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감주나무를 아시나요?
모감주나무는 안면도나 포항 같은 바닷가에 서식하는 나무다. 여름에는 아주 작은 노란색 꽃이 펴 마치 금빛 비(雨)가 내리는 것 같다. 가을이 되면 꽃이 떨어지고 까만색 작은 씨앗이 맺히는데 예전에는 이 씨앗으로 염주를 만들기도 했단다. 중국에서 건너와 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퍼졌다고 하는데 이 나무가 어떻게 중국에서 건너왔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있는 모감주나무에 대해 제대로 연구한 논문이 없었는데 올해 모감주나무에 대한 새로운 연구 내용이 발표됐다.
사진 1 : 모감주 나무 가지에 열매가 달린 모양. 열매가 다 익기 전에는 꽈리 모양의 씨방이 닫혀 있다가 익으면 벌어지는데 자세히 보면 3개의 조각으로 분리된다. 사진 2 : 모감주 나무의 열매 하나. 아래 갈색 잎사귀 모양이 씨방이고 위의 검은색 동그란 것이 씨앗이다.
회전하며 떨어지는 모감주나무의 열매
먼저 모감주나무의 열매부터 알아보자. 사진 1은 모감주 나뭇가지에 열매가 달려있는 모습이다. 언뜻 보면 갈색 이파리 안에 검은색 열매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갈색 이파리 부분도 열매에 해당한다. 사진 2처럼 열매 하나만 떼어서 보면 마치 나뭇잎으로 만든 배에 씨앗이 살짝 올라가 있는 모습이다. 검은색은 씨, 바깥의 나뭇잎이 사실은 씨방에 해당한다.
이렇게 생긴 열매를 위에서 떨어뜨리면 씨방 부분이 빙글빙글 돌면서 회전을 한다.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낙하장면을 들여다보면 씨방 부분이 회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열매가 떨어질 때 씨앗부분이 아래를 향한다.(사진 3)
사진 3 : 모감주 열매가 낙하하는 장면을 시간별로 촬영한 모습. 회전하며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열매가 떨어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역시 씨앗이 아래쪽으로 향하며 빙글빙글 도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에는 모감주 열매 2개가 한꺼번에 떨어지는 다음 동영상이다.
그런데 앗, 두 열매가 회전하는 방향이 다르다! 왼쪽 것은 반시계방향으로, 오른쪽 것은 시계방향으로 돌고 있다. 왜 그럴까. 씨앗이 어느 쪽에 붙느냐에 달려있다. 씨앗이 씨방에서 살짝 왼쪽으로 붙으면 반시계 방향으로, 오른쪽으로 붙으면 시계방향으로 회전을 한다. 씨앗에 무게중심이 걸리기 때문에 한쪽 씨방이 살짝 들려 들린 쪽으로 공기가 빠져나가기 때문이었다.
중국에서 우리나라 서해까지 파도를 타고 왔을까
이렇게 열매가 회전하면서 떨어지는 이유는 최대한 멀리 날아가기 위해서다. 회전을 하면 똑바로 떨어지는 것보다 허공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 바람을 타고 더 멀리까지 퍼질 수 있다. 실제로 초속 3미터의 바람이 불 때 모감주나무 열매는 150미터를 날아갔다.
하지만 회전하며 떨어진다 하더라도 바다를 건너올 수는 없을 것이다. 보통 씨앗이 바다에 떨어지면 바닷물에 가라앉거나 씨앗이 물에 퉁퉁 불어 싹을 틔우기 어렵지만 모감주나무 열매는 가능하다.
아래는 모감주나무 열매가 물에 뜬 모습이다. 씨앗이 아래로 가고 이파리 모양의 씨방이 위로 뜬다. 이렇게 사뿐히 물에 내려앉으면 씨앗과 씨방 사이에 공기방울이 생겨 씨앗이 바다 위에 뜨는 부력을 제공한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2개의 공기방울을 선명히 관찰할 수 있다. (사진 4)
사진 4 : 모감주 열매가 물 위에 뜬 모양. 씨앗과 씨방 사이에 2개의 공기방울이 생긴다.
만약 모감주 나무 열매가 이 상태에서 바다로 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열매를 물위에 띄워놓고 뒤에서 바람을 불어주면 나뭇잎 모양의 배가 천천히 회전하면서 가느다란 부분이 앞으로, 뭉툭한 부분이 뒤로 향한다. 항상 이 모습이다.
사진 5 : 씨방의 중간 구조물(노란 점선). 씨방의 모습을 유지하는 뼈대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씨방의 가운데에는 딱딱한 중간 구조물이 있는데 이 구조물이 배의 키 역할을 해서 항상 씨방의 뾰족한 부분이 앞으로 가도록 방향을 잡는 것이다.(사진 5)
모감주 열매는 이런 모양으로 파도 위에서 2개월 이상 떠 있을 수 있어 중국에서 우리나라 서해로 흐르는 해류를 타고 이동했을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모감주 나무의 군락지가 서해의 안면도와 남해의 완도, 그리고 포항 등 해안선을 따라 번식하고 있다는 사실과 일치한다. 또 일본 혼슈 해변에 발견되는 모감주 나무도 아마 쓰시마 해류를 따라 전파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재미있는 연구는 대학 교수나 고명한 박사의 논문이 아니다. 올해 대한민국 과학전람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충남 고덕초등학교 6학년인 최권찬, 오정아 두 학생이 주인공. 이들은 학교 뒷산에서 우연히 모감주나무를 보고 열매의 모양에 호기심을 느껴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지난해 가을부터 거의 8개월동안 지도 교사의 지도 아래 동고동락했다고 한다.
모감주나무가 중국에서 전래됐다는 가설은 1950년대 제시됐지만 어떻게 건너왔는지는 아무도 몰랐는데 초등학생들이 그 비밀을 푼 셈이다. 어떻게 이런 연구를 할 수 있었을까. 취재를 위해 방문해보니 고덕초등학교는 충남 예산에 있는 아주 작은 학교였다(전교생이 160여명정도인데 이 정도는 이 동네에서는 큰 학교이고 이웃 학교들은 전교생이 30~40명 정도라고 한다). 나는 이 곳에서 학원 공부에 시달리지 않고 자연 속에서 무한한 상상력을 키우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모감주나무를 가까이서 보지 못했다면 어찌 이런 연구를 할 수 있으랴.
여담 한 가지 더. 국무총리상을 받으면 학생에게 상금 500만원을 준다. 각각 250만원을 받게 된 이 친구들에게 어디에 쓸까 물었더니 오정아 양은 가족회의 결과 여행을 가기로 했고, 최근찬 군은 태풍 ‘콘파스’에 과수원 피해를 입은 부모님께 드린다고 했다.
필자 이은정은
1995년 언론계에 입문해 과학분야에 대한 기사를 써왔으며
현재 KBS 과학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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