장히 어울리는 용어인데, 위스키의 눈물은 뭔가 어색하지 않은가?)
와인 거품은 무조건 잔의 가장자리로 간다.
와인을 따르면 거품이 난다. 좁은 병 안에 담겨있던 와인을 넓은 잔에 옮겨 담으면 용기의 차이 때문에 거품이 날 수 밖에 없다. 세게 따르면 거품이 많이 나고 천천히 조심해서 따르면 거품이 적게 난다.
와인을 따라놓은 후 거품을 잘 관찰하면 거품들이 서로 붙어서 숫자가 줄어든다. 과학적으로는 ‘자기조립’ 현상이라고 한다. 또 와인의 거품들은 와인 잔 가장자리로 모여서 결국은 사라지는데 가장자리로 모이는데도 이유가 있다.
와인 잔 가장자리를 잘 살펴보면 수면이 살짝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액체가 고체를 만나면 표면장력이 생겨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 생기는데 이 때문에 가장자리 부위의 와인 수위가 살짝 높아져있다. 마찬가지로 물을 담은 컵에 숟가락을 담그면 숟가락과 물이 만나는 부분이 살짝 높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거품은 기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높은 곳을 찾아가려고 하는데 와인잔 가장자리가 조금 높기 때문에 가장자리를 찾아서 모이는 것이다.
거품은 밖으로 밖으로~~ (출처:경향신문 DB)
와인 디캔팅, 쉽게 할 수 있다.
와인 애호가들이 가장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디캔팅’. 병 속에 있는 와인을 디캔터라는 특수한 유리병에 옮겨 담는 것인데 침전물이 있는 와인의 맑은 부분만 따르거나 와인을 공기와 많이 접촉시켜 풍미를 증가시키려는 목적이 있다.
와인 병에서 디캔터로 와인을 옮기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능숙한 소물리에들은 마치 묘기를 부리듯 와인병을 높이 들고 디캔팅을 한다.
디캔팅할 땐 유능한 소믈리에도 눈이 빠지도록 집중 집중 @_@ (출처:경향신문 DB)
디캔터에 담긴 와인을 잔에 따라 마실 때가 더 어렵다. 디캔터는 목 부분이 가늘고 아랫부분이 둥글게 넓은데다 부피가 크기 때문에 병에 있는 와인을 따르는 것보다 어렵다.
프랑스 과학자가 주전자에 담긴 물이 흘러나오는 과정을 연구해 논문으로 발표한 게 있다. 흐르는 액체가 고체에 닿을 때 나타나는 현상을 물리학적으로 풀어봤는데 액체가 흘러나오는 각도가 충분히 높을 경우 주전자 입구에 물이 묻지 않고 한 줄기로 낙하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디캔터에 적용한다면 디캔터의 기울이는 각도를 꽤 많이 높여야 와인 방울이 디켄터 입구에 흐르지 않고 와인잔에 잘 따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디캔터를 직접 들어보면 알겠지만 초보자의 경우 디캔터를 ‘충분히’ 기울이기가 쉽지 않다. 무겁고 불안정하기 때문에 많이 기울이는 게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일반 디캔터(위)와 입구에 소수성 물질 처리를 한 디캔터 비교. 아래쪽의 경우 와인을 흘리지 않고 따를 수 있다.
과학의 힘을 빌린다면, 디캔터 입구를 물을 밀어내는 파라핀 같은 물질을 발라두면 와인이 흘러나오면서 입구에 묻지 않고 와인 잔에 잘 들어간다. 와인병도 마찬가지다. 와인을 따를 때 마지막 방울이 병에 묻어 흘러내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웨이터들은 수건을 팔에 걸치고 와인을 따르곤 한다. 제품을 출시할 때부터 ‘소수성 물질’을 미리 와인병이나 디캔터의 목 부분에 발라두면 와인이 흘러내리지 않을 텐데, 실제로 회사들이 그렇게 할지는 미지수다.
꾸우욱~!
필자 이은정은
1995년 언론계에 입문해 과학분야에 대한 기사를 써왔으며
현재 KBS 과학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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